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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Oct 11. 2020

좌충우돌 우도 여행기 01

할 일이 없어서 더 할 일이 많았던 우도에서의 첫날

강사 일을 시작한 지 3년을 채우기 직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믿었던 이는 떠나가고, 엄마는 많이 아팠고, 나도 그만큼 몸과 마음이 고단했던 겨울을 지났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나의 미놀타.

숨 막히는 현실에 치여 1 년 간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계획했지만, 막상 혼자 타지도 아닌 타국을 여행하려니 덜컥 겁이 났었다. 오롯이 혼자 하는 여행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기에 다음 해 1월에 계획해놓은 치앙마이 여행의 축소판으로 제주도 우도에서 일주일간 묵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처음 꺼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권태기 3,6,9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어쩌면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강도나 스트레스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러니 불평해서는 안된다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굴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해진 장소도, 상사도, 고객도 없이 물 흐르듯 바람 불듯 그렇게 많은 이들을 거쳐 갈 뿐. 걔중 머무르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는 주위 친구들의 직장생활을 곁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오는 여러 고충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때의 난 고작 3년 차 밖에 되지 않은 여전한 사회 초년생일 뿐인 일개-지금도 여전히 일개一介강사지만 그땐 정말 정말 일개보다 더 하찮은 반개半介강사였다.-프리랜서 강사였기에 여러 가지 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었고, 일에 대한 권태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 중 하나였을 것이다.


방문레슨을 하며 정작 힘들었던 건 여기저기 학교나 기관, 가정집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돌아다니는 일이었는데, 그마저도 부모님께 작은 경차를 하나 받아 타고 다닌 뒤에는 훨씬 고단함이 줄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유 없이 어떤 아르바이트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그저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어 날짜를 세어보면 어김없이 3달, 6달, 9달이었다. 그랬던 내가 당시 강사 일로 자그마치 3년을 찍어 버렸기 때문인 걸까. 싱숭생숭하고 숨 막히는 류의 감정 널뛰기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나를 짓눌렀다.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던 그 방랑벽이 문제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당시 고작 60대 중반이었던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다행히 치매는 아니었다.-지난겨울 한 달 밤 새벽을 내리 울고, 매일 아침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났던 그때를, 원인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원망하며 심해까지 곤두박이칠 쳤었던 계절을 지나서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중요한 사실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난 떠나야만 했다. 내가 맡은 역할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든 감정적 굴레는 나를 숨 막히게 했고, 물먹은 미역처럼 한 없이 땅으로 축축 쳐지게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꺽꺽 거리며 그렇게 겨우 8월까지 달렸다. 8월에 떠날 여행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치앙마이 여행의 대비도 대비였지만, 지난 제주여행에서 뙤약볕이 살인적인 제주의 미친 여름이 너무하다고 치를 떨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8월의 제주로 그것도 30년 전 제주처럼 자연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섬 속의 섬 우도'로 갔던 이유는 어떤 숙박시설의 노을 지는 창 밖 풍경에 넋을 놓고 난 후였다. 우연히 우도 숙박을 검색했다가 한 번 그 사진을 보고 난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쳤던 장면이 눈에 밟혔다. 생각이 날 때마다 계속 들어가서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 사진이 담긴 후기를 정독했다.

후기를 적어놓은 그 사람처럼 마지막 배가 떠난 6시 이후로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는 우도의 한적한 바닷가를 혼자 전세 낸 마냥 빌려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다.

숙소 바로 앞에 모래처럼 깔린 천연기념물 산호, 홍조단괴의 해변에 누워 맥주 한 캔을 칙- 하고 따서 옆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듯 지는 해와 노을을 보며 나의 육신도 함께 바다 너머 세상 끝으로 뉘엿뉘엿 지는 상상을 매일매일, 정말 매일같이 했다. 그렇게 상상과 현실을 오고 가며 마치 또 다른 자아가 떠날 준비를 하 듯 홀린 사람처럼 우도 여행을 착착 계획했다.


그때의 여름휴가는 시작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다. 서울에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친구와 록 페스티벌을 관람하고 허리가 끊어질 때까지 방방 뛰며 락 스피릿에 흠뻑 젖은 후에 친구네에서 뻗었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그리고 제주도에서 김해공항으로 넘어오는 나름 경유하는 코스였다.

록페스티벌에 가는 것도 순전히 충동적인 결정이었는데, 휴가 계획을 하던 중 여행 날짜와 딱 떨어지는 날 애정 하는 자우림이 나온다고 해서 결정한 경로였다. 마침 그 동네에 친한 S가 자취를 하고 있었고, 알고 보니 또 다른 친구 M이 다른 무리와 함께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그곳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뛰고 싶을 땐 언제든지 정신줄 놓고 뛰쳐나가 밴드와 함께 물아일체 되고, 생맥주를 원 없이 먹고,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참 좋았다. 그리고 역시 자우림 밴드는 최고, 보컬 김윤아님의 목소리는 음향 세팅을 하며 잠시 흥얼거리기만 해도 발끝부터 소름이 끼치는 독보적인 음성이었다.


