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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Apr 20. 2021

민주당이 부동산 대책에 진심이라면

당장 해야 하는 일


4.7 재보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졌던 이유 중 하나는 부동산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LH 직원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3월 2일)이 결정적이었는데요. 그때까지 누적돼 온 유권자들의 부정적 여론이 LH 사태를 계기로 불 타 올랐고, 중간에 한 번씩 터져 나온 여당 의원과 고위 공직자의 전셋값 인상 논란이 배신감까지 더하면서, 민심은 특히 서울 전역에서, 꽤 멀리 떠났습니다.


한국리서치 등 국내 여론조사 기관 네 곳이 함께 시행하는 전국 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LH 사태가 터진 직후인 3월 둘째 주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국정 운영 긍정 평가’보다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격차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시작되는 재보선 일주일 전까지 계속 커졌고 선거 당일까지도 두 자릿수 이내로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재보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부동산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이슈의 파급력과 효과(?)를 절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이슈이기도 해서 더 그럴 텐데요. 공세는 크게 두 개 축으로 진행 중입니다.


첫 번째는 공동주택 공시 가격입니다. 지난 4월 12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공시 가격 인상률이 지나치게 높으니까 속도를 좀 늦춰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권 시장은 “공시 가격을 현실화해야 하는 건 맞지만 공시 가격이 올라가면 세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등의 부담도 증가한다. 부담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앙 정부에 속도 조절을 건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시 가격 인상률이 지난해보다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 가격은 전국적으로 5.98%가 올랐는데 올해는 19.08%가 올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지역의 집값 자체가 올랐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정부가 시세의 70% 선인 공시 가격 반영 비율을 오는 2030년까지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공시 가격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산정하는데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등 세금을 부과하고 각종 복지 제도 적용 정도와 여부를 정하는 기초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오르는 만큼 그 파급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시지가가 활용되는 행정 분야(출처:국토부)


공시 가격 인상률이 지난해보다 커져서 그런지, 올해 공동주택 공시 가격에 대한 이의 신청 접수가 최근 끝났는데 그 규모가 역대급이라고 합니다. 서울 강남권에선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강북권에서는 성북구 길음동 래미안 길음 센터피스 등이 공시 가격 하향조정을 요구하고 있고 인천 청라, 경기 성남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부의 여론을 이어받아 4월 18일에는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 다섯 명이 모여 공동주택 공시 가격 문제에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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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장들 뿐만 아니라 당 차원에서도 틈나는 대로 부동산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시지가 문제에서 시작해 어김없이 세금 문제로 확전 시키는 모습입니다. 국민의힘은 4.7 재보선 이후 19일까지 단 하루도 부동산 문제, 종부세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방역과 더불어 부동산을 내년 대선 때까지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킬러 콘텐츠로 삼을 것 같습니다.

"따로 소득도 없는 은퇴자라든지 여러 분들에게 집을 처분해야만 종부세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정책이거든요.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지만 능력껏 낼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가혹한 세금은 안 되는 것이거든요."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4월 9일 <KBS 최강 시사>


3월 31일 국민의힘 김현아 비상대책위원이 KBS <열린 토론>에 나와서 한 말을 들어보면, 국민의힘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인 모델은 민간 자율에 시장을 거의 전적으로 맡기는 형태로 보입니다.   


“민간 개발도 주민들이 동의만 하면 공공만큼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지금 공공이 완장 찬 것도 아니고 민간이 한다고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자기들이 한다고 절차를 줄이는 거 정말 ‘갑질’이라고 생각되고요. 이번에 LH 사태를 통해 보셨잖습니까. 공공이라고 해서 선하지 않습니다. 더 사악하고 뒤로는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직사회의 부패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 주도 개발을 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치 않는다 생각합니다.”
김현아 전 의원, 3월 31일 <KBS 열린 토론>  


최종병기, 부동산  

 

공시 가격의 급격한 상승, 산정의 신뢰성 이슈 등은 세정 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 입장에서는 더 매력적인 공격 카드입니다. '내가 내는 세금이 지금까지 잘못 계산되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오는 듯한데요. 여기다가 부동산과 세금은 돈과 형평성, 공정에 관한 이슈이기에 국민감정이 단숨에 부정적으로 기울일 수도 있는 잠재적 에너지까지 갖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전략 담당자라면 내년 3월 대선 때까지 시세보다 오히려 공시 가격이 높은 경우나 정부 정책이 안 먹히는 실제 사례를 찾아낸 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알리는 일을 반복하자고 당에 제안할 것 같습니다. 중간에 한 번씩 정부 여당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사례, 임대차 3 법 위반 사례를 터뜨려 정책 불신을 강화하려고 할 겁니다. 만약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대통령의 인사 실패 프레임으로까지 확전 시킬 수도 있고 ‘진보는 깨끗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다’는 진보 정권 무능 프레임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진보 정권 무능 프레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과거 노무현 정부 말기, 보수 야당은 '종부세는 세금 폭탄'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뒤 '경제 폭망론' 프레임을 더해 결국 이명박 정부로 정권을 교체시켰던 '성공의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부동산 대책에 진심이라면...


