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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May 12. 2023

선배가 될 준비가 필요합니다

벌써 내 밑에 절반이 후배인 사실에 관하여


IT업계에 비전공자로 입사한 1년간의 이야기 - 3


벌써 2년 차가 된 나는 어느새 주간 보고를 하거나 팀의 회의를 이끄는 선배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높은 편이라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내가 중간 연차쯤 된다. 아직도 아래 후배들이 열명쯤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랩실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툭툭 나를 가르치던 선배가 가끔 일찍 퇴근을 하면서 나도 같이 퇴근을 시켜주곤 했다. 당시엔 그게 참 좋았는데. 우리 회사는 연구 시기마다 일을 몰아하고 쉬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우리끼리 근무시간을 융통성 있게 채우곤 한다.


지금은 상반기 연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이번이 내 두 번째 프로젝트인데, 작년 하반기에 제일 막내로 시작해서 이번 파트에선 연차가 두 번째 순으로 회사 생활을 톡톡히 배우고 있다. 파트 리더이신 선배님께서 우리가 직접 해보며 나아가길 원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맨땅에 헤딩을 해본 삼 개월이다.


나도 제대로 연구에 참여한 경험은 처음이고, 후배가 밑에 둘인 경험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 후배가 질문을 하러 오면 일단 돌려보내거나 나조차도 상급자들과의 소통을 겁냈다. 다행히 연구 마무리 단계인 지금엔 깨달은 게 많다. 직접 부딪히고 쌓은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첫 번째 배움은 업무 간의 소통에 대해서이다. 일에 대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면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에 선배님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직책자분께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업무 산출물이나 일정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 이를 소통해 알릴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런 경험이 없어 주저하다가 연구가 마무리될 즘 제대로 된 소통을 했다.


나도 이젠 팀의 방향을 고민하고 나눠야 하는 팀의 구성원이다. 문제가 있다면 2안을 구성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의문과 의심이 들 땐 적극적으로 일의 의미를 찾아와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리더는 내가 어렵게 꺼낸 말에 “연구가 끝날 즘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안타깝다”라며 피드백을 주셨다. 소통에 부재가 있던 게 사실이며 자신은 늘 의견을 던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보면 의견을 먼저 내지 않고 리더가 던지는 의견이 업무 지시인줄 착각했던 건 우리였던 것 같다. 주간 회의는 한 주 업무 결과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이고 의견이 핑퐁 되는 건 당연하다. 연구를 하는 건 우리고 연구를 해서 이 주제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우리 파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는 선배라는 자리의 위치이다. 나는 이번 연구 내내 선배들의 눈치를 보거나 업무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져 정시에 퇴근하는 것조차 부담을 가졌다. “못한 건 내일 더 하겠습니다.” 하고 채우거나 개인시간에도 업무를 해오곤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팀이 경직된 분위기를 갖는데 나도 기여를 많이 한 것 같다.


내가 눈치를 보고 업무에 대해 강박을 갖는 것이 고스란히 밑의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일정을 맞추려 야근을 하면 후배들도 야근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퇴근 시간에 대해 눈치를 보면 그들도 자연스레 눈치를 보며 퇴근을 하게 된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막상 당시에는 몰랐다. 내 상황을 해결하기 급급했던 것 같다. 돌아보며 내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내가 더 힘을 내 업무를 이끌고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밑에 사람이 편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주에 우리는 사일째 회의를 했는데(오늘은 쉬기로 했다.) 평소에 업무에 대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막바지에 팀원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끝나면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팀원들이 원할진 모르겠지만 ㅎㅎ..


나는 이 회사에서 나에게 도움을 준 선배들이 많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기에. 주변 후배들의 성장을 봐주고 인정해 주려고 노력하고, 신경을 쓴다. 언제는 “이 은혜 잊지 않겠다”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후배에게 “똑같이 후배에게 내리사랑으로 쓰세요.”라고 대답해주기도 했다.


나도 부족한 점이 많고 처음인 게 많아서 어리숙하다. 실력적으로 후배들이 뛰어난 경우도 많아 피드백을 주기도 어렵다. 그저 조금씩 도움을 줄만한 일을 찾으며 빨리 성장해서 좋은 선배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배가 될 준비는 이렇게 부딪히며 배워야 하나 보다. 나도 아직 막내이고만 싶은데, 선배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 생활은 너무 어렵다. 단지 너무 못난 선배가 되지 말자고 생각한다. 내가 바르게 보고 커왔듯이 내 존재가 뒤따르는 사람들의 힘이 되자는 생각이다. 부족해도 어쩔 수 없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길 바랄 뿐이다. 상반기를 마치며 하반기엔 더 나은 선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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