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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08. 2022

단 한 명이라도 읽어준다면

  브런치 팀에서 알람이 왔다. 60일 넘게 글 한 편도 안 올렸다고 보고 싶단다. 그래 봐야 자동 발신 메시지니 별 감흥은 없었지만, 알람이 온 김에 확인해봤다. 마지막에 쓴 글이 4월 24일이니 오랫동안 글을 안 쓰긴 안 썼구나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바빴고, 지쳤다. 4월 18일 자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행사가 폭발했다. 다시 행사 일을 시작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사무실의 대리 2명이 연달아 퇴사를 하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3년 만에 월급을 받으며 주 5일 출근을 하게 되었다.


  매주 행사가 2,3개씩 진행되다 보니 핸드폰이 조용할 틈이 없었다. DDP, 킨텍스, 코엑스, 롯데호텔, 수원 화성행궁...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행사 자체도 많았지만, 원래는 다른 대리들이 처리하던 일들까지 새롭게 맡아서 처리하려니 머리가 아팠다. 집에 오면 더 이상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리를 써가며 타이핑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글을 쓸 수는 있었다. 아니, 써야 했다. 정말 내가 출판 작가가 되고 싶고, 글쓰기 강사가 되고 싶었다면.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써야 하니까. 꾸준하게 노력한 사람만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또다시 독자가 없는 글은 낙서로 치부했던 과거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종종 글을 쓰고 있는데 반응들이 영 좋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아 저 새끼 또 저러고 있네.’라고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나와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마 내 앞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는 건 아닐까? 별 의미 없는 낙서에 불과한 글을 꾸역꾸역 쓸만한 가치가 있긴 한가? 

구글 검색 : Dark Road

  같이 스터디를 하는 동생은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자기 확신을 얻고, 가능성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데 나만 정체된 느낌이 드니까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스터디용으로 글을 몇 편 채울 뿐 브런치에는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


  마치 00시 마감인 과제를 23시 59분 59초까지 미루고 또 미루는 심정으로 올려야지, 올려야지, 올려야지이이이이... 하면서 버티고 있다가 다시 한글 파일을 열었다. 얼마 전 대학 동기 K의 소개로 만난 S의 질문 덕분이다. 


  “요즘은 브런치 안 하시나 봐요?”


  아 그래... 맞아... 난 브런치 작가고, 출판 작가를 준비한다고 소개했었지.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라고 소개하고 두 달 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다면 난 무시했을 거다. 정작 내가 그러고 있었으니 브런치 작가, 출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소개할 자격이나 있을까. 민망했다. 


  솔직히 S가 무슨 의도로 물어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질문을 받고 나니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던 기억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며칠 전 회사에서 본부장님도 요즘 글 준비하는 건 잘 돼가냐고 물어보셨고, 글 잘 보고 있다며 공감해주던 선배도 있었고, ‘나도 출판 작가 친구 한 번 둬보자.’며 언제 출판하냐고 놀림 반, 응원 반으로 갈구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 언제부터 내가 무대 앞에 나가서 춤추던 인기스타였다고. 내 자리는 언제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주인공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역할이었지.(소름 돋게도 지금 하고 있는 행사 쪽 일이 딱 그쪽이다.) 눈에 띄진 않아도 분명 내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빛나는 무대를 보면 내 노력이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왔으면서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반응이 없다고 일희일비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수영도 히든 싱어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이수영은 “내 노래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이수영의 남성 모창자로 함께 무대에 섰던 김재선 씨는 “그 말이 너무 슬펐다. 팬들은 항상 다 듣고 있었다. 어디서든 팬들이 다 듣고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팬들을 대표한 김재선 씨의 진심에 이수영은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면 내가 노래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 거 같아요. 내가 팬이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데 노래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욕심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팬들 덕분에 많이 털어냈고, 내가 계속 노래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목소리로 표현해줘서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히든싱어 이수영 편 中 (https://www.youtube.com/watch?v=xu7THpayVxE)

  단 한 명. 이수영은 내 노래를 원하는 단 한 명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1명이라는 숫자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김재선 씨는 이수영의 모창을 할 만큼 여성스러운 목소리와 성격으로 상처받고, 아픔을 겪었으나 당했었으나 이수영의 노래를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극복했다고 말했다. 천 명, 이천 명, 수천, 수만 명 앞에서 콘서트를 꾸미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한 사람이 진심으로 위로를 받고,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수영의 노래가 김재선 씨의 삶을 위로한 만큼은 아니겠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런 식이었다. 가까운 지인들 외에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내 글에 공감해주고, 내 글을 통해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는다는 친구들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생각한 글쓰기 방법론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에 공감한다면, 위로를 받는다면, 앞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면, 계속 써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세상에 의미없는 글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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