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인상 May 15. 2018

루트66, 즐길 수 없다면 달리지마라

루트66은 볼거리가 아닌 60년대 복고의 멋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J양이 묻는다 "선배 루트66 가보셨어요?", "좋아요?", "뭐 볼게 있어요?". 나는 답한다. "가봤지" 그리고 J의 얼굴을 한참 쳐다본다. 뭐든 새것을 찾고 최신을 쫓아가는 J양에게 루트66은 그렇게 매력있는 볼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J양은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한번 가보고 싶다고 난리다. 나는 단호하게 답한다. "니 스타일 아니야 꿈깨"


  



캘리포니아 내 이름난 길을 달릴 때에 이왕이면 누구와 동행하면 좋다. 시에라 이스턴의 멋진 풍경이 그렇고 데스벨리의 기이한 자연 경관을 볼 때도 그렇다. 로드트립의 참 맛은 그렇게 누구와 함께 길이 주는 멋진 풍경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맛있는 먹거리와 함께 할 때 행복지수도 더해진다. 


그러나 동행하고 싶지 않은 로드트립도 있다. 바로 '루트66'이다. 미국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은 들어봤을 그 이름. 이 길은 49ners(1849년에 골드러쉬를 따라 떠난 사람들)처럼 가늠할 수 없는 옛길이 아니다. 루트66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까지, 약 2천400여 마일에 이르는 미국 최초의 동서 횡단 고속도로였고 이 길을 따라 20세기 초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꿨던 젊은이들이 기타와 지폐 몇장을 들고 서부를 향해 차를 달렸다. 


빅토빌에 자리한 루트66 뮤지엄

그렇게 그들이 미 대륙을 횡단해 오는 동안 루트66에는 카페, 모텔, 상점 등이 성업했고 지금도 일부 몇몇은 운영 중에 있기도 하다. 이 길을 달려 서부로 온 이들에게 루트66은 마치, 엄마와 같은 포근한 그 무엇이 있다고 한다. 아마 그런 마음을 읽고 작가 존스타인백은 이 길을 가리켜 '마더스로드'라는 별명을 붙였으리라.

 

지금 루트66은 대부분이 새로 만든 프리웨이로 대체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구간도 개발 공사 등으로 자취를 감춘 곳들이 많다. 그나마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구간 루트66은 아직 달릴 수 있는 곳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편.


오로그란데에서 당시의 추억을 되새겨본다

 

루트66의 캘리포니아 구간은 콜로라도 강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댄비, 챔블러스, 앰보이를 지나 바스토우를 찍고 다시 헬렌데일, 오로그란데, 빅토빌을 지나 샌버나디노로 내려간다. 샌버나디노부터 산타모니카 까지는 사실 루트66의 흔적을 표지판 정도로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그 길을 큰 규모의 지역 도로가 대체했고 개발 등을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구간을 달릴 때에 난 15번 프리웨이에서 빅토빌 루트66 박물관을 찍고, 오로그란데, 헬렌데일, 바스토우 기차역을 1차 코스로 한다. 여기서 더 가자면 40번 프리웨이(니들스 방향)으로 갈아탄 후 주로 뉴베리 스프링스부터 루트66을 타고 앰보이까지 향한다. 처음 나도 이 길에 큰 기대를 하고 떠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뭔가 있겠지하는 마음은 첫 여행에서 산산히 깨졌다. 



눈으로만 보는 이 길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황량한 사막과 좁은 도로. 유원지처럼 '66'이라는 숫자를 크게 걸어놓은 카페나 기념품 가게는 너무나 상업적이었다. 가끔 도로 바닥에 써 있는 '루트66' 찍거나, 길가에 서있는 숫자 간판을 찍어 기념하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루트66의 상징하는 표현으로 'Get Your Kicks on Route66'이라는 말이 있다. 이 문구는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다. 해석하자면 '루트66에서 실컷 즐겨라' 정도로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즐기라는 것인가..., 이건 아니다 싶어 공부를 했다. 


바스토우에 자리한 루트66 뮤지엄은 빅토빌 것과는 조금 다른 멋을 누릴 수 있다. 난 이곳에서 내가 달려온 길에 뿌려진 미국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 그리고 사랑과 눈물, 포기와 좌절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들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거나 70 가까운 노인이 됐을 것이다. 이 길을 대표하는 로이 로저스와 데일 에반스 부부의 이야기는 알면 알수록 풋풋함이 묻어난다. 어디 그뿐인가...



1987년작 영화 <바그다드카페>로 유명한 그 바그다드 카페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카페는 루트66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당시 트럭커들의 애환, 인생의 마지막 바닥을 사는 이들이 모인 그 카페에서 펼친 놀라운 반전 이야기를 다룬다. 애환의 장막이 미소의 낙원으로 변한 그 이야기는 이 카페를 와야 만날 수 있다.맥도날드를 제국화시킨 레이 크록이 1954년 맥도날드 형제를 만나기위해 무작정 달렸던 길도 바로 루트66. 이 밖에도 미국을 살아 숨쉬게 만든 이들의 자취가 이 길에 숨어있다. 


황량한 소금 사막 앰보이에 로이스 카페를 세운 로이 크롤과 그의 아들은 이 길을 지나는 동부의 촌뜨기들을 위해 쉴 곳을 제공했을 것이고, 거기서 또 힘을 얻은 청춘들이 바스토우를 향해 차를 달렸을 것이다. 길에서 만나는 폐허에는 루트66이라는 글자가 썩은 나무 간판에 대롱대롱 달려있다. 70년대 이후로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집들도 그 때는 참 번성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내 앞에 어떤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고 무작정 서부로 달린 청춘들
 그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이민자의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낡고 썩고 낯설고 지루하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난 이 같은 길을 벌써 다섯번이 넘게 달리고 있다. 차를 세우고 가만히 그 길에 손을 대고 있으면 이 길을 따라 달린 청춘들의 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매번 똑같은 곳에 있는 폐허와 헛간도 볼때마다 새롭다. 루트66은 어쩌면 나와 같은 타국의 이민자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이 경부고속도로의 추억을 떠올리고 즐긴다면 그것도 참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동부에서 서부로 향했던 이들은 미국인이라는 점만 빼고는 새로운 환경, 낯선 곳을 향하는 이민자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두려움 앞에서 서부로 차를 달린 이유는 꿈과 희망을 쫓기 위함이었고 루트66은 그 고난함을 달래기 위해 문화를 그리는 스케치북이 되어주었다.  


루트66이 이민자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 작은 용기와 즐거움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때문. 이 길을 달리면서 그 옛날 건너왔던 이들의 무모함과 용기를 생각하면 지금을 사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즐거움과 낭만, 옛것이 주는 먼지와 더러움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힘도 생긴다. 그래서 난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루트66을 오지 않는다. 그들 눈에 보이는 오래된 것과 길 바닥에 써 있는 숫자66은 잠깐의 볼거리는 될지 몰라도, 큰 기대를 걸고 떠나는 일반적인 여행이 주는 만족을 채워주지 못한다. 


앰보이에 자리한 로이스 카페&모텔. 마켓과 주유소는 지금도 운영한다


그래서 난 루트66의 그 감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면 이 길을 달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막과 모래바람을 맞으며, 보수공사는 꿈도 못꿀 움푹 패인 도로를 달리며 내 새차 타이어가 망가질까 걱정한다면 루트66이 아닌 매끈한 15번 또는 40번을 타고 스쳐가길 바란다. 


나성 주민의 일상다반사 아직 구독 안하셨어요? 


글/사진 LA폴 (인스타그램 @CALIFORNIA_HOLI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