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제 운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게임에서는 레이싱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마도 실컷 달리다 삐끗해서 사고가 나도 괜찮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통 대다수의 레이싱은 최고 속도를 낼 수 있게 잘 닦여진 뻥 뚫린 길을 마구 밟아 대는 것이 주류다. 반면 랠리라는 장르는 그것들과는 좀 다르다. 좁고 위험한 길을 최대한 조심하면서 달려야 하는데, 최고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보통의 레이싱과 같지만 가속보다는 브레이크를 더 많이 밟아야 한다. 물론 보통 레이싱도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랠리라는 건 정말로 한번 삐끗하면 바로 게임 오버가 된다. 실컷 조심조심 한참을 달리다가 여기다 싶어서 마구 밟았다가는 그 끝에 있는 별로 급하지도 않은 굽이길에서 갑자기 궤도를 이탈해서 절벽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결국 아무 속도도 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완주만 해도 상위권인 경우도 많다.
위의 스크린샷은 더트 랠리 1이라는 게임이다. 그리고 내가 1위를 한 저 성과는, 무려 10번도 넘는 중도 탈락 끝에 얻어진 결과다. 많은 실패 끝에 깨달은 비결은 간단했다. 욕심을 부려서 한번이라도 과속을 하면 그 순간 사고가 나고 순위가 떨어지고 탈락을 하기 일쑤였다. 매번 조심해야지 하다가도, 조금만 직선이 나오면 욕심이 통제가 되지 않아서 밟아댔고 어김없이 코스를 이탈하며 탈락하길 반복했다. 심지어 이번엔 조심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는데도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패턴으로 탈락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결국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고 나서야 안전한 구간에서도 최대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속도를 내기 보다는 그냥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밟았더니 결국 1위를 했다. 정속 조차도 아닌 안전하게 저속으로 달렸는데도 사고만 안 냈더니 1위를 한 거다.
보통 인생은 성공에 의미가 있으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나이만 먹는 사람들을 실패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젊어서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인생은 한 순간의 최고 속도를 기록하는 것보다 결국 느리더라도 완주하는 게 더 힘들다. 투자로 비유하자면 돈을 따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나 할까. 차라리 앞으로 안 나아가도 상관이 없다. 그저 뒤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남들이 알아서 나가떨어지면서 1위를 하게 된다.
인생의 한 순간 큰 속도를 내는 건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위험을 동반한다. 한번 삐끗하면 인생 끝장이 난다. 작년에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코인으로 수십조 원 부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범죄자가 되거나 파산해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당시에는 속도를 내며 앞서가는 그들이 뒤쳐진 사람들을 비웃었겠지만 지금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제자리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도 모른다.
어차피 인생 내내 성공하는 사람들은 없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 역시 인생의 한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해 나이가 들어서도 과속을 하다 오히려 기존의 업적마저 망치기도 한다.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큰 사고를 쳐서 이름이 더럽혀진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아무 사고를 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낫다. 성공하지 못하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르지만, 이 구불구불한 인생이라는 랠리에서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