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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Feb 13. 2021

삼성이 상속세를 줄일 수 있는 신박한 방법

그리고 민주당 이광재 의원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자 세계적인 부호,
이건희 회장에게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이종선 著 <리 컬렉션> 中  

     
쉼표 모양의 나선문,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 듯 향수를 머금은 금빛... 국보 제138호 가야금관 및 장신구입니다.  가야금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호암 수집 문화재 특별전에서였습니다.


국보 제138호 가야금관 및 장신구, 삼성미술관-리움 소장


위대한 유산


 

호암. 삼성을 창립한 고 이병철 회장의 호(號)입니다. 가야금관은 호암 이병철 회장의 수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976년부터 20여 년 동안 삼성가(家)의 문화재 수집과 관리를 담당했던 고고학자 이종선 씨 말을 들어보면 이병철 회장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야금관을 찾아볼 정도로 애착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금관을 몸에 갖다 대며 그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이종선 씨는 책 <리 컬렉션>에서 회고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이런 남다른 고미술품 사랑은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은 1980년대와 90년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소문난 백자 마니아였습니다. 특히 조선 초기 청화백자에 대해 매우 뛰어난 식견을 갖고 있어서 복제품을 여러 개 만든 다음 청화 안료의 푸른색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정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부인 홍라희 여사 역시 젊은 시절부터 서울 인사동 골동품 거리 등을 돌며 고미술품을 보는 안목을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홍 여사의 부친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도 고미술품에 관심이 커서 이병철 회장이 1982년 개관한  호암 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자의 품 안에 들어온 수집품, 리 컬렉션 가운데 국보급 문화재 일부는 삼성문화재단이 운영 중인 삼성미술관-리움(이하 리움 미술관)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 미술관에 보관되거나 전시되고 있습니다. 국보 40여 점, 보물 100여 점 등 150여 점에 이릅니다.      


여기에다, 공개되지 않은 회화, 조각, 서화, 고문서 등을 포함하면 리 컬렉션은 모두 만 2천 점~만 5천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시대 유물에서부터 로댕이나 프랜시스 베이컨, 게하르트 리히터 같은 현대 작가의 작품까지... 개인 수집가의 수집 규모로는 손에 꼽을 정도일 걸로 추정됩니다. 2007년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600억 원의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면서 그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이 30여 점 포함돼 있어 큰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비자금과 작품...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고가의 미술품은 대리인을 통해 거래될 경우 거래 내역이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고위층의 재산 은닉과 탈세 수단으로 악용돼 왔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비자금 기사 보기


유산의 대가, 상속세


이건희 회장 부고에 애도 성명을 발표한 국제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지난해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등진 뒤 세계적인 리 컬렉션세계적인 과세 대상이 됐습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가(家)가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미술품과 고미술품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보면 서화나 도자기, 미술품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며, 상속세 세율은 과세표준액에 따라 10%에서 최고 50%까지 적용됩니다. 1월 중순에 삼성이 서울옥션,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등에 이건희 회장이 소유한 미술품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는데 리 컬렉션의 가치를 매긴 뒤 처분할 미술품을 가려내고, 계속 가져갈 미술품은 상속 대상 재산에 포함시키기 위한 걸로 보입니다. 누구는 그 가치가 모두 '조 단위'라고 하고 누구는 '수조 원'이라고도 합니다만 정확히 얼마에 이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관련 기사 보고 오기      



선대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이재용 부회장의 심경은 어떨까요. 양가적일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서미 갤러리를 앞세워 2002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처럼. 이 부회장을 비롯한 홍라희 여사 등 유족이 이건희 회장 몫의 삼성 계열사 지분에 대해서 내야 하는 상속세가 이미 11조 원에 이릅니다. 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여전히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재산들도 있을 겁니다. 여기에다 ‘리 컬렉션’에 대한 상속세까지.... 상속세로 모두 얼마를 내야 할까요? 그 규모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줄일 수 있을까...?



초일류 기업 삼성이라도 현금으로 내야 하는 상속세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속세 납부를 위해 가족들의 계열사 지분을 정리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보유 주식을 처분하지 않으면서도 현금 납부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신박한 방법, 없을까요?


가장 좋은 건 계속 소유할 가치가 있는 미술품이라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그대로 삼성가가 소유하는 것일 겁니다. 더 좋은 건, 세제 혜택까지 받고 그대로 삼성가가 소유하는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30억 원 가치의 작품을 15억 원의 상속세를 내고 상속한 뒤 미술관에 기증하려는데, 해당 작품이 법정 기부금처럼 처리돼 30억 원 전액 세액 공제된다면 어떨까요? 거기다가 만약, 그 작품을 기증받는 미술관이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 미술관이나 호암 미술관이라면? 이 부회장 등 유족 입장에서는 작품을 사실상 그대로 가지면서 15억 원을 이득 보는 셈이 됩니다. 상속세를 줄이려면 미술품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게 유리하겠지만, 위의 경우라면 미술품이 고평가 될수록 세제 혜택도 늘어납니다.    


