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우버를 이길 수 있을까?
제러미 코빈이 우버에 관해 올렸던 트윗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저장해 두고 가끔 꺼내보곤 합니다. 우버가 직업인인 운전기사들의 좋은 임금 수준과 노동권에 대한 존중을 앗아가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혁신이란 게 그렇습니다. 좋은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재화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거나, 둘 다이거나 이겠죠. 기업으로서는 재화나 서비스를 어떻게 개량할 것인지와 동시에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 가격을 낮추는 데 관심이 많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산업의 역사는 개량의 역사와 비용 감소라는 두 가지 흐름으로 흘러왔다고도 생각이 됩니다. 저는 비즈니스의 HR분야 외의 부분은 알지 못하니 HR분야만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산업혁명 이후 대공장 생산직의 경우에는 일하는 시간이 즉 결과물이었습니다. 테일러 주의니 포드주의니 하는 것들을 통해 개량화되어왔지만 이는 결국 일하는 시간에 작업자들을 어떻게 더 집중시킬 것이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들이었구요.
그런데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의 비중이 1, 2차 산업의 비중을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투입한 시간과 결과물의 비례관계가 어긋나게 됩니다. 전통적인 제조업은 투입한 시간만큼 생산물이 산출됩니다. 그래서 시간 단위로 보상을 산출해도 별 문제는 없었죠.
반면 코빈이 예로 들기도 했고, 요즘 말이 많은 승객 운송산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택시 같은 사업을 생각해보면, 손님이 없으면 극단적으로 생산량이 0까지도 나올 수가 있죠.
생산량이 안 나온다고 보상을 안 주는 건 타당할까요? 그것도 이상합니다. 어쨌든 노동자는 그 시간에 대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제공했으니까요. 우리나라 노동법도 이를 기준으로 근로시간을 판단합니다. 이른바 '지휘감독설'이라 해서, 실제 일을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자의 처분하에 노동력을 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입니다.
이렇다 보니, 마치 인테리어 공사를 했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드는 집주인과 업자 사이에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불협화음이 생깁니다. 한쪽에서는 돈 주고 사람 썼는데 결과(매출)가 마음에 안 드니 돈 못주겠다는 입장인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결과야 어찌 되었건 나는 시키는 대로 일을 했으니 돈을 받아야겠다는 입장이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계약에 근거한 근로를 제공받았으면 생산성이 발생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임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법에 의해 부과되다 보니, 기업은 인건비 "로스"가 나는 걸 전제하고 재화, 서비스의 가격을 책정하게 됩니다.
아까, 혁신이 뭐라고 했었죠? 좋은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재화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거나, 둘 다이거나.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경영혁신을 통해 불필요한 공정을 축소한다. 라는 건 경영학 교과서에나 있는 것이고.. 공급단가를 후려치거나 인건비를 컨트롤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기업들은 인건비 "로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합니다. 일하는 시간만큼만 인건비를 지급하고 싶으니까요. 근로자가 아닌 자유계약자로 세팅하고, 근무시간을 쪼개고, 정규직 대신 파견, 기간제를 활용하는 등등.. 유휴노동력을 줄여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혁신으로 불리고 있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플랫폼들이 딱 그렇지 않나요? 우버. 우버이츠, 쿠팡플렉스.. 등등.
플랫폼은 '고객의 운송'이라는 생산이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합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동시간이라는 자투리 시간과 자기 차량의 유휴공간을 제공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니즈가 있으니 노동력을 공급하구요. 당장 저만 해도 차 사자마자 제일 처음 찾아본 게 '카카오드라이버 크루 등록하는 법'이었으니까요.
소비자들도 환영합니다. 회사가 불필요한 유휴 인건비 절감분을 일정 정도 공급 가격이나 서비스 퀄리티에 투자하게 되니까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퀄리티가 좋아지거나, 둘 다의 효익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피를 보는 건 코빈이 지적한 '질 좋은 일자리(decent job)'을 가진 노동자들입니다. 특히나 긱 노동을 파트타임이 아닌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원래 질 좋은 일자리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원래 일자리를 잃고 긱 이코노미로 흡수된다는 의미가 있기에 더더욱 그렇죠.
하지만 이런 "긱 이코노미(gig ecomony)"가 혁신이라 칭송받는 분위기에서는 노동운동의 위치가 애매해지게 됩니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긱 이코노미의 활성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흐름입니다. 기본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의 수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조직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조직화에도 어려움이 따르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긱 이코노미 하지 말고 옛날처럼 살자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겁니다. 이미 긱 이코노미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 수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긱 이코노미에 기반한 서비스의 효익을 소비자들이 이미 체험을 했거든요.
하지 말자고 하면 이 소비자들부터가 먼저 들고일어날 겁니다. 당신들도 노동자네 이런 얘기는 씨알도 안 먹힐 거예요. 더구나 이 산업은 정형화된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직도 제대로 되어있지 못하니, 이 문제에 대해 기존 노동조합들이 정부나 기업을 푸시할 영향력도 미약합니다. 기존의 "지금 우리가 가진 권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어. 근데 뭘 좀 더 내놓으면 생각은 해 볼게."라는 식의 노동운동으로는 이 위기를 타파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게도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낼 수 있는 능력은 없어요. 그게 있으면 이모양으로 살고 있진 않을 텐데.. 사실 미래의 노동문제에 관해 생각할 때면, '이래서 로봇세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제 일자리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찾아올 텐데, 그전에 준비를 끝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