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인 Sep 18. 2021

나답게 이란에 도착하다

내게 처음인 중동국가, 이란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는 예시처럼 나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도 안 했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몸이 축축 쳐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도 구토가 나올 것 같고 열이 확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게 느껴졌다. 말할 힘도 없었다. 신랑에게 "몸이 안 좋아"라고 겨우 나의 상태를 말하고 끙끙 앓며 잠이 들었다. 내 꿈속에서 나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승무원이 기진맥진한 나를 기내 복도에 일자로 눕혀두고 "somebody help"를 외치며 나를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꿈에서 마저 정신을 잃고 나는 착륙하기 세 시간을 남기고 눈을 떴다. 기내식 구경도 못해본 내 자리엔 초콜릿 과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정신을 차리고자 눈을 꿈뻑대며 창밖을 바라봤는데 천국에 온 줄 알았다. 별빛이 가득한 은하수 속을 날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수많은 별에서 쏟아지는 청량함이 나의 정신을 맑게 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담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오로지 어둠 속의 별들만이 만든 아름답고 신비했던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게 바로 이란으로 향하는 길이였다.




 우리는 카타르 도하에서 한 번의 경유를 거치고 이란에 도착했다. 나의 컨디션은 별들로부터 치유받고 완전히 회복되었다. 생소하고 신비한 나라 중동국가, 이란에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했다. 남자들은 짐을 꺼내느라 분주하고 여자들은 몸을 꽁꽁 싸매느라 분주하다. 히잡을 쓰고 블랙의 로브들을 걸쳐며 피부를 가렸다.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듯했다. 그제야 나는 "히잡!"하고 신랑을 바라본다. "챙기라고 했잖아 없어?" 그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분명히 챙겼다. 챙기긴 했는데 그건 이미 붙여버린 수화물 속에 있었다. 신랑은 히잡을 안 쓰면 입국이 불가할지도 모른다며 겁을 주었다. 주변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은 나뿐이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 우왕좌왕하다 급한 대로 가디건을 걸치기로 했다. 얇은 검정 가디건이여서 제법 그럴싸했다. 다행히 히잡에 대한 지적 없이 우리는 순조롭게 입국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공항 수속대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아뿔싸 "내 가방!!" 히잡에 정신 팔려서 나는 그만 비행기 안에 핸드백을 두고 내렸다. 우리를 마중 나와준 신랑의 직장동료 모센이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데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분실물센터에다 비행기 좌석 넘버를 알려주고 가방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란 사람들은 공항에서 일을 하는데도 영어로 대화하기가 어렵다. 제대로 소통이 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신랑은 밖으로 나가 모센을 먼저 만나서 부탁하면 쉽게 해결됐을 텐데 하고 핀잔을 줬다. 그리곤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전화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내 탓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나는 신랑 몰래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훔쳤다. 생각해보면 왜 눈물을 숨겼는지는 모르겠는데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한 이란 생활이 걱정되었고 더 솔직하게는 나보다도 직장동료를 먼저 살피고 있는 신랑이 미웠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참~ 별것도 아니고 그저 웃을 일이다. 덕분에 우리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당혹스러웠던 일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유연함을 얻었다. 아마 앞으로도 다양한 감정이 깃든 무한한 에피소드를 만들며 살아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 이제 너 밖에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