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발전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연초부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은 DX(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를 넘어 AX(AI Transformation)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12일까지 개최된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4(The International)에서는 인공지능(AI)과 관련된 혁신 제품들이 차고 넘쳐났다.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다보스의 스위스 알파인스쿨에서 열린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의 핵심 안건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주목을 끈 것은 인공지능(AI)과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였다.
이런 변화의 시대, 불확실성 시대에 우리는 인공지능과 다른 우리 인간만의 특수성을 활용할 수 있는 사고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한계로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귀추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귀추법(abduction)의 사전적인 정의는 ‘가정을 선택하는 추론의 한 방법으로, 만약 사실이라면 관계있는 증거를 가장 잘 설명할 것 같은 가정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주어진 사실들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그럴듯한 혹은 최선의 설명을 추론하는 것이다.
귀추법 사고
우리는 연역법과 귀납법에 익숙하다. 과학적 전통에 기반을 둔 연역법과 귀납법은 추론 과정 끝에 주어진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할 때 쓰는 방법이다. 연역법은 이미 알고 있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명제를 전제로, 명확히 규정된 논리적 형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명제를 결론으로 내는 추론법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에서 결론을 내는 직접 추리와 두 개 이상의 전제에서 결론을 내는 간접추리가 있는데 삼단논법이 간접추리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한편 귀납법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실이나 현상에서 공통 사례를 찾아 새로운 명제를 결론으로 내는 추론법이다. 인간의 다양한 경험, 실천, 실험 등의 결과를 일반화하는 데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를 갔는데 첫 번째 집 대문이 노란색이고 두 번째 집 대문도 노란색이다. 세 번째 집 대문도 노란색이면, 조심스럽지만 ‘이 동네의 집 대문은 모두 노란색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경험과 관찰에 근거해 일반화하는 것이 귀납법이다. 그런데 만일 ‘나폴레옹이 죽지 않는다면’, ‘노란 대문만 있어야 하는 그 동네 289번째 집 대문은 빨간색이라면’ 앞의 두 결론은 모두 거짓이 된다. 즉, 연역법과 귀납법의 결론은 언제나 참이냐 거짓이냐 둘 중 하나일 뿐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귀추법은 주어진 관찰과 사실로부터 ‘가장 그럴듯한 최선의 설명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연역법은 일반적 명제에서 구체적 결론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내지만, 귀추법은 명제로부터 반드시 결론을 내지는 않는다. 귀납법에서는 사실에서 관찰된 빈도나 통계적 사실만으로 결론을 내지만, 귀추법에서는 사실에서 추론되는 다양한 설명 중 가장 그럴싸한 설명 하나가 결론이 될 뿐이다.
우리는 막연히 어떤 원리의 발견이나 창조를 천재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전략가 제갈공명의 사고방식을 귀추법에 비춰보면, 그는 현재의 데이터와 경험에 근거하여 가장 그럴듯한 최선의 가설을 만드는 귀추법을 사용한 사람이다.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은 어떻게 동남풍을 이용해 조조 대군을 괴멸시킬 수 있었을까? 제갈공명은 어떻게 동남풍이 부는 시기와 방향과 강도를 알았을까? 그것은 제갈공명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 아니다. 공명은 그즈음에 동남풍이 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매년 경험을 통해 바람이 부는 시기, 방향, 강도, 지속 시간 등을 잘 아는 농사꾼이나 관찰자를 만나 그들의 경험을 아주 꼼꼼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만들어 화공을 펼침으로써 조조 대군을 무찔렀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들 중에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을 택하는 것이 귀추법이다.
귀추법의 특징
귀추법은 연역법과 귀납법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귀추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 전서 제2권 25장에 ‘아파고게(apagoge)’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논증 형태를 19세기 말 미국의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가 귀추법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근대 산업화 문명과 짧은 기간 동안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추론 방법보다 주어진 문제에서 참과 거짓을 빠르게 판명해야 하는 교육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정답이 없는 결과를 끌어내는 귀추법은 불편한 존재였다. 객관식 문제로 등수를 매기는 문화에서 귀추법은 비효율적이고 실속 없는 말장난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앞선 아이디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따라 하는 전략은 더 이상 쓰기 어려워졌다. 우리나라는 이제 추격자를 넘어 선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추법은 오늘날과 같은 빠른 변화의 시기, 불확실성의 시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추론 방법일지 모른다. 최근 유행하는 애자일(Agile) 기법이나 서비스 디자인 기법에 가장 적절한 추론 방법이 귀추법일 수 있다.
귀추법은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서는 도외시되고 있지만 업무 현장에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학적 발견 시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새로운 가설을 만들거나 기존의 이론을 수정한다. 예를 들어,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하고 진화론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굴절현상을 관찰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었다.
법관이나 변호사 들은 증거나 증언을 바탕으로 가장 타당한 판단이나 변론을 한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관은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추론할 수 있으나,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며, 다른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변호사는 용의자의 유죄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다른 증거나 증언을 제시할 수 있다.
의료기관은 환자의 만족도나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예를 들어, 서울성모병원은 의료서비스 디자인을 통해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그것이 정답이라기보다는 의료서비스 디자인이 환자의 만족도나 치료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추론한 결과일 뿐이며, 시간과 장소 및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귀추법의 한계와 전망
귀추법은 장·단점이 있다. 귀추법은 필연적이거나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여러 개의 가능한 설명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중 가장 타당하거나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주관적이거나 편향적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데이터나 증거가 발견되면 기존의 가설을 개선하거나 변경해야 한다. 이는 귀추법이 수정 가능하고 반복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귀추법이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과정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귀추법은 관찰된 현상에 대한 설명을 찾는 것이지, 그 설명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귀추법으로 만들어진 가설은 다른 방법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귀추법은 최선의 설명을 찾는 것이지, 최적의 설명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귀추법으로 찾은 설명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나 증거에 기반한 것일 뿐, 모든 가능한 정보나 증거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귀추법으로 찾은 설명은 항상 더 나은 설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위와 같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귀추법은 새로운 지식이나 가설을 생성하는 창의적인 추론방법이다. 귀추법은 불완전하거나 불확실한 정보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추론을 할 수 있다. 관찰된 현상에 대한 최선의 설명을 찾아주는 합리적인 추론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성적, 통계적, 과학적, 합리적인 부문에서 완벽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더라도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귀추법은 불확실성의 시대이며, 우리 인간들이 생성해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AI)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제3의 추론 방법으로 잘 활용될 수 있는 사고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