국민들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분노가 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힘이 주장하는 내용이 다 맞는 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해 옳은 것만도 아닙니다. 특히 종부세 문제는 공시 가격 9억 원 이상 되는 아파트 소유자들의 얘기이고 이들은 전체 서울 가구의 16% 정도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공급 대책과 '언젠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중요합니다. 서울 전체 가구 가운데 절반이 무주택 가구입니다. 저도 집이 없...ㅠ


그런 점에서 보면 정부 여당 입장에서 당장 풀어야 하는 숙제는 성난 부동산 표심을 달래는 일과 동시에 집값을 잡기 위해 지금까지 펼쳐왔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주택 정책의 두 줄기는 공공에 의한 공급 확대와 투기 세력 근절 정책이었습니다.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게 지난 2.4 부동산 대책이었는데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4월 21일 오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주택정책이 사실은 이제 세제를 통한 수요 억제책을 써왔죠. 그런데 수요 억제책도 필요하지만 공급이 더 중요하더라, 다시 말해서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제보다는 공급이라는 거죠. 사실 저희 정부가 공급 부분에서 소홀한 게 사실이었고 그래서 지난 번 2. 4대책을 통해서 대규모 공급책을 발표해서 시장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제를 통한 수요억제책을 써왔는데..." 

 

2.4.대책을 통해 실제로 투기 세력이 근절되고 공공 개발을 통해 공급이 확대되는 모습이 시장에서 보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 대한 시베리아 얼음 벌판 같은 민심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올해 7월 전까지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어떤 퍼포먼스(performance)를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2.4 대책 법안 발의는 OK...

그런데, 논의는?     

      

정책이 추진되려면 관련 근거부터 마련돼야 하고 그 근거란 곧 법입니다. 우선 <2.4 공급 대책>에 대한 법부터 알아보면, 관련 법안은 꽤 발의가 된 상탭니다. 이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해야 2.4 공급 대책이 합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데요.


발의된 법안들을 좀 구체적으로 보면, 김교흥 의원(인천 서구갑)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공공주택 사업의 한 형태로 가능하게 하는 공공주택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진성준 의원(서울 강서을)은 ‘공공 직접 시행 정비사업’의 근거를 규정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허영 의원(강원 춘천 철원 화천 양구 갑)은 규모가 작은 도심 노후 지역도 정비할 수 있는 내용의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홍기원 의원(경기 평택갑)은 주택도시 보증 공사(HUG)의 보증한도를 기존 50배에서 60배로 늘리는 주택도시 기금법을 제안했습니다. 모두 2.4 대책이 실행되게 하기 위한 be spoke, 맞춤형 법안들입니다.  

 


이들 법안들은 2월 중순에 담당 상임위원회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가 된 점에 미뤄 정부의 2.4 공급 대책 발표 직후부터 민주당 내에서 조직적으로 준비된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안들이 아직 상정(논의가 테이블 위에 올라옴)조차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겁니다. 언제 심의해서 언제 의결해, 국토위원회를 통과한 뒤 법사위를 거쳐 언제 본회의를 통과할까요?기약이 없습니다. 회의 일정 잡고 진행시키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은 여당 진선미(서울 강동갑) 의원입니다.



그렇다면,

투기 근절 대책 법안은?

 

2.4  부동산 대책 내용 요약본

3월 말 정부는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사진)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행위를 제대로 규제하려고 해도 역시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현재 없습니다.


국민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주식 거래법>처럼 이번 기회에 가칭 <부동산 거래법>이 새로 만들어져서 부동산 거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정의되고 불법 행위가 규정되는 한편 부동산 거래 분석원의 설립 근거도 마련하는 것일 텐데 문제는, 없던 법을 새로 만드는 건 있던 법을 좀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단 겁니다. 따라서, 가급적 빨리 정책 효과를 보고 싶은 여당 입장에서는 새로 법을 만들기보다 있는 법을 고치는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고쳐야 할 법안들을 하나씩 생각해보면, 우선 LH 사태처럼 내부 정보를 부동산 거래에 활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 거래 시점에서 각종 신고나 허가 사항을 정리해 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을 고쳐야 합니다. 부동산 거래를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기관인 부동산 거래 분석원만들기 위해서도 역시 이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주택법도 고쳐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투기 근절 대책으로 "분양권 불법 전매가 이뤄질 경우 매수자도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라고 했는데 매수자도 처벌하는 게 가능하려면 주택법이 개정돼야 합니다(주택법 64조).


기획 부동산 사기나 1인 부동산 매매 법인의 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봤던 부동산 거래 신고법이 아니라 부동산 서비스산업 진흥법을 고쳐야 합니다. 부동산 서비스산업 진흥법은 부동산 거래 과정을 산업화해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하는 데에 특화된 법이기에 기획 부동산 규제 내용은 이 법에 담아야 합니다.  또 공인 중개사법, 부동산 개발업법, 부동산 투자회사법 등도 함께 고쳐야 이른바 부동산 시장 4대 교란 행위(비공개·내부정보를 불법·부당하게 활용, 조직적 담합으로 시세 조작, 불법 중개 및 교란행위, 불법 전매 및 부당 청약 행위)를  제대로 규제할 수 있어 보입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뒤져보니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4월 5일 여당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을)이 발의했습니다. 송 의원은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국토교통위원회와 큰 관련이 없는데도 법안을 발의한 게 눈에 띕니다. 송 의원은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상탭니다. 주택법 개정안은 국토교통위원회 활동 중인 김교흥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서비스산업 진흥법이나 공인중개사법, 부동산 개발업 법 개정안 등은 아직 발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2.4 대책은 2월 4일에 발표됐지만 오늘, 4월 20일까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4.7 재보선의 결과를 더불어민주당은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요. 투기 근절 대책과 2.4 대책에 대한 법안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지를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여당이 19일에 부동산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위원회가 어떤 특별한 대안을 내놓을지도 궁금합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보고 오기


    

** <법안으로 세상 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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