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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무지 Jul 16. 2024

자살 유가족의 기록

우린 서로 상처를 낸다.

*그들의 이름은 가명처리 됩니다.


토요일 오후, 집에는 오랜만에 미진과 미영 둘만 있었다. 미진은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고, 미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며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기회였다.

"엄마, 나 한동안 힘들었던 거 알지" 미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요즘 이래저래 일도 많았고 슬럼프도 길었잖아. 근데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미진은 딸의 고백에 놀란 듯했지만, 그녀의 말을 경청하며 눈빛으로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새벽까지 게임도 많이 했잖아. 다음 날이 오는 게 싫더라고. 그래서 잠도 안 자고 버텼어. 내일이 오늘이랑 다를 게 없으니까."

오랜만에 나누는 속 깊은 이야기에 미영은 그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전에 엄마가 새벽에 혼낸 적 있잖아. 그때 엄마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봤는데 그게 상처가 됐어. 동시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미영은 말을 잠시 멈추고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오빠는 맨날 이런 눈빛을 받았을까? 생각이 드는 거야. “

그 말은 미진에게도 트리거가 되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래…? 엄마가 그런 표정을 해?“

“응. 엄마 특유의 표정 있잖아. 싫을 때, 이해 안 될 때 나오는 거. 나도 약간 있는데.”

“맞아. 너도 있어. 사람 경멸하는 눈.”

미진은 가끔 표정으로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했다. 싫어하는 감정이 표정 위로 생생하게 드러날 때면 미영은 여과 없이 상처를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경험으로 배운 그 방법은 꽤 효과적이라, 미영도 종종 표정을 이용해 남을 상처주곤 했다.

“그치, 그런 것 같아. 근데 나도 고쳐야겠다. 그 표정.. 막 부정받는 느낌이 들어.”

“너네 오빠도 그렇게 느꼈을까? 아침에 내가 출근하면 혼날까 봐 불을 급하게 끄긴 했어. 내 방에 불이 켜지면 그 방이 꺼지는 거야.”

미진은 아들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나는 듯했다. 미진은 종종 대화에 일상적인 추억을 꺼내와 웃고는 했다. 미영은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불쌍하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누가 불쌍해해? 다들 나보고 엄마한테 잘하래."

미영은 혼자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던 치졸한 마음을 드러냈다. 미진은 미영을 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엄마보고 불쌍하대?"

"다 그러는데, 뭐. 하여튼 오빠는 먼저 가서. 선착순에서 진 기분이야."

미영은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다. 속으로만 생각했던,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오빠가 먼저 죽어서 나는 죽지도 못한다고."

미진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미영은 자신이 잘못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근데 엄마. 있잖아. 엄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죽으면?"

내심 미영은 자신이 죽어도 미진은 잘 지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진은 그녀의 아들이 죽고 나서도 잘 지내고 있으니까. 잘 지낸다는 말이 맞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미영은 잠시 엄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없던 종교가 생겼고 가끔 우는 일이 있다. 비 오는 날과 차 사고에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멀쩡한 게 맞나? 미영은 자신이 한 생각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도 따라 죽어야지."

미진에겐 당연한 답변이었는지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끔찍하다는 듯 울분에 찬 목소리였다.

"그래?"

"그래. 그럼 내가 살 이유가 없지."

단호한 말투에 미영의 표정이 안도의 빛을 띠었다. 미진의 마음을 후벼 파서라도 들어야 하는 그녀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너 자꾸 그런 말 할래? 엄마 상처받게 그런 말 좀 하지 마..."

미진은 울기 시작했다. 미영은 엄마가 이렇게까지 울게 만든 자신을 자책했다.

"엄마도 그 일 있었을 때 나 두고 가려고 생각했잖아. 엄마도 그런 생각했으면서."

"그래서 죽었어? 안 죽었잖아."

미진은 당시 딸인 미영을 두고 아들을 따라갈 생각을 했다. 미영은 그때 미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고 느꼈다. 딸인 나를 살려두고서 그녀는 죽음을 상상했으니까. 당시에 느꼈던 절망감은 어두컴컴한 길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미진은 미영에게 유일한 뿌리였다.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그런 뿌리.

"나도 안 죽을 거야. 걱정하지 마."

미영은 그렇게 말한 뒤 후다닥 그녀에게 휴지를 건넸다. 못된 말을 했으니 이제 엄마를 안심시켜 줄 때였다.

"엄마. 나는 안 죽어. 뭐랄까. 그 뒤로 벽이 생기긴 했어. 죽을 생각만 들면 오빠 생각이 나서 정신이 확 들어. 오빠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을까. 죽을 용기도 참 대단한 건데. 그렇지?"

미영에게 죽음은 그간 미지의 세계였다면, 오빠가 죽고 난 후 구체적인 형태를 띠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울음, 차가운 시체, 들을 수 없는 대답.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오빠가 떠날 때 겪었을 끔찍함이 함께 떠올라 그녀를 괴롭히곤 했다.

"엄마 근데. 나는 엄마가 초등학교 때 살려준 이후로 살았거든. 엄마가 죽을 거면 같이 죽자고 했잖아. 근데 오빠는 그런 말을 못 들어서 그렇게 됐나 봐."

미영은 엄마를 위로하다가 예상치 못한 결론에 도달했다. 미영이 아등바등 엄마와의 끈을 평생 확인받을 동안, 그녀의 오빠는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는 원래 말이 없었다. 당연히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유서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도 가족들 때문에 이때까지 살아왔다는.

미진은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르느라 미영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미영은 그 말을 저 스스로 꺼낸 뒤로 오랜 시간 그 말을 상기했다.

오빠가 첫 번째 유서를 썼을 때, 누군가 나서서 그런 말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오빠도 안 죽지 않았을까. 되돌려도 막지 못했을 거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지나간 가능성을 눈앞에서 마주한 기분이었다.

"엄마. 울려서 미안해.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지. 근데 내가 미안해."

미영은 그녀를 달랬고 사과를 여러 번 건넸다. 대화가 끝난 후, 미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오빠의 유서를 다시 읽었다. 교훈은 없었다. 실천할 대상은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으니까.

미영은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오빠를 붙잡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울면서 말을 건네는 상상을 했다. 적어도 이 생에선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곁을 떠난 지 일 년 십 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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