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자리한 분식집. 제니퍼는 이곳에서 최고의 한식을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친구 제니퍼와 함께 '아리아 코리안 타파스'라는 분식집에 들렸다. 사실 내가 먹고 싶어서 갔고, 제니퍼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제니퍼는 사실 한국 음식을 반기지 않는다. 미디어 계통에서 일하는 이유로 그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크고 작은 한식 대회를 참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맵거나 짜거나 혹은 특유의 냄새로 인해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특히 디저트로 나온 '떡'을 먹을 때엔 그 특유의 끈적거림이 싫다고도 했는데...
그렇게 별로 한식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과 함께 이 좁은 분식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입구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문할 공간도 보이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 한 팀이 먹고 나간다. 낙서로 가득한 벽 한쪽 아래 자리잡은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이고 메뉴를 살펴본다.
역시 메뉴는 마음에 든다. 라면에 김밥에 다 시켜먹고 싶었지만, 편하게 콤보 메뉴를 시킨다. 콤보A에는 양념 닭강정과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불고기 김밥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까지도 난 제니퍼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그렇게 음식이 나왔다. 보통은 가게에서 먹으면 양은 철판 같은 곳에 음식을 담아서 준다. 그러면 사진 찍기 참 좋은 소스가 된다. 그러나 분명 다 먹지 못할 것을 알기에 투고 박스를 주문했다.
양념 닭강정의 맛은 정말 황홀했다. 제니퍼는 그거 맵지 않냐고 계속 묻는다. "그럼 넌 후라이드에 양념을 찍어 먹어"라고 방법을 일러준다. 부들부들한 손으로 아주 조금 양념을 묻히더니 살짝 입을 문다. 나는 한참을 쳐다보며 핀잔을 준다. 그런데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다시 먹을 때는 양념에 푹 닭을 담그더니 한입에 쏙 넣는다. "맵지 않아?"라고 물으니 이렇게 달콤한 스파이시는 처음이라고 한다. 아니 평생 양념 통닭도 못 먹어보았나. 하긴 KFC 아니면 뽈로나 먹었을테니 이해는 간다.
이번엔 양념 강정에 손을 댄다. 10개 강정 중에서 제니퍼가 4개를 먹었다. 그런데 이게 아주 안 맵지는 않다. 물을 들이키면서도 강정을 먹으며, 이거 진짜 "쏘...굿"이라는 표현을 남발한다. 그런데 이 집 양념은 진짜 맛있다. 분명 기대를 할 수 있는 맛인데 또 색다르다. 함께 나온 불고기 김밥은 속이 꽉 찼다. 그 안에 담긴 불고기만 쏙 빼서 양념에 찍어본다. 나름대로 새로운 메뉴가 된다.
남아서 싸갈 줄 알았던 콤보는 이내 금방 빈 박스가 됐다. 한국 음식 안 먹겠다는 제니퍼가 반 이상을 먹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게 진짜 한국 음식이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것이 있는지 몰랐다는 표정으로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샌프란 촌에서 자란 이 친구가 언제 이런 한국 분식을 먹어보았겠는가.
나 역시 내로라하는 한식 대회를 종종 다녀본 듯 하다. 그곳에 가면 정말 독특한 맛을 내는 갈비찜, 웬만한 비건도 울고가는 비빔밥, 밥 대신 먹어도 되는 화려한 떡 디저트 등 특급 쉐프의 손에서 나온 정말 끝내주는 한식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음식들이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소식은 아직도 금시초문. 지난 몇년간 과연 얼마나 많은 잘난 포장지에 싸여 뉴욕과 엘에이의 고급 호텔들을 돌며 그냥 스쳐만 갔는지 모른다.
음식이란 그렇다. 특히 그 민족의 이름을 달 수 있는 음식은 가장 그들에게 편해야 한다. 언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가진 언어가 결국 다른 민족에게도 통하는 법. 왕이 즐겨먹었다는 김치로 만든 화려한 음식보다, 스팸 넣은 김치 볶음밥이 더 인기고 한국에서 정말 흔한 양념통닭이 결국 미국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예가 아니다. 대만인들이 히트치는 음식 아이템은 철저하게 대만에서 흔히 보고 먹는 음식들. 이탈리아 파스타나 피나 역시 따지고 보면 그런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 가게가 한국 음식점들이 가득한 곳이 아닌 미국인들 왕래가 잦은 곳에 자리한 것이 반갑다. 기다리는 다른 백인 청년에게 음식이 어떠냐고 물었다. 완전 단골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운다. 한식의 세계화는 고급 호텔에서 펼치는 연회나 대회가 아닌, 유니온 스퀘어에서 멀지 않은 아리아 코리안 타파스가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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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LA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