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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FT Mar 16. 2016

내 원대로 마시옵고

서른 살의 나, 교회 소식지에 실었던 글을 들추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2007년은 저에게 참 뜻깊은 해였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새신자반과 성숙자반을 들으면서 청년집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고, 일생 동안 물레방아를 한 칸 한 칸 비워주며 돌게 해 줄 중요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소위 명문대를 경영대까지 복수전공하여 졸업하고도 바로 취업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2007년 봄이었습니다. 시간적 여유는 많으나 영적 여유는 없어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여느 취업준비생과 다름없이 자소서를 쓰고 고치고 해도 시간적인 여유는 중학교 이후 어느 때보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통독을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봄날, 소위 좋은 회사들, 돈 많이 주고 이름 있는 회사에 붙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아버지 뜻을 구하는 이상한 기도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 어차피 주님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된다면, 차라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자’

고 마음먹고 매일 이 구절을 기도 가운데 읊조렸습니다.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고, 스스로의 욕심들을 채우고픈 마음들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수록 어느새 아버지의 원이 내 원일 거라고 믿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뒷부분은 빼버리고 ‘내 원대로 말아달라고’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두려웠습니다. 진짜 그렇게(?) 하시면 어떡하나.. 


 기도는 바뀌었지만 여느 간증처럼 제가 외국계 회사에 취업이 되진 않았습니다. 대신 주님은 제 마음에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제 원대로 마시라고, 절대 제가 하고픈 대로 해주지 말아달라고 기도해도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 거하게 되자 이제껏 살아오면서 과연 내가 하고 싶고 계획한 대로 살아온 것이 얼마나 되는지  곰곰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제 2년이 지난 지금 저는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원에서 석사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합니다. 제 발등의 빛이 되어 주시니 보이는 한 발짝만 디디고 나아가면 됨을. 그리고 앞으로 평생 어느 자리 어느 상황 가운데서도 제 원대로 마옵시고 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확실하고도 성실히 주님과 동행할 준비를 하는 30대가 되었습니다.  



저 글을 쓴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당시 나는 확실하고도 성실한 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던 거 같다) 과연 나의 오늘 기도는 역시나 내 뜻대로 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있나? 그리고 여기 이 자리는 내가 원한 자리였던가? 하고 돌이켜보며 상념에 잠긴다.  

결론적으로는 역시 저 때는 생각하지 못한 자리에 지금 서 있다. 그런데 참 감사하다. 뜻 가운데 서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 자리까지 얼마나 보호해주시고 내 마음을 지켜주셨는지 알겠어서.


지금 나의 기도는 진로를 고민하던 그때처럼 절박하지 않다. 오히려 안정감으로 딱 붙어버린 엉덩이를 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회사에서 안주하기엔 사회적 소명이 떡하니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예비하신 다음 스텝을 궁금해하며 조급해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의 기도는 한 단계 나아간 것일 수도, 아직도 지지부진할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삶이 주의 예정대로 지어져 왔다는 점에 대한 확신은 점점 더 많이 든다는 점이다. 열리는 기회들, 만나는 사람들, 내 생각의 정리 등 지금 마주하는 신의 시그널들은 어제와 다르다. 가능성의 고민들로 차 있던 서른 살의 날들과는 다르다. 업에 대한 확신과 사회적 가치와 소명으로 내 시선이 좁혀 들면서 깊이를 추구하며 집중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긴장된다. 나는 무엇을 구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내 시간과 자원과 체력을 안배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고 나면 그의 '예정'이었음을 어느 날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렇게 나는 40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40대 중반 어느 날 다시 이 글을 들추어 보겠지.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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