록 페스티벌도 좋았지만 M과 함께 홍대의 로모그래피 가게에 들러 종류별로 필름을 구매했던 시간도 뿌듯하고 행복했었다.-우도에 가서 실컷 찍을 요량으로 구입했던 필름. 이후 현상했던 사진 속에 박제된 밤하늘이 참 예뻤다.-그리고 대망의 제주 여행.

밤에 도착한 제주에서 공항 근처에 묵기 좋은 숙소라고 하룻밤만 묵고, 다음날 바로 우도로 향했다.

사실 공항으로 향하기 직전까지 서울여행에 푹 빠져서는 늦잠을 실컷 자고 출발 직전까지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바빠 우도를 잠시 잊고 있었다. 막연한 기대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바심 내거나 큰 감정적 변화는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평안했다.


우도에서 첫날 묵었던 숙소는 <우영팟>, 제주도 말로 작은 텃밭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닮은 예쁜 게스트 하우스였다. 현재는 독채 펜션으로만 묵을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사장님 두 분 다 정말 정말 좋은 분들이라 여행을 할 때마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참고로 이후 3번을 더 방문을 할 정도로 우도 최애 숙소가 되었다. 물론 계속해서 방문할 예정.-1인 숙소로 묵었던 때가 벌써 몇 년 전이되어 아득하니 좋은 추억이 되었다.


당시 숙박 이용객은 렌터카 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호기롭게 '버스가 있으니 괜찮겠지 뭐.'라고 생각했다가 정말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걸어 다니려 하다가 탈진할 뻔하고, 드러난 살갗이란 살갗은 발갛게 그을려 새까맣게 타버렸다. 고생도 바가지, 땀도 바가지로 흘리며 뭐가 좋다고 그때의 난 그렇게 돌아다녔을까.


그때를 복기해보자면, 본격적인 홀로 여행은 둘째 날이었다. 여행 계획 후에 친구 윤의 가족 휴가를 제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우도를 지나가듯 추천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이는 바람에 우도에서의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윤은 남편과 아이 둘, 총 4명의 식구였기에 편의를 위해 우도의 다른 펜션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첫째 날엔 친구네 부부와 함께 서빈백사에서 여유롭게 물놀이를 하며 보냈고, 둘 째날 친구네를 보내고부터 혼자 우도에 머물게 된 것이다.


친구네 가족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한 후,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카페 '머뭄'으로 갔다.

아쉽게도 올해 다른 가게로 바뀌며 없어진 카페 이지만, 그때는 여사장님께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원데이 클래스를 여셨는데 제주도 특유의 작은 소라나 조개껍데기를 붙여 만든 그 드림캐쳐가 내 생에 첫 드림 캐쳐이다.

난 제주 해녀 분들이 들고 다니는 '태왁'모양을 본 딴 드림캐쳐를 만들기로 했다.

* 태왁 : 제주말로 '물에 뜬 바가지'라는 뜻으로, 해녀가 물질을 할 때 사용하는 작은 보관용 그물(망시리) 바구니. 그곳에 채집한 해산물들을 보관하며, 잘 여문 박의 속을 파 물에 잘 뜨도록 만들어 몸을 기대 쉬기도 한다.

그런데 사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드림캐쳐 만들기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단체손님이 들이닥쳤다. 미안해하시는 사장님께 오늘 우도에서 숙박하니 천천히 하시라고 말씀드린 후 미놀타를 들고 카페 앞 포토존으로 나가 풍경을 구경했다.


땀이 턱을 타고 흐르고 콧등을 타고 흘러도 미놀타의 사각 뷰 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작은 꽃과 빈 조개껍데기들을 찍고, 셀프타이머 기능을 십분 활용해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지런히 촬영했다.

카페 옆에 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머뭄카페의 옥상에서 보이는 탁 트인 전경도 참 좋았다. 운이 좋게, 난간이 있어서 미놀타를 올려놓고 내 모습도 실컷 남기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물론 미놀타의 포커스 기능은 수동이므로, 대강 내가 설 자리에 맞추어 초점을 조정한 후 10초 안에 뛰어가서 원래 그곳에 서있었던 것 같은 포즈로 찍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타이머 기능을 가지고 노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열심히 미놀타와 놀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이제 손님들이 가셔서 수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으니 내려오라는 말씀이었다. 1층 카페로 내려가니 사장님께서 평소에 열심히 모아 씻어 말려놓은 조개껍데기와 고동들이 하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손으로 만들었던 태생이 우도인 드림캐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리맡을 지켜주고 있다.


