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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Feb 07. 2021

언론개혁은 민주당의 NPC일까




[개혁] 구체제를 합법적, 점진적인 절차를 밟아 고쳐나가는 과정.
혁명이 기존 제도나 체제의 전면적 변화를 뜻한다면, 개혁은 기존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 모순을 제거해 체제 붕괴를 방지하는 것이다.
- 출처 두산백과
2월 임시회 회기 안에 처리해야 할
언론 개혁 입법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 뉴스는
사회의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월 3일 언론 개혁에 대한 법안들을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다 돼가지만 유독 언론 개혁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나 진척이 없던 터라 곳곳에서 기대감 같은 게 읽히기도 합니다.


여당에서 2월 언론 개혁 입법을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곳은 <미디어·언론 상생 TF>입니다. 노웅래(MBC 출신), 양기대(동아일보 출신), 정필모∙고민정(KBS 출신), 민형배(전남일보 출신) 등 전직 언론인이 주축입니다.  T/F가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하는 법안들은 주로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형법 개정안들로 6개 정도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미디어·언론 상생 TF 발족식 모습

    

2월에 처리될

'언론 개혁' 법안은?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신현영 의원(비례대표) 법안은 악의적인 허위 비방 인터넷 기사를 내릴 수 있게 하고 있고(열람 차단 청구권),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을) 법안은 인터넷 게시판의 댓글로 심리적 피해를 입은 경우 게시판의 운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김영주 의원(서울 영등포갑) 법안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원을 90명에서 120명으로 증원해서 반론보도나 정정보도 청구권자의 빠른 피해 구제를 돕겠다는 거고, 윤영찬 의원(경기 성남 중원) 법안은 인터넷 이용자가 타인의 고의적인 거짓 불법 정보의 생산 유통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최대 3배 정도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현영 의원의 법안이 통과되면 배우 반민정 씨 같은 사례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 씨는 배우 조덕제 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조 씨를 상대로 법정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조 씨의 지인인 한 기자가 반 씨에 대해 지속적으로 허위 인터넷 기사를 게재하면서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민정 배우 인터뷰  


반민정 배우


윤영찬 의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부 유튜버에 의해 제기되는 무책임한 폭로성 콘텐츠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기도 합니다.     


이 법안들 말고도 정청래 의원(서울 마포을)이 발의한 언론사의 악의적 인권 침해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 KBS 부사장 출신인 비례대표 정필모 의원이 발의한 KBS 사장 국민 추천제도 언론 개혁 법안으로 거론되지만 2월에 처리될 법안 목록에서는 빠졌습니다. 이 두 법안의 경우 여당이 큰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2월 국회에서 결론 나기는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정청래 의원 법안에 대해서는 한국신문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이 일제히 반대하고 있고, 정필모 의원 법안의 경우도 논의가 길어질 것을 우려하는 여당이 논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허위 비방 인터넷 기사를 막고, 게시판 댓글 사용을 차단하며, 언론중재위원을 증원하고 가짜 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유튜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으로 언론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화제가 됐던 김영민 교수처럼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런데, ‘언론 개혁이란 무엇인가?’

    


언론 개혁이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열린 사전인 <우리말샘>에 따르면 '언론 개혁'이라는 단어는 2016년에 처음으로 표제어로 등장했는데, 언론 분야의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일을 뜻합니다. 80여 개 언론 관련 시민단체가 모여서 만든 <언론개혁 시민연대>도 언론 개혁 활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감시하고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한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며 실천적인 시민행동을 통해 바람직한 언론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    


‘언론 개혁’이 언론학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정도입니다. 학술지나 논문, 단행본을 볼 수 있는 RISS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1998년부터 ‘언론’과 ‘개혁’을 하나로 묶은 ‘언론 개혁’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언론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책, <언론 개혁의 무기>도 이때 나왔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손석춘 당시 기자, 현 건국대 교수가 말하는 언론 개혁의 요체는 ‘언론사 편집권의 참 독립을 위한 재정적 지원 등의 제도화’였습니다. 손 교수는 아래와 같이 개혁에 대한 꿈을 공유하며 책을 마무리 짓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깊숙한 영향을 끼치는
언론의 정치적•경제적 독립 등은
얼핏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책에 담긴 새 언론의 꿈을 더불어 키워 보자.
미래는 꿈꾸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지 않을까


이런 언론 개혁의 방향은 그렇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편집의 자율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긴 하나 기성 언론의 경우 편집국의 독립은 제도적으로나마 이미 이뤄진 곳이 많고 이를 위해 언론사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접근법은 시대에 다소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언론 개혁은?


 

2021년판 언론 개혁의 상은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기사 종합 검색 시스템인 <빅 카인즈>에서 '언론개혁'으로 검색해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언론 개혁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16년부터 검색량이 급증해 2017년에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다 지난해 다시 최고점을 찍습니다.    


2014년 12건

2015년 19건

2016년 100건

2017년 365건

2018년 58건

2019년 190건

2020년 502건  



2016년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과 촛불 집회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던 바로 그때입니다. 그 무렵 2017년 3월 국회에서 열렸던 <언론개혁의 방향과 입법 과제>라는 토론회. 발제를 맡은 한림대 최영재 교수가 제시한 언론 개혁의 방향성은 아래 세 개였습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균형 구성

사실 확인 저널리즘 강화

상업주의에 포박된 포털 언론 생태계 문제 개선    

  

이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이 저질렀던 큰 잘못들에 대한 해결책들이라는 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 언론, 특히 KBS 등 방송은 정권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청와대 등으로부터 보도 지침을 전달받아 정부에 유리한 기사를 작성했고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정부 발표만 믿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언론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꿔보자는 것이 언론 개혁의 요체였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말하는 언론 개혁은 바로 그 지점, 즉 기성 언론사들이 기존 관행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언론 개혁은

여당의 NPC일까?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오게 했던 그 시민들의 열망은 4년이 넘도록 법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는 기사는 많이 봤는데 통과했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크고 작은 토론회도 종종 있었지만 언론 소비자, 생산자, 정치, 시민사회 중 맘 맞는 한 두 곳이 모여, 스스로 듣기 좋은 얘기들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찰 개혁은 검찰의 비대해진 수사권을 분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장기간에 걸쳐 추진 중이지만 언론개혁은 뭘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하자는 것인지...기자협회가 말하는 언론 개혁이 다르고, 시민들이 말하는 언론 개혁이 다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정치인이, 여당이 생각하는 언론 개혁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소되지 못한 언론 개혁 요구가 마치 용암처럼 계속 끓어오르고... 언론 개혁은 언제부터인지 마치 게임의 NPC(Non player character, 게임의 진행을 돕기만 하는 캐릭터,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음) 같은 존재가 되어 더불어민주당의 개혁성을 1점 더해주고 검찰개혁의 절박성을 키우는 부가적인 존재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허위 비방 인터넷 기사를 막고(신현영 의원 발의), 게시판 댓글 사용을 차단하며(양기대 의원 발의), 언론중재위원을 증원하고(김영주 의원 발의) 가짜 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유튜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면(윤영찬 의원 발의) 우리 언론이 이전 정부에서 했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되풀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제 다 같이 얘기를 좀 해볼까 싶은데 여당은 '2월 내 처리가 목표'라고 합니다.


이러다 언론 개혁이 미완의 개혁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우리 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되는 건 아닐지. 반대로, 그 어떤 정체 세력도 손댈 수 없는 신격화된 존재가 돼 버리는 것은 아닐지. 이러다 언론 개혁이 언론 개혁을 막는 일마저 생기는 건 아닐지.


* <법안으로 세상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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