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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FT Dec 28. 2015

m&m초콜렛과 CSR

1980년대 초반 화려한 성공을 거둔 록밴드인 밴 헤일런(보컬: 데이비드 리 로스)은 다른 밴드와는 다르게 두껍고 자세한 계약서를 요구했다. 계약서에는 공연장 측이 충분한 물리적 공간, 하중을 버텨낼 수 있는 구조용량, 전력 시스템을 확실히 제공해줄 것을 명시한 조항들이 하나하나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밴 헤일런은 무대가 무너지거나 전선에 합선이 일어나 누군가 죽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작성된 추가조항 서류의 40쪽은 '간식' 항목으로 채워졌다. 여기에는 포테이토칩, 견과류, 프레첼, 그리고 "엠앤엠즈(주의:갈색 초콜릿은 반드시 뺄 것)"를 준비해달라는 요구가 명시되었다.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는 밴드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현지 공연장 측에서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안전과 관련한 모든 요구사항을 따랐는지 여부를 어떻게 하면 확인할 수 있을까?


갈색 엠앤엠즈가 그 방법이었다. 로스는 공연장에 도착하면 언제나 곧바로 무대 뒤로 가서 엠앤엠즈 초콜릿 단지를 확인했다. 만일 갈색 초콜릿이 발견되면, 그것은 공연장 관계자가 계약서 추가 조항들을 꼼꼼하게 읽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 경우 밴 헤일런은 '전체 무대 장치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실시해 중요장비들이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했다. 


최근에 읽은 "괴짜처럼 생각하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CSR에도 m&m 초콜렛 같은 부분이 존재할까? 어떤 기업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펴고 어디를 보면 그 회사의 진정성을 알 수 있을까? 현장 실사에 나가서 직접 회사의 각 영역에 있는 실무자와 임원진을 만나면 그 회사가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가늠할 수 있을까?


사실상의 지속가능성 보고 표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G4(http://businessandsociety.tistory.com/8  참고)를 보면 m&m처럼 느껴지는 요소들이 숨어있다고 느껴진다. 예를 들면, G4-EC2번은 '기후변화가 조직의 활동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 및 기타 위험과 기회'다. 이 지표를 포함해서 위험과 기회에 대해 잘 정리하고 이를 회사 전략이나 경제 성과와 연결시키고 이를 명확하게 이해관계자들에게 보고하는 보고서는 드물다. GRI G4 가이드라인 보고원칙 및 표준공개(part1)를 살펴보면 위험(risk)에 대한 지표들을 6.4절에서 정리해서 보여준다(86쪽).


6.4 전략, 위험, 기회 관련 표준공개

본 가이드라인은 여러 가지 유형의 표준공개자료를 담고 있다. 일부는 조직의 일반적인 전략과 관련 있고 그 외 다른 것들은 조직의

성과 및 영향에 관련 있다. 본 가이드라인은 아래의 전략, 위험, 기회와 직접 관련된 표준공개를 소개한다:


일반표준공개

-전략 및 분석: G4-1, G4-2

-파악된 중대측면과 경계: G4-17, G4-18, G4-19, G4-20, G4-21

-거버넌스: G4-45, G4-47


특정표준공개

–경제성과: G4-EC2

–반부패: G4-SO3


이미 지속가능성보고서에서 중요성 분석은 흔한 장표가 되었다. 그런데 AEGON은 그 흔한 지점에서 다르다. 아래와 같이 회사가 이슈를 컨트롤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추가로 고려했다.

이 한 가지 속성이 더해지면서 중요성 분석이 위험요소를 반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회와 위험에 대한 분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이를 기초로 회사가 고려해야 할 5가지 트렌드(무채색 중심, 즉 회사가 이슈에 대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음)가 나오고 이에 맞춰 트렌드 파이를 보여주면서 보고서가 전개된다. 

또한 파란색을 띄는, 즉 회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가 큰 중요이슈 부분은 CSV 부분과 함께 주요하게 보고되어 있다. 그 안에는 해당 이슈들이 재무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하고, 이어서 4가지 전략과 사업 모델 또한 담겨있다.


또 하나의 예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 보면 국내 제조업의 경우, G4-LA6인 '부상 유형, 부상 발생률, 업무상 질병 발생률, 휴직일 수 비율, 결근율, 업무 관련 사망자 수(지역별, 성별)'을 보고한 부분의 공개 수준만 봐도, 그리고 만약 이 지표에 대한 향후 목표치를 세우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국내에서 이 지표의 향후 목표를 공개하는 회사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ALCOA의 사이트를 방문해보자

지속가능성 카테고리의 안전보건 이슈 부분이다. "Zero Is Possible"!!! 그리고 실제로 노력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의 질과 향후 목표만 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http://www.alcoa.com/sustainability/en/info_page/safety.asp


여기에서는 보건 안전 관련 알코아의 데이터를 모두 볼 수 있다.  두말할 것이 없다. 

분기별로 안전보건 이슈들을 자가 진단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2020년과 2030년 사고율 목표가 사이트에 제시되어 있고 매달 성과에 대한 수치가 보여진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m&m 초콜렛이라는 기표(signifiant)의 핵심은 사소함까지 다다른 완성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연장 측에서는 m&m가 주는 기의(signifié)를 알아채고 다른 것보다 갈색 m&m을 빼는 것부터 하게 된다면? 당연히 밴 헤일런은 다른 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다. 


CSR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금번 GRI G4에서 가치사슬의 맵핑(mapping)이 드래프트에서 빠진 것이 못내 아쉽다. 훌륭한 m&m 초콜릿 조항이 될 수 있었는데.. 아마도 강한(?)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속가능성보고서가 얼마나 의미 있게 작성되느냐는 어떻게 보면 그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떤 시그널들을 잡아내느냐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국내의 많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들이 천편일률적인 컨설팅을 통해 이미 갈색을 제외한 m&m이 가득 들어있는 유리단지가 되어 오히려 갈색 m&m이 있는 단지가 신선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이 지표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최근의 국내 보고서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빙하의 드러난 부분은 그 밑의 많은 얼음들이 잠겨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다소 간과하고 있는 듯 싶다. 보고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지표와 그 개선이 회사의 지속가능경영의 실행(PDCA)과 잘 연계되지 못한 채 물 위로 빙하가 아니라 얼음 모양 스티로폼만 띄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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