카페 머뭄의 사장님과는 신기할 정도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서로 대화가 잘 오고 간다고 해야 할까. 잘 들어주면서도, 적당히 그리고 유연하고 솔직하게 서로의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사장님과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장님이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원래 모르는 사이일수록 더 솔직해질 수 있잖아요. 그저 내 이야기만 담고 떠나가면 그만인 사람이니까.”








6시에 사장님과 함께 퇴근하게 된 나는 친절한 사장님 덕에 차를 얻어 타고 다음 코스인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기대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우도 안에 책방이라니, 그것도 제주 옛날 집을 부부 사장님들께서 오랜 시간 고치고 보수해서 손수 연 곳이었다. 6시 이후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난 책방에는 숙박 손님들이나 마을 주민들이 간간이 방문했다.

정신없이 책과 책방을 구경하고 있는데, 여사장님께서 커튼을 걷으며 말을 거셨다.


"노을이 예쁜 시간이에요."


그리고 창으로 눈을 돌린 나는 홀린 듯 미놀타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책방 한 켠에서 두 사장님이 조용히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더니-아마, 카메라에 대한 대화였던 것 같다.-남 사장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혹시, 작가님.. 이신가요?"


작가님이라니. 당시도 독립 출판물에 관심을 가지고 수업을 듣고 있던 터라, 작가님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독립 출판물을 정식으로 판매하기는커녕 완성된 작품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웃으며 아니라고 말씀드린 뒤, 계속해서 책을 구경했다.

그리고 책방을 나오는 길에 어떤 용기가 솟았는지 모르겠지만,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실 출판물을 내고 싶어 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 언젠가는 꼭 출판물을 낼 생각이에요."


"그럼, 작가님 책이 나오면 입고 문의 꼭 주세요.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할게요."


사장님은 미소 지으며 대답하셨다. 정말 이렇게까지 따듯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작가님이라니. 작가님이라니! 너무 과분하지만 기분 좋은 호칭이었다. 너무 달콤해서 자꾸만 욕심나는 그 단어에 정신이 잠깐 몽롱해졌다.

우도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다정해서 나를 감동하게 만드는 건지 한참을 생각했다.-물론 작가님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우도라는 섬에 도는 특별한 기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스갯 상상을 하며, 꼭 입고 문의를 드리겠노라 몇 번이나 머리를 숙여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뒤 책방을 나왔다.

그 후로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여전히 난 정식으로 완성된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작가 지망생일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때 그 사장님의 한마디가 온 머릿속을 빙빙 돌며 자꾸만 살아나 움직이고 꿈틀거린다.







해가 진 책방 앞의 작은 나무 벤치에 앉아 냉침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고양이들과 몇 분 놀다가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면적이 넓은 우도에서 책방 반대편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서 돌아가기는 역시 무리였기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에게 연락을 드려 데리러 와 주실 수 있으시냐 여쭤보았다.

사장께서는 일을 마무리한 후 금방 와주셨는데, 저녁에 간단히 먹을 장을 볼 수 있도록 마트에 잠시 차를 세워주시는 배려까지 해주셨다. 덕분에 숙소까지 편안히 이동했고, 남은 저녁 시간을  배고프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뻔뻔스럽게 저런 부탁을 잘해놓고도 속으로는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사람들에게 이만큼이나 신세를 져야 지속 가능한 여행이라니. 그들은 익숙한 듯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나에게 스치듯 친절을 베풀었겠지만, 난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 온기가 마음 깊이 물들어 따뜻함과 감사함을 절절히 느꼈다.

날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떠나 잠시 들른 섬에서 사람들로 인해 차오르고, 잔잔한 풍경 속 일상들로 인해 회복되는 느낌은 참 벅찼다. 이렇게 한없이 이롭기만 할 수 있나. 파이고 상처 난 케케묵은 감정과 정서에 새 살이 돋아나듯 기분이 충만해졌다. 겨우 홀로 여행 첫날의 저녁이었을 뿐인데, 이미 일주일치 휴식을 다 취한 것 같았다.

분명 그때의 기억으로 우도라는 섬이 여전히 좋았던 기억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생판 모르는 섬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심폐 소생술을 받아 지금까지 그 여운으로 살아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웬걸, 숙소로 돌아온 나는 기겁했다.

애증의-당시에 본인의 조작 미숙으로 이렇게 불릴 때가 가끔 있었다.-미놀타에 필름이 겉돌며 여태까지 감기지 않고 있었다. 이럴 수가.

순간 내 하루 동안의 시간이 모두 증발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멍해졌다가, 잠시 절망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일, 다시 똑같은 곳들을 여행하며 같은 곳들을 촬영해보기로.


어차피 우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일정도 없었던 터였다. 머묾 카페를 한 번 더 갈 생각이긴 했지만, 또 이렇게 핑곗거리가 생기니 귀차니즘형 인간인 나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일은 잘할 수 있겠지?




* 첨부된 사진들은 다음 날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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