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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May 19. 2023

누구도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선배와 후배 사이 그 어딘가


IT업계에 비전공자로 입사한 1년간의 이야기 - 6


정확히 그저께 선배님께 불려 가서 크게 혼났다. 45분간 날 옆에 두시고 이런저런 혼을 내시면서 툭툭 말을 건네셨는데, 다행히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밖에서 삼십 분을 울었다.


일 년간 날 크게 혼내신 적이 많고 남몰래 울며 속앓이 한 기억도 많아 나는 처음으로 용기 내 커피 타임을 신청했다.


“선배님한테 혼이 나면 하루종일 그 말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객관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건 맞는데 그렇게 팀에 아무런 기여가 안 되는 사람이냐. 그건 이 회사와 직책자 분이 평가할 일인데 선배님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저도 저를 의심하게 된다. 제가 팀에 도움이 안 되면 저도 제가 필요한 곳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냐. “


이에 대한 답변 내용이다.


“제가 선임님께 세게 이야기하는 건요. 선임님이 세게 이야기 안 하면 공부를 안 하시잖아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선임님이 잠깐씩 열심히 하셔서 세게 말을 하는 거예요. “라는 대답이다.


지금도 정리가 안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근 1년간 선배님께 혼이 나면, 나는 손에 있는 걸 전부 내려놓고 한동안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한동안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을 테다.


선배님과 면담을 신청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진 지금은 여러 생각이 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주변인들도 일정 부분 공감하겠지만 계속 무언가를 찾아 손대면서 배우고, 도움이 당장은 안 되고 비효율적 일지 몰라도 함께 나누며 공부하는 스터디를 택했다.


친한 선임님은 대학교 1학년때 다들 겪는 과정을 나는 지금 겪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뭐든 재밌어서 넓게 손대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겠지만 깊이는 생기지 않는다고.


그 말도 일리가 있는다. 여러 가지를 넓게 건드리면 지식에 대한 깊이는 생기지 않는다. 선배님이 나를 답답해하시고 그로 인해 나에게 심하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가 간다. 비효율적인 방향을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나를 지적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말마따나 이건 내 인생이고, 회사와 담당님만이 나를 평가할 수 있다. 이것도 공적으로 내 업무에 한해서 말이다.


선배님이 나에게 “전공자인 자신도 입사 후 3년간 4시간씩 자면서 일했다. 한 항목을 정해서 6개월만 그것만 팠다.”며 내 태도를 지적했지만, 그것도 선배님이 선택한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올 초부터 조금씩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고, 바디프로필을 촬영했고, 일 년간 못해오던 취미 모델 작업도 다시 시작했다. 조금씩 다시 여가 생활을 챙기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삶이 다채로워짐을 느낀다.


노년에 내가 시니어 모델을 할지, 업계에 얼마나 발을 담글지, 또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 업계를 사랑하고 시간을 쏟지만, 이 업계와 내 삶을 동일시하진 않는다. 지금의 내 삶도, 1년간 무언갈 내려놓고 달려봤던 내 삶도 행복하다.


나에겐 내 삶을 돌봐야할 의무가 있다. 공부야 오래 해야할 일이니 내 페이스를 잃지 않을 거다. 나에겐 당장 챙겨야 할 가족도 있고, 지금이 아니면 하지못할 기회들도 있다. 손에 있는걸 모두 내려놓을 수는 없다.


갓 신입이었을 땐 그동안 꿈에 그리던 피팅모델 제의도 거절했고, 일 년간 해외여행을 가고 싶지도, 운동에 욕심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작업 기회가 오면 하고, 운동도 하고, 연말엔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


누가 뭐래도 결과까지 내가 떠안을 내 삶이다. 내가 결정하고 후회는 하던말던 그건 내가 책임질 감정이다. 나는 그저 내 앞날을 펼쳐두고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걷어나갈 뿐이다.


누구도 내 삶에 무언가를 강요할 순 없다는 걸 마음속에 품고 살자. 주변에 억압에도 나를 잃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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