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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상 Nov 12. 2019

조슈아트리 아래 앉으면

예비군복을 입으면 그 순간 일탈을 경험한다. 지금은 조슈아트리가 그렇다 

이제는 나름대로 먼 기억의 느낌이 되어버렸다. 예비군 말이다. 갑자기 무슨 예비군 이야기를 꺼내나 싶기도 하겠지만, 답답하고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예비군 군복에 대한 추억은 그 하나로 일탈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그것은 마치 마블 히어로의 그 어떤 슈트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내는 일상의 탈출구였다. 나름 FM으로 살아온 나에게 예비군 군복은 그 안에서 어떤 일탈도 허용하는 퍼밋이자 내가 나로부터 벗어나 마음대로 살아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나성에서는 예비군복을 입을 일도, 그리고 이것을 입는다고 일탈을 꿈꿀 수도 없다. 그래서 난 조직의 산물 대신 자연이 낳은 산물로 향한다. 조슈아트리 말이다. 



내가 사는 나성 주변에는 정말 크고 굵은 국립공원이 많다. 위로는 요세미티와 킹스 캐년이 동으로는 데스벨리가 있다. 남으로는 그 유명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 있다. 그런데 유독 조슈아트리로만 발길을 옮긴다. 마약 같은 사막에는 털보 수염같이 생긴 이상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대자연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와 자연이 하나 된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쉽지 않다.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지고 두려움에 떠는 존재가 된다. 킹스 캐년의 거대한 협곡과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는 그 자체로 정령이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들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은 존재의 일부로 대자연의 근엄함을 엿보는 이방인일 뿐이다. 


내가 너를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조슈아트리가 주는 일탈의 퍼밋(PERMIT)이다


그런데 조슈아트리는 근본적으로 접근이 다르다. 이곳에서 나는 대자연과 하나 되고 그것을 나와 하나로 여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시선의 차이일수도 있다. 조슈아트리에서 나는 올려다보지 않는다. 내려다보고 지배하며 수평적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요세미티의 해프 돔과 자이언트 셔먼트리의 높은 키 앞에 주눅 들 필요도 없다. 왠지 모를 자신감, 그것은 마치 복잡한 도심에서 예비군복을 입고 버스에 올라타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느낌과 너무도 닮았다. 


올려다보는 감탄보다 내려다보는 우월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나는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을 사랑한다. 이곳에서는 "우와"라는 감탄사보다 "흐음"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정복자의 컬러라는 퍼플로 하늘이 물들면 조슈아트리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속, 이름, 직업, 강박감에서 벗어나 정복자의 컬러를 입는다. 그리고 정막이 찾아들면 공원의 진면목이 나를 반긴다. 그것은 완벽한 일탈이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도 적막함이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삐딱한 모자와 끈 풀린 군화. 짝다리와 짝 주머니는 정장과 책상, 그리고 정해진 타임 룰을 거부해도 되는 퍼밋이었다. 조슈아트리 아래 앉으면 나는 다시 그 퍼밋을 손에 쥔다. 


정복자의 컬러로 하늘이 물들면. '적막'이라는 선물이 찾아든다


그 옛날 이 적막한 사막을 가로지으며 안식처를 찾아 떠난 몰몬교인들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나무를 보고 마치 여호수아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을 지나 유타로 향했다. 그때부터 이곳은 성스러운 하나님 나무를 일컫는 조슈아트리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나무와 바위에는 일탈을 도모하는 동반자들이 많다. 예비군복은 없지만 기타를 든다. 명령과 복종과 같은 정형화된 기타 코드는 이곳에서 필요 없다. 기타 줄이 마음대로 움직이며 내는 소리를 내려다보며 찌푸리는 것들도 없다. 그렇게 난 조슈아트리 아래에 앉아 일탈을 즐긴다. 여기는 정상인들의 비정상적 아지트, 조슈아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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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CALI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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