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8000개 영단어를 암기한 방법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문법 지식, 발음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역시 영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다. 이전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빅보카에 나와 있는 8000개의 영단어를 외운 것만으로도 영어 실력 상승에 큰 효과를 봤다. 문법 지식은 부족했지만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다 보니 문장의 뜻을 대충은 때려 맞힐 수가 있었다. 반대로 아무리 영어 문법 지식이 뛰어난다 한들 영단어 자체를 모른다면 영어로 된 텍스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영단어를 외우는 것은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다. 솔직히 영단어 암기가 정말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한 번쯤은 영단어 암기라는 큰 산을 넘어야만 한다. 어차피 해야 된다면 어떻게 효율적으로 영단어를 외울 수 있을까?
지금부터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느끼고, 나의 영단어 암기에 직접 적용했던 4가지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자체 시험을 본다.
<완벽한 공부법>의 기억 편을 보면 장기기억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인출(output)을 해야 하고, 인출을 하는 가장 좋은 전략 중에 하나가 시험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영단어를 외운 후에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려고 노력했다.
초기에는 영단어를 외운 뒤에 종이로 뜻을 가리고 영단어의 뜻을 맞추는 방식으로 시험을 봤다. 이 방법도 효과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책에서는 영단어의 순서가 항상 고정되어 있다 보니 이 방법으로 시험을 계속 보면 실제로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데도 위아래 영단어를 보고 뜻을 추측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페이지의 맨 위에 있는 단어는 영단어를 보지 않고도 '아 여기 쪽의 맨 위 단어는 ~란 뜻이었지'라고 생각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한 단계 발전시켜 엑셀을 이용해 자체 시험지를 만들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엑셀에 그 날 외운 영단어를 세로로 쭉 적고, 랜덤 함수를 이용하여 각 단어마다 랜덤 값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 랜덤 값을 기준으로 단어를 정렬하면 단어들의 순서가 무작위로 뒤섞이게 된다. 확실히 이 방법을 이용하니 책으로 볼 때에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단어였던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매번 단어들의 순서가 뒤섞이다 보니 시험을 보면 틀리는 개수도 더 많아졌지만 오히려 틀리니 기억에 더 잘 남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주 시험을 보는 것이다. 영단어 한 번 외우고 귀찮다고 시험을 보지 않으면 금세 까먹는다.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버스를 타고 갈 때, 컴퓨터 작업 중간중간 등 틈이 날 때마다 자투리 시간에 영단어 시험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험을 더 자주, 많이 볼수록 당신의 머릿속에 단어가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2. 학습자용 영영사전과 예문을 이용한다.
영단어와 한글 뜻을 매칭 시키는 방식으로 암기를 하다 보면, 영단어들이 가지는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영단어가 문장 안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사용되는지 알기 위해, 예문과 영어로 쓰여있는 뜻을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사이트는 Merriam-Webster의 Learner's dictionary(http://learnersdictionary.com)이다. 이 사이트는 영어를 학습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단어의 뜻이 쉬운 영어로 쓰여 있고 예문도 많이 제공해주고 있다.
제공되는 예문들을 읽다 보면 이 단어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잡아낼 수가 있다. 내 경험으로 영단어-한글 뜻 매칭의 방법으로 암기를 할 때 잘 외워지지 않는 단어들의 경우, 그 단어가 사용되는 예문을 많이 읽어보면서 감을 익히면 단어가 더 잘 외워졌다. 영어 뜻과 예문들을 자주 보다 보면 이전에 외웠던 단어들도 많이 나와 복습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었다.
3. 중간 목표와 보상을 이용한다.
영단어 8000개를 외우는 과정은 하루에 100개씩 외운다고 해도 80일, 거의 세 달이 걸리는 매우 긴 여정이기 때문에 중간에 의지를 잃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길 중간중간에 중간 목표를 세우고, 각 목표에 도달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보상을 주었다.
최종 목표인 8000번에 도달했을 때에는 그때 당시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던 아이패드를 사는 것을 보상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 중간인 2000번, 4000번, 6000번에 도달할 때마다 여러 벌의 옷 사기,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등등 평소에 하고는 싶었지만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을 하는 것을 보상으로 걸었다.
그 결과 보상을 얻기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고 매 중간 목표에 도달하여 나 자신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굉장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목표의 간격이 촘촘해지다 보니 동기가 떨어질 때쯤 되면, 어느새 중간 목표 지점에 가까이 와있어, '조금만 더 힘내서 목표에 도달하자!'라는 생각으로 막판 스퍼트를 해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중간 목표와 보상을 이용한 것이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4.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다.
영단어 암기는 정말 강력한 동기가 있지 않은 이상 혼자서 진행해나가기가 매우 힘들다. 그럴 때에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영단어를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의 경우 영단어 암기에 관심을 보인 연구실 후배들을 모아 영단어 외우기 스터디를 진행했다. 나까지 총 5명이서 진행을 했는데, 매주 300개의 단어를 외우고 금요일마다 단어 시험을 본 뒤 틀린 개수만큼 벌금을 모았다. 그렇게 10주 동안 진행을 한 결과 벌금이 꽤 많이 모여서 이 돈을 가지고 회식도 할 예정이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어를 외우게 되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극도 받을 수 있고, 서로 파이팅하자고 격려도 해줄 수 있다. 또한 단어 시험을 더 잘 보겠다는 은근한 경쟁심도 붙어서 혼자 할 때보다 더 열심히 단어를 외우게 된다.
8000개의 영단어 암기를 한 후 나는 확실히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영어 논문도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한 정보를 구글링 할 때에도 영어로 된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영단어 암기일 것이다. 부디 나의 이 네 가지 팁이 영어로 고통받고 있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