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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주 May 13. 2023

뭐든 싫증을 내던 나에게

마르지 않은 우물이 된 IT업계


IT업계에 비전공자로 입사한 1년간의 이야기 - 4


나는 어려서부터 하나를 진득이 하지 못했다. 학원을 보내면 한두 달도 안 가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했고, 또 귀는 얼마나 얇은지. 친구를 따라 홧김에 학원을 등록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보고 부모님은 옛날부터 “넌 하나를 진득이 못해. 또 하다가 그만둘 거면 하지 말아라.” 라며 커서 뭐가 될지 걱정하셨다. 나도 학생땐 내가 싫증을 너무 잘 냈기 때문에 커서 뭘 할지가 걱정됐다. 이런 성향 때문에 마케팅 부서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하는 직업을 가져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한창 진로를 일 년에 몇 번씩 뒤집던 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용하다는 곳에서 사주를 보셨다. 내가 인복이 좋다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게 될 거라고 사주를 봐주셨는데 당시에 우린 이걸 듣고 모두 코웃음 쳤다. 그만큼 내가 이쪽으로 나갈 거라곤 우리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내가 이때까지 가장 열심히 한 공부는 고2쯤 내신 관리, 성인이 돼서 토익 시험 준비정도였던 것 같다. 그것도 남들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아주 조금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그냥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나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걸 즐기다니. 그때 엄마가 들어오셨던 사주는 딱 들어맞았던 거다.


싫증이 많은 나에게 이 업계는 숨쉴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보안업계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종“으로 불리곤 한다. 질릴 틈이 없이 해야 할 공부가 사방에 널렸고 마라톤 달리기처럼 누가 더 오래 시간을 쏟고 오래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서있는 위치가 달라진다.


원래 새로운 공부는 재밌지 않은가. 다행히 아직 병아리 단계인 나는 손 닿는 곳에 있는 모든 공부가 재밌다.


우리는 가만히만 있어도 업계에서 뒤처진다. IT 업계 전체가 달려 나가고 있기에 따라잡기만 해도 급급하고 한 발짝 선두에 앞장서는 건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언제든지 곁에 함께 달려 나가는 사람이 있다. 나만이 아닌 우리들이 늘 겸손하게 배우고 있으며, 기꺼이 열심히 얻은 기술을 공유한다. 열정 있는 사람들이 모인 업계인 만큼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해받고 공감할 수 있다.


모든 직군이 얽혀있기 때문에 IT업계라는 말만 들어도 동질감과 소속감이 드는 것은 덤이다. 힘든 점도 많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사랑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말해도 내가 볼 땐 전부 이 업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아니었으면 그렇게 시간을 쪼개 스터디를 하고, 업무에 대해 호기심과 열정을 키우기도 어려울 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까지도 이렇게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속단하면 안 되지만 지금의 내가 이 업계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명료한 이유가 있어서 앞으로도 이 업계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내가 나에게 마법처럼 거는 주문들이 있는데 보통 다섯 개 중에 세 개는 들어맞는다.


오 년 뒤 더 뿌리 깊게 이 업계에 서있을 나를 응원해.

앞으로도 배움의 기쁨을 잃지 않을 나를 응원해.

네 자랑스러운 주변 사람들과 너를 응원해.


어떻게 살아가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조금 더 과감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 생각과 감정은 늘 말랑말랑하게 변하니까. 포기해도 되고 그만두어도 된다.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중요한 건 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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