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도 사람들과 관계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기곤 합니다. 그 에피소드를 겪으며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 것이죠.
나는 거절을 잘하는 편이라 생각했어요. 주위 친구들이 그런 나를 부러워했으니까요.
“너는 어쩜 그렇게 좋다, 싫다 같은 자기표현을 참 잘하더라. 거절도 잘하고. 나는 명확한 너의 태도가 참 부러워.”
나도 나름 고심하다 솔직한 나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주저 없고 명확하다고 느껴졌나 봅니다.
“그래? 아~! 나도 못 보는 내 모습을 봤구나.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나는 그냥 내 생각을 이야기했을 거야.”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일이 쉬운 걸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듯합니다. 친구가 보기에 그렇게 명확할 것 같은 저에게도 고민스러운 일이 있었거든요. 많았습니다. 나는 사실 내 생각을 그렇게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타인을 기피하는 경향이 조금 있었어요. 그렇다고 아주 소심한 친구는 아니었어요. 좀처럼 잘 알 수 없는 친구였죠. 친구는 수줍음을 탈 때가 있어서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소심하게 보였던 것이죠. 그런데 저와 있을 때는 오히려 굉장히 활달한 편이었죠. 그런 친구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서로 태도가 다른 것이 문제였죠.
멀리서 우리 둘이 모두 아는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어요. 마주치면 인사하고 지나가면 그뿐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에요. 그 친구를 마주하기 싫었던 것이죠.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죠.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냥 어색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혼자도 아니고 나와 같이 있는데 굳이 그래야 했을까요? 친구의 그런 태도는 여러 번 있었죠. 당황스러운 상황을 몇 차례 겪고 나니, 그 친구에 대한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상황을 연출할지 알 수 없었어요.
함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저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친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저는 기쁘고 고맙기도 했지만 너무도 당황스러웠어요. 다른 친구들도 친하게 지냈던 관계였고, 나 혼자만 선물을 받았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거든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 건, 그동안 친구의 태도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했기 때문이겠죠. 조금만 더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던 내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주위에 보면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나 내가 거절을 하면 상대가 기분이 안 좋아질까 봐.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죠. 제가 친구에게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나의 감정이 친구에게는 관계의 거절로 들릴까 하는 염려에서 오는 것이었겠죠.
나는 친구와의 관계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결국 나의 감정을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 사이는 그렇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각자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지금은 그 아이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관계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그리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렇다고 나의 생각을 매번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 모두 말한다는 것도 아니 될 일이죠. 그래서 적당히 알아서 해야 하는 데, 어쩌면 처세술을 잘 써야 하는 시기가 이런 때인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나도 보호하고 남도 다치지 않는 그런 중도의 처세술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못하는 자신을 탓합니다. 표현을 못하는 자신을 탓합니다. 그런데 너무 자신을 나무라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럴 이유가 있으니 그렇지 않겠어요? 먼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알아주며,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났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구의 문제는 친구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먼저 나를 돌보면 되는 것이죠.
거절을 못하는 이유와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살펴봅니다. 거절하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미리 연습해 보기도 합니다. 한 번에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따듯한 시선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먼저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