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인 Sep 20. 2021

띵동 띵동의 공포

편견이 만든 상상 속 공포

 십중팔구는 이란에 간다고 하면 "거기 위험하지 않아?"라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글쎄 위험했으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겠지?"였다. 당시 세계 뉴스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보도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그간 빈번했던 IS의 테러가 이슬람 국가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낳고 있었다. 사실 나는 편견이 없었다라기 보다는 관심이 없었다. 그땐 우린 이사 준비로 바빴고 텔레비전은 일찌감치 팔아버렸다. 여행을 가도 이 정도는 공부했겠다 싶은 것 마저도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정말 백지로 이란에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신랑이 이란에 가서 한 달을 지내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특별한 거부반응이 없었다. "사람 사는데 다 똑같지"가 그간 여행의 교훈이었고 오히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동국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단지 영어권이 아니어서 소통만이 걱정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정말 알면 알 수록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란에 도착하고 다음 날, 신랑은 출근하기 전 내게 당부했다.

"절대 혼자 밖에 나가지 말고, 누가 오면 문도 열어주지 말고. 그냥 없는 척해" 

"왜?"

"여기는 외국인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에 너무 위험해"

"집 앞에 카페 있던데 거기는 가면 안돼? 동네 산책도 하고 싶은데"

"응. 안돼"

"그럼 난 집에만 있어!?"

"아니, 내가 퇴근하면 같이 장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 주말에는 여보 가고 싶은데로 여행도 하고!"

이란에 온 뒤로 신랑은 나를 과잉보호하기 시작했고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신랑의 부탁은 너무나도 단호하고 간곡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다고 소문난 한국에서도 범죄는 일어난다. 나는 그저 '이란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매치기가 조금 더 많을 것이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집에 홀로 머물면서 드디어 이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란을 검색하고 관광지를 웹으로 둘러보았다. 신비롭고 이색적이었다. 그리곤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눈에 띈 최신 글은 대부분은 탈레반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란은 지도상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가장 넓은 국경을 마주한다. 나는 공포를 일으키는 자극적인 멘트의 기사들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의 내용은 대다수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과 테러 그리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의한 여성인권탄압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특히나 나는 이슬람권에 머무르고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관련기사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기사는 아프간에서 온몸을 다 가리고 눈마저도 망사처리된 부르카를 입지 않는 여성에게 구타를 가하거나 총살을 했다는 기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통복인 한복을 입지 않은 여성에게 총살한 거나 다름없다.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슬픔과 공포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고 점점 자극적인 기사들에 사로잡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의 이슬람을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잘못된 오류와 편견에 빠진 것이다. 어느덧 내 머릿속에는 이 나라에서도 히잡을 쓰지 않으면 구타나 총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이란에서도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벌금, 징역 및 태형을 처한다고 한다. 나에게 생소한 태형은 감옥살이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란은 탈레반의 독재정권을 향한 수니파와는 다른 순수한 믿음을 가진 시아파로 같은 이슬람교라 할 수 없었다. 히잡도 샤일라라는 스카프만 두르면 되는 정도로 어느 정도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됨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이 나라의 문화와 이슬람 율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행여 혼자 길을 나서다 의도하지 않은 어긋난 행동을 해서 큰 변을 당한다면 너무나 끔찍할 것 같았다. 특히 태형은 종교경찰이 즉석에서 비형식적으로 치러진다 하여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신랑의 당부를 지키기로 하고 잠자코 집에 머물렀다.


 점심이 되기 전 시어머니와 안부전화를 나누다 갑자기 통화가 끊겼다. 인터넷이 끊긴 것이다.  '집에만 있는데 인터넷까지 안되다니!' 하고 답답해했지만 이전에 신랑이 "이란은 인터넷도 느리고 잘 끊겨. 심지어 정전도 자주 일어나"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그러는가 싶었다. 그리곤 거실의 모든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이란의 햇살은 전등 바로 아래 있는 것처럼 강렬하고 따뜻했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나는 창밖의 풍경과 사람들을 맘껏 구경했다. 점심시간엔 신랑이 서프라이즈처럼 집에 잠깐 들렀다. 내가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자 직장동료가 오늘 저녁에 고쳐주기로 했다며 반나절만 참으라고 했다. 별 수 있나 그러기로 했다. 오히려 앞으로 혼자 있을 시간도 많은데 인터넷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우선은 캐리어도 정리하고 요리도 하고 빨래도 돌렸다. 그리고 저녁에 장 볼거리들을 메모하고 있는데 갑자기 띵동 띵동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새 신랑이 다시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랑은 열쇠를 가져갔고 아까도 벨을 누르지 않았다. 나는 인터폰 앞으로 다가갔다. 신랑이 아니다!

 어떤 이란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서 있다. 처음엔 벨을 몇 번만 누르더니 화가 난 건지 당장 문을 열라는 듯 격렬히 초인종을 누른다. 나는 신랑에게 인터폰 속 남자의 사진을 찍어서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혹시 인터넷을 고치러 온 직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았다. 내 핸드폰은 로밍만 해온 상태이기 때문에 요금폭탄 마다하지 않고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 자체가 걸리지가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다.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저 벨소리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오늘 아침 "누가 오면 문 열어주지 마"라고 했던 신랑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말의 의미가 이런 거였나? 혹시 저 남자가 한참을 창가에 있던 동양인 여자가 집에 혼자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한 건가? 갑자기 내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집은 1층이어서 혹시나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진 않을까? 해서  나는 재빨리 가장 안쪽 방으로 숨었다. 남자는 초인종을 더 쉴 틈 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 생각으론 그 상황에 프라이팬 같은 무기를 들고 숨었을 텐데 나는 그때 핸드폰에서 녹음기 어플을 찾고 있었다. 유언을 남길 생각이었나 보다. 지금도 메인화면에 있는 녹음기 어플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5분쯤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는 멈췄다. 소리는 멈췄지만 나는 방을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시엔 신랑만이 나를 구해줄 구세주였다. 아무래도 오전에 보았던 탈레반의 이야기, 이란의 치안, 전부 말하지 않았지만 신랑이 우려하는 무언가가 모두 겹쳐서 나는 '내가 집에서도 안전하지 않구나'라며 슬픔에 빠졌다. 사람들이 이곳의 안전을 물었던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 하며 이불 위에서 벌벌 떨었다. 그러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주변이 고요해지고 덩달아 긴장이 풀리면서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딸깍"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신랑이었다. 신랑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안도가 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늘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종종 번지수 잘못 찾은 사람들이 그럴 때 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잘했다며 칭찬했다. 이란에 와선 정말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저녁엔 신랑의 직장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하고 뒤로도 몇 번을 더 만났다. 나는 그들의 배려심 많고 따뜻하고 유쾌한 모습에 어느새 이란에 대한 공포의 마음이 다시 사르르 녹아버렸다. '뭐야. 이란 사람들 엄청 친절하고 재밌잖아'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어느 날 신랑은 내게 다시 한번 당부를 했다.  "테헤란은 다른 국경지역에 비해 안전해. 그렇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종종 일어나는 범죄가 얼굴을 30 바늘 꿰매야 하거나 손목이 잘리기도 할 정도로 정말 끔찍해. 더군다나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 표적이 되기 쉬워. 그러니깐 제발 같이 몸을 사리자. 나는 내가 없을 때 여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이곳에서 신랑은 나의 유일한 보호자다. 보호자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면 마음속 죄책감이 얼마나 클까. 나여도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안전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답게 이란에 도착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