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주 Aug 21. 2023

시카고에서

도전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건 노을과 별, 자연들의 순간들이다. 자연 풍경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비행기에서 쓴 다이어리에는 '누구든지 이걸 보고 행복해질 수 있잖아. 세상사람들이 전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담겼다.


시카고의 첫인상은 뭐랄까, 신기하다? 공항에 내린 후 환승 열차로 2번 터미널로 가야 했고 다운타운 중심까지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탔다. 도시의 첫인상은 도로에 있는 가로등들이 참 예쁘다는 인상이었다. 모든 건물들이 커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신기했다. 내가 소인국의 사람이 된 것처럼 큰 건물들이 하늘을 가렸다.


시카고에서 제일 좋았던 장소는 존핸콕 타워의 시그니처 라운지이다. 첫날과 마지막 날 그곳에 올라가 노을을 봤다. 해가 비추는 곳이 건물들 사이로 한줄기 길을 만들었고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을 모두 눈에 담았다. 그곳에 디디며 느낀 감정은 분명 행복을 넘은 큰 의미였을 것이다.


살면서 순간순간 살기 싫었던 때도 참 많았는데 그때 삶을 포기했으면 이런 순간은 끝내 오지 않았겠지 생각이 들 만큼 이질적인 순간이었다. 벅차거나 짜릿한 기분이 아닌 잔잔한 하나의 사실이 내게 와닿았다. 마침내 내가 이런 순간을 맞이하는구나 하는. 삶은 어느 형태로던지 변할 수 있구나. 이런 걸 보고 사는 삶이 있구나. 내가 그 삶을 살아내고 있구나.


처음 가 본 유명 재즈바는 생각 외로 좋지 않았다. 드럼 소리를 분명 좋아하지만 악기가 너무 휘몰아쳐 보는 내가 다 숨이 찼다. 실제로 스틱으로 드럼을 두드리는 게 나였으면 엄청 스트레스가 풀렸을까? 하면서도 음악에 여유가 없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재즈 하면 당연히 여유가 뒤따를 줄 알았는데. 다양한 재즈바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엔 믿을 수 없게도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누비고, 공원에서 우연히 그날 공연하는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듣고, 크라운 분수에서는 흔쾌히 양말을 벗고 아이들과 함께 물을 느꼈다. 좋아하는 아쿠아리움에 갔고 시카고가 한눈에 보이는 공원에서 누워있었다. 좋아하는 걸로 가득 하루를 채웠다.


저녁으로 먹은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에서는 감사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대접받았다. 살면서 쓰리 스타는 한 번, 투스타는 이번에 네 번째 경험해 본다는 동행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식 경험을 내게 소개해줬다. 해산물을 먹는 모든 순간이 내겐 도전이었고, 경험들이었다. 길에서 파는 팝콘이 더 맛있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맛보다는 평생 하지 못할 경험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해산물은 먹지 않는 사람인데, 여기와서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고 싶지 않아 뭐든 거부하지 않고 먹어본다.


음식점에서의 서버들의 태도, 서비스, 다양한 식재료들, 세심한 케어들이 전부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사람이 남미사람이었는데, 서로 몇 마디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한 마디씩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던 나는 '꼬모 떼 샤마?'라며 이름을 물어봤고 안뗼은 우리를 즐거워했다. 인스타 아이디를 주고받고 다음날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해줬던 그는 시카고에서 사귄 내 첫 친구다.


다음에 시카고 여행 오면 같이 놀자며 언젠가를 기약했다. 어디서든, 누구랑 이던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이곳은 그런 나라니까.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갔다가 어쩌다 따라가게 된 '레스토랑 매니저의 와이프 생일파티' 때처럼, 즐겁고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 다채로운 감정과 경험을 하는 게 때로는 괴롭지만,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해 나가는 게 재밌다. 주변에 있는 도전적인 사람들의 삶을 보며 동경을 품는다. 매일 나를 스스로와 부딪히게 하고 도전하게 하는 이 나라가 어이가 없고 고깝지만 매력적이다. 정이 진득하게 들어버릴 것 같다.


시카고는 내게 아리송한 나라다. 대도시면서 정갈하고 건축물들이 전부 아름답다. 전부 설계 아래 지어졌기 때문에 위에서 볼 때 예쁘고 아래서 볼 때도 경이롭다. 중심가는 깨끗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웠다. 건물들 옆에 바다가 있고, 회사 옆 분수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공원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낸 자전거 길엔 낭만이 있다.


이박 삼일을 지내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서 시카고 주민인 듯한 모든 사람들을 동경으로 바라보았던 여행이다. 두 번, 세 번을 가도 이질감이 들 것 같은 도시다. 뉴욕보다도 유타보다도 미국의 어느 주보다도 이질감이 들었다. 여러 번 가게 되면 그 도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꿈같은 도시였음은 확실하다. 다음에 또 시그니처 라운지를 갈 것이고, 시카고 미술관을 가고 싶다. 다음엔 야경을 더 누리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유타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