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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Oct 04. 2020

07. 미놀타를 남의 손에 맡기면 안 되는 이유

필알못이라 미안해

미놀타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에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보기로 했었는데 당시 어딜 가도 미놀타와 함께 다니던 시기라, 결혼한 친구의 신혼집에 가서 다 같이 배달음식을 시켜먹자는 계획을 세워놓고도 굳이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리고 실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아기들과 친구들을 찍어댔었다.

그 날이 마침 나의 생일이 있던 달과 맞물려서 만난 김에 친구들이 생일 케이크와 선물을 이것저것 챙겨주었고, 난 미놀타로도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내 사진을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미놀타는 출시되었던 당시에도 인물사진이 잘 찍히는 사진으로 유명했다. 미놀타를 가지고 왔다고 하면 차례를 기다려 미놀타에 찍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엔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쉽게 사진을 남겨놓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아니, 휴대폰은 고사하고 카메라 조차 흔했던 때가 아니었으므로 한 친구가 카메라를 가지고 오면, 그 카메라로 여럿이 찍어주며 인화해서 나눠 보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가장 예쁘게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카메라가 인기가 많았던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기억'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카메라의 주인은 본인의 사진을 남기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카메라를 가장 잘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가장 잘 촬영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본인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부러 남에게 자신의 카메라를 넘겨주어 찍어야 하는데 그 결과물에 대한 신뢰나 과정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가진 다른 사람이 모습을 남겨주어야 하므로, 일단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가져온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카메라의 주인은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카메라에 남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지금처럼 필름 카메라 유저가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당시 나 또한 카메라에 내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는 타이머 기능-또한 내가 서있을 자리를 예측해서 초점을 맞추어 놓고 뛰어가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셀프 카메라를 혼자 찍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을 사용하거나 함께 있는 사람에게 내 사진을 부탁했어야 했는데, 초점을 맞춰 찍어야 하는 반수동 카메라이기 때문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으므로 부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부탁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손에 넣은 독사진은 대부분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린 사진들이었을 정도로 생각보다 처음부터 잘 담아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애초에 무리해서 부탁을 잘하지 않았다. 내 모습을 잘 담아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내 모습을 미놀타로 남기는 일 보다 다른 피사체를 담아내는 일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 번거롭게 스스로의 모습을 굳이 미놀타로 남겨놓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함께 있던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예전부터 DSLR(디지털카메라)을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고, 친구의 DSLR도 초점을 맞추어 찍는 렌즈였기 때문에 그 친구는 포커싱을 맞추는 일에 익숙했다. 그 날은 생일 케이크도 그렇고 여러 가지 기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니까, 내 사진을 카메라에 남기는 일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맞아떨어지니 부탁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에게 사용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카메라를 건네주었는데 한 컷 찍고 두 번째 컷을 찍기 위해 필름을 감고 난 후부터 어째서인지 필름이 감기지도 않고, 셔터가 눌러지지도 않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심장이 곤두박이칠 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어 친구의 잘못인 줄만 알고, 친구에게 혹시 잘못 누르거나, 다른 기능을 만지지는 않았냐고 묻기에 바빴다. 그때는 미놀타를 사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니 더더욱 미놀타의 기능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고, 필름 카메라에 익숙하지 못한 시기였다. 나도 잘 모르는 주제에 친구에게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으니 상대방은 얼마나 곤란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당시엔 친구 탓만 했었다. 내 속은 또 얼마나 쓰렸는지, 애지중지 3번이나 교환해서 가까스로 멀쩡한 미놀타와 함께 하게 되었는데 또 고장 나면 어쩌지, 앞에 촬영한 사진들은 무사할까? 걱정을 하며 계속해서 카메라를 살폈다. 그러는 와중에도 친구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결국 나중에 알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미놀타의 셀프타이머 기능 버튼이었다. 미놀타는 클래식한 바디와 상반되는 셀프타이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카메라 앞부분에 처음 보는 사람은 있지 없는지도 모를 것처럼 생긴 버튼을 올려서 셔터를 누르면, 10초쯤 지난 뒤에 자동으로 사진이 찍힌다. 이때 그 버튼이 올려져 있으면 카메라 셔터를 아무리 눌러대도 10초가 지나기 전까지 절대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난 미놀타가 셀프타이머 기능이 있다는 걸 이 날 처음 알았다. 아아, 무지한 인간이여.

게다가 그 날 감아놨던 필름은 빈티지 CVS 필름이었는데, 24컷인 필름을 36컷으로 맞추어 놓고 찍은 바람에 일어난 총체적인 해프닝이었다. 필름은 잘 감기지도 않는데 계속 감아대니 겉돌면서 같은 컷에 계속해서 사진이 찍혔고, 그러다가 필름을 감는 레버가 감기다가 중간에 턱턱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미놀타에는 없는 기능인 다중노출 사진이 마지막 컷에 몰려 얻어걸렸다. 물론 열댓 개의 장면들이 겹쳐져 쓸만한 사진은 없었지만. 친구가 열심히 찍어준 내 사진은 여러 가지 장면들에 겹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날의 참담했던 결과물




나중에 카메라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쁘고 미안했던지. 친구에게 몇 번이고 사과했다. 네 탓이 아닌데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착한 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 다른 이에게 카메라를 맡기기 까지는 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미놀타에게 익숙해지고 난 후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처럼 카메라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써오던 물건을 남에게 맡기는 데에는 생각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혹시나 미놀타가 그 날 고장이 났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친구의 탓이었을까? 아마 그 당시의 나는 친구의 탓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놀타를 세 번이나 교환했고 여태 사용해왔던 당사자인 지금의 나로서는 미놀타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했던 카메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장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의외로 결과물에 문제가 있을 때 이유를 생각해보면 카메라 문제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 세월로 인해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부품이나 작동 문제들을 제외하면 그저 촬영 당사자의 미숙한 조작으로 결과물이 아쉬울 때가 더 많았으니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모르면 모를수록 더 남의 탓을 하게 되는 것이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구나 싶다.


그 후에도 미놀타를 자신이 여행하는 동안 쓰고 돌려주겠다고 한 지인이 있었는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 빌려주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커서 다른 이유를 설명할 겨를이 없었지만, 언제든 고장 날 수 있는 물건을 맡겼다가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서 고장나버리면 서로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겪은 후였기 때문에 쉽게 빌려줄 수 없었다. 게다가 카메라라는 물건이 또 그만큼 민감한 기계이기도 하고, 그 기계에 대해서 무지하면 무지할수록 더더욱 엄한 상대방을 탓하기에 좋은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필름 카메라는 남에게 빌려주거나 맡기는 일을 지양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끔 지금의 연인과 여행을 가서 함께 필름 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담아줄 때가 종종 있다. 이제는 필름 카메라의 기능들도 어느 정도는 파악을 했고, 작동이 잘 안 될 경우 대처법을 예상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미놀타가 손에 익었으므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옆에 있으면서 미놀타를 마음껏 사용하게 하는 건 또 빌려주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휴대폰이나 다른 기계들도 손에 익고 정이 들면 헤어지기 아쉬운 것처럼, 카메라는 추억을 공유하는 매개체로서 그 의미가 큰 존재이다.

미놀타의 눈으로 담아내는 세상이 아름답고 소중한 만큼, 그리고 상대와 괜한 오해로 마음이 상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미놀타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다 보면 미놀타는 그만큼을 결과물로 아낌없이 보답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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