미술품들 가운데 보관하기 까다로우면서도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게 있다면 소장하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내다 파는 게 나을 텐데요. 만약 유족이 내야 할 수 조 원 상속세 가운데 일부를 이런 작품들로 대신 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삼성 입장에서는 경매 시장에 내놓는 번거로움을 피하면서도, 자산 가치 하락도 막으면서도, 상속세까지 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위의 상황은 물론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속세는 부동산이나 주식으로는 낼 수 있어도 미술품으로는 낼 수 없고 미술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기증하더라도 법정기부금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빛처럼 나타난 이광재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지 딱 한 달이 지난 11월 25일 국회에 법안 네 개가 발의됐습니다.

  

상속세를 예술적이고 역사적 가치가 큰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게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법인이나 개인이 미술품을 기증할 경우 이를 법정 기부액으로 인정해 개인의 경우 전액 세액 공제, 법인의 경우 50% 공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법인세법 개정안’,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   

   

이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가장 신박한 방법'이 곧 현실이 될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 법안들은 상속세 부담도 줄이면서 리 컬렉션을 대를 이어 사실상 소유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풀 패키지 법인 셈입니다. 발의자는 더불어민주당 강원 원주 갑 지역구의 이광재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리움 미술관이 개관한 지 2년 정도가 지난 2006년 10월, 제17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미술품을 기부하면 기부한 사람이나 법인에게 소득세나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내용만 있었는데 지난해 11월 25일에 상속세 미술품 대납 법안도 추가됐습니다. 이광재 의원은 삼성을 위해 이 법안들을 발의했을까요? 법안 제안서 어디에도 '삼성'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광재 의원과 삼성의 인연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최고 위원이던 시절인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의원은 당시 노 최고위원의 보좌진으로 세미나 개최를 담당했는데 이때부터 삼성경제연구소(SERI)와 교류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노무현 최고위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에는 삼성경제연구소에 참고 보고서 작성을 부탁하기도 했고 이때 작성된 보고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공유됐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있을 때는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 홍석현 현 중앙 홀딩스 회장(사진)을 주미대사로 추천했고, 홍 회장이 주도한 싱크탱크 여시재의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여시재 설립 이듬해인 2016년부터 지난해 총선 출마 때까지는 여시재 원장, 부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이 의원은 ‘디지털 민주주의’를 강조해오고 있는데 방대한 오프라인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법안,  비공개 정보인 국가 공간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탭니다.



패키지 법안의 허점



이광재 의원의 법안 패키지는 몇 가지 허점이 있습니다.  

우선, 다른 상속세 납세자들과 형평성 문제입니다. 조세 납부의 원칙은 ‘금전 납부’입니다(국세 징수법 시행령 제18조 제1항). 즉, 세금은 현금으로 내야 합니다. 전체 상속분의 절반 이상이 주식이나 부동산일 경우에는 드물게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대신 낼 수도 있지만(물납), 세무 당국은 다른 납세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물납 인정 규모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9년에 과세 당국이 인정한 물납은 주식과 부동산을 합쳐서 59건에 불과했습니다. 물납 목록에 미술품을 추가하는 것은 새로운 세원을 하나라도 더 발굴하려는 정부 입장과도 맞지 않습니다. 자칫 특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국민감정, 여론이 악화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作 <예술가의 초상>


두 번째로 미술품의 가치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산정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미술품의 가치를 매기는 데는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고 리 컬렉션에도 포함돼있는 세계적 거장의 작품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도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경우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2018년에 1019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당초 910억 원에 나왔는데 경매 한 번에 100억 원이 뛰었습니다. 낙찰자가 이 작품을 또 경매에 내놓는다면 또 얼마로 뛸까요? 알 수 없습니다. 공급과 수요가 극히 제한된 특수한 시장에서 미술품 가격의 의미는 마치 횟집에서 귀한 제철 생선의 가격을 매길 때 쓰는 용어인 '시가'와 비슷해 보입니다.  귀하기 때문에 '주인장 마음대로'. 가격이 합리적인지 묻고 따지는 순간 '뭘 잘 모르시는 분'이 됩니다. 


2013년에는 이중섭/박수근 작품 2800여 점이 위작으로 판명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 역시 미술품의 가치를 매기고 검증하는 작업이 얼마나 까다로우며 동시에 허술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만에 하나 감정가가 부풀려진다면 부풀려진 만큼 국고 손실이 늘어납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 역시 가치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징수 체계 자체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입법조사처 연구 보고서 보고 오기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의 상속세 신고 납부 기한은 오는 4월까지입니다. 규모가 워낙 커서 5년 동안 분할납부(연부연납)를 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이광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이광재 의원이 발의한 4종 패키지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 올라와 본격적인 논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논의의 속도와 시기는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정하는 것이라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큰 혜택을 볼 곳은 그룹 내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재벌 기업들이고 그중에서도 삼성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지고 법이 만들어지는 곳은 국회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
 

 

** <법안으로 세상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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