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되는가?’라는 질문 습관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한다. 새로운 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사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모습’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 사물이 존재할 수 없는 성질이나 요소다.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
[1]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구조(構造)와 인과(因果)로 포착한다. 이때 구조를 모델(Model), 인과를 다이너미즘(Dynamism)이라고 한다.
모델이란 그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성요소와 그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관계이다. 예를 들어, ‘아내에게 캘리그래피 책을 사 주었더니 글씨를 잘 쓴다.’의 구성 요소는 ‘캘리그래피 책을 사준다 à 글씨를 잘 쓴다.’이다 그러나 책만 사준다고 현상(글씨를 잘 쓴다)이 나타나게 될까? 현상이 나타나게 된 진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아내가 글씨를 잘 쓰게 된 것은 ’ 캘리그래피 책을 사 준다 à 하루에 2시간씩 연습한다 à 글씨를 잘 쓴다.’ 본질은 하루에 2시간씩 연습하는 것이다. 이런 모델이 눈에 보여야 단순히 책을 사 준다고 글씨를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캘리그래피 책을 사 줄 뿐만 아니라 아내가 글씨 공부할 수 있도록 저녁 식사 준비나 설거지를 대신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다이너미즘(因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모델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이다. 다이너미즘이 눈에 보이면 모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는 패턴까지 읽을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델이 만 들어내는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을 ‘다이너미즘’이다. 모든 현상 뒤에는 그 현상을 만드는 모델과 다이너미즘이 있다. ‘통찰한다’는 것은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모델과 다이너미즘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통찰에 이르는 전(前) 단계가 관찰이다. 관찰을 통해 모델과 다이너미즘을 보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할지 아는 과정을 지나 통찰에 이르게 된다. 가까운 곳에서 새로움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하다면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관찰하는 게 좋을까? 자신의 주변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Alexandra Horowitz)는 《관찰의 인문학》[2]
에서 평범한 동네 길을 여러 전문가와 함께 걸으며 겪은 놀라운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동네 길을
12번이나 반복해서 19개월 된 아들, 지질학자, 타이포그래퍼(Typographer), 곤충학자, 시각장애인, 의사 등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고 전문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관찰한 내용을 소개한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거창하거나 엄청난 비용이 들거나 전혀 가보지 않은 신세계를 찾아가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주변과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관찰을 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수롭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통찰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일상의 숨겨진 요소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바라보면 결코 새로움을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핵심은 친숙한 대상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이 주효하다.
(1) ‘의도적으로 낯설게 보는 것’이다.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gravant)[3]는 “모든 사물을 볼 때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 뭘 어떻게 낯설게 보라는 것인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 1>
과 같이 말년의 마티스가 긴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진을 보면 의도적으로 낯설게 한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평상시 사용하던 붓이 아닌 의도적으로 다른 긴 붓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 불편하겠지만 다른 것이 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2) ‘부정하기’다.
이 방법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5]의 ‘이미지의 배반’을 통해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파이프 하나가 있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적혀 있다. 작가의 심오한 철학적 의미까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파이프를 파이프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그림을 그려놨으니 그림 속 사물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부정하기’는 그림뿐만 아니라 창의력 훈련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예를 들어, 안경을 ‘안경이 아니다’라고 정의한 후 무엇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10가지를 써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 훈련을 하면 평상시 눈에만 쓰는 안경의 또 다른 용도를 찾아낼 수 있다.
(3) ‘다른 누군가와 같이 보는 것’이다.
인간의 주의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 모든 정보를 다 담을 수 없을뿐더러 각자의 관심 영역에 따라 선택적으로 대상을 보게 된다. 자신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다. 될 수 있으면 자신과 관심 영역이나 관점이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날마다 이용하는 구내식당을 다시 관찰할 때 무작정 관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바닥은 어떤 형태이고 어떤 색인 지, 어떤 그림이 걸려 있는지, 천장은 얼마나 높은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평상시에는 몰랐던 불편함 이 있는지, 그곳에서 가장 낯선 곳은 어디인지,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살펴보면 상당히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현상 너머를 바라보고 겉으로 보이는 것의 이면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까?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는 일본의 독자 기술이나 서비스가 일본 안에서만 진화하여 세계의 표준에서 뒤처져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잃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첫째, 일본은 기술력이 있으므로 잇따라 수준 높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둘째, 일본 고객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렇다는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일까? 이 문제 뒤에는 ‘일본 시장의 크기’라는 본질이 숨어 있다. 일본 시장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많은 기술 들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거대한 일본 시장이 있다 → 글로벌 시장은 처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 비용 경쟁력 없는 수준 높은 제품이 나온다 → 글로벌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다 → 외국 기업에 세계 표준을 빼앗긴다 → 일본 시장도 빼앗긴다’라고 보는 것이 본질을 파악하는 다이너미즘이다. 핵심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DX시대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나 전에 보지 못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현상을 겉으로만 바라보고 느낄 경우 현실은 우리를 외면할 수 있다. 빠르고 거침없이 다가오는 다양한 현상들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현상 너머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능력이다.
[1]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MIT 대학의 산업공학 교수 Forrester (1961)가 개발한 복잡계 연구 방법론이자 시스템공학의 설계 방법론이다.
[2] [관찰 인문학],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박다솜 옮김, 시드페이퍼, 2015.
[3] 앙리 마티스는 20세기를 주름잡은 야수파의 창시자이자 화가이다
[4] 출처: https://www.openedition.co.kr/curating-artist/matisse-interior
[5] 르네 마그리트,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6] 출처: https://www.news2day.co.kr/7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