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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문화생활 Jul 11. 2021

인생의 덧없음, <비바리움>

비관적이고 회의적으로 바라본 인생

자연의 섭리

부감 쇼트로 보여준 '욘더'

<비바리움>은 주거지라는 중심 소재를 통해 가정에 대해 얘기하고 나아가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감독의 회의적인 시선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시선과 묘하게 맞닿아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로칸 피네건 감독은 조금 더 비관적으로 이 회의감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새와 둥지를 보여주고 뻐꾸기의 탁란 행위나 새의 죽음 등 일련의 과정들을 자연의 섭리라 말하고 받아들이며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를 암시한다. 함께 지낼 곳을 찾던 톰과 젬마는 왠지 모를 불쾌한 분위기를 가진 중개인에 의해 똑같은 생김새의 집들이 끝없이 펼쳐진 욘더라는 마을의 9호 집으로 향하게 되고 곧이어 둘은 욘더에 갇히게 된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욘더를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둘에게는 한 명의 아이가 전달되고, 아이를 다 키운다면 욘더를 나가게 해 준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존재와 함께 생활을 해야 하는 젬마와 톰의 모습은 과장된 설정만 빼고 보면 보편적인 연인, 부부의 모습이다. 평범한 현실을 스릴러적 장치를 사용해 탈출이 불가능한 미로의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낯선 존재와의 공생

청소년의 모습이 된 '그것'

시간이 지나 '그것'은 청소년의 모습으로 젬마와 톰의 침실에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영화에서는 중개인이나 그것의 존재가 유독 불쾌하고 꺼림칙하게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감시카메라처럼 둘을 바라보거나 그들의 대화를 따라 하는 행동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이는 아주 본능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의성어를 습득하고 반복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인간의 성장에 있어 당연시되는 행동이며 또한 젬마와 톰은 그것을 혐오와 증오의 감정으로 대하기 때문에 사랑이 결여된 관계의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동거가 지속되며 그것은 때때로 외계적 존재로 그려져 꾸준한 이질감을 준다. 결국 부부와 공생해야만 하는 새로운 존재가 주는 이질감으로 확대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도 감독의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시선이 충분히 전달된다. 


현실을 비추는 거울

자신들을 지켜보며 따라 하는 '그것'을 혐오하는 젬마와 톰

영화는 극단적이고 과장된 설정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현실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분법적인 성 구분이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젬마가 9호 집에서 파란색 벽지를 보고 남자아이의 방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나 침실에 준비되어 있던 분홍색과 하늘색 잠옷은 이를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스테레오 타입과 감독의 가치관으로 미루어보면 영화는 현대시대의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이에 대한 회의감을 담아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또한 결정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톰과 그것에게 모성애를 갖는 듯한 젬마의 모습도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상이나 여성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둘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것의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을 청하려는 젬마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침대 난간의 그림자가 창살처럼 보이게끔 한 씬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실험적 시도

톰이 죽고 성인이 된 '그것'을 공격하다 환각에 빠진 젬마

여담을 이어 <비바리움>의 연출은 아주 감각적이고 실험적이다. 색감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욘더를 묘사한 방식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과감해지는 연출들로 영화는 볼거리가 많은 편이다. 무엇보다 숏의 사용이 다양해 단조로운 장소나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끔 비교적 훌륭하게 완화한다. 후반부에서는 젬마와 톰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지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잘 정리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 몰입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설정 자체에서도 볼 수 있듯 영화의 거의 전체가 메타포의 연속이라는 것인데,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은유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크리피한 작품이었다.


죽음, 굴레에서의 탈출

톰, 그리고 뒤이은 젬마의 죽음

결국 그것은 성인이 되었고 젬마와 톰은 탈출이 아닌 죽음을 맞이하는데, 욘더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톰이 파냈던 마당에 둘은 파묻힌다. 이에 따른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영화 전체에 도사리고 있는 회의적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결국 인간의 평범한 일련의 과정들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행동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컨택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선택해 살아가는 인간만의 숭고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젬마와 톰은 죽음을 맞이하고 성인이 된 그것은 중개인이 되어 집을 구하는 또 다른 연인을 만난다는 결말은 끊어지지 않는 일종의 굴레를 잘 나타낸다. 어쩌면 모든 존재들은 무수히 많은 희생들을 딛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첫 부분과 수미상관을 이뤄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라고 말하고 있다. 회의감을 주는 한편 우리의 인생은 결국 개개인의 의지와 불가항력적 요소들의 합작임을 다시 한번 더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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