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인 Sep 15. 2021

우리는 와토니까

와토(Wato)는 We are theone의줄임말

결혼 후 어느 여행 에세이의 한 구절인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동감하면서 나눈 대화가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해외에서 1년 정도 살아보기 해봤으면 좋겠다"

"좋지! 언젠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버킷리스트에 넣자! 이왕이면 젊고 아기 없을 때면 더 좋겠다."

"아기 있어도 좋지! 그러자!"


결혼 2년 차에 이 대화는 말이 씨가 되어 제안이 아닌 필수적인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란으로 출장을 다녀온 신랑이 내게 건넨 말,

"여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지?"

"응!"

"어떤 나라여도 상관없어?"

"영어권이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안 가본데도 좋고!"

"그럼 우리 터키 가자"


꿈꿔왔던 외국 살이었는데도 처음엔 갑작스러웠다. 물론 이내 설렘으로 바뀌어 나는 매일 터키의 관련된 모든 것을 서치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저 떠나면 그만인 줄 알았던 긴 여행쯤으로 생각한 외국살이는 준비하는 과정 동안 점차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신랑의 직장은 불모지 같은 이란과 터키의 특수한 나라와 한국을 잇는 스타트업 회사로 재정 상황이 풍족하지 못하다. 대기업과 달리 안정적일 수 없고 그야말로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회사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떠나고 돌아오는 비행기표뿐,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저 해맑은 나와는 달리 신랑에게는 회사와 가정에 대한 책임과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매일 계산기를 두드리며 계산하고 계획하고 언제부턴가 내가 부수입을 창출해주면 우리의 삶이 여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본인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하필 이 시점에 우리는 아파트 청약이 당첨되어 계약금을 걸어놓은 상태고 중도금 대출금과 잔금에 대한 여유자금도 필요했다. 터키에 가면 나의 수입마저 사라지니 신랑 입장으로는 모든 게 빠듯했다. 문득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에 빠져 떠나기 겨우 한 달가량 남짓 앞두고 신랑 하게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여본 우리한테 목표가 있다면 그게 뭐야?"

"내 집 마련하는 거?"

"그렇지? 그러면 내가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벌면 우리가 그 목표를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그럴 순 있겠지. 근데 혜인아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사는 거야.  내 집 마련은 우리가 집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거고.  너 말처럼 몇 년 떨어져 살면서 돈은 좀 더 벌 수 있겠지. 근데 우리 둘의 유대감은 사라질 거야. 내가 가면 너도 같이 가는 거고 네가 남으면 나도 같이 남는 거야.

우린 와토잖아"


맞다. 나도 신랑의 의견에 동의한다.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는 거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싸워서 등지고 자도 한 이불 덮고 자라고 하겠는가. 우리의 가훈을 왜 We are the one으로 정했던가. 그날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그 이야기 끝으로 더 이상 신랑과 함께 하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의심하거나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는 나의 자리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떠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