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산책, 걷고 싶은 나라 이란
신랑과 함께하는 외출은 목적이 분명했다. 주로 장을 보러 마트에 가거나 친구들을 함께 만나가거나 식당에 간다. 그리고 대부분 이동할 땐 자가용을 이용한다. 여기서 거기 거기서 여기 식이다. 신랑이 올 때까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나는 신랑과의 저녁 외출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끌려다니는 패키지여행을 하듯 무료하게 느껴졌다. 나는 낮이 되면 정말 미치도록 이란의 고양이들처럼 자유롭고 정처 없이 길거리를 거닐고 싶다. 관광지를 가는 것도 좋지만 그냥 동네만이라도 구석구석 걷고 싶었다. 골목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스쳐갈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하는 소리, 한국과는 얼마나 다를지 궁금한 식물들, 웅장하고 섬세한 이란의 집들, 매퀘한 매연이 코를 찔러도 바깥의 풍경을 직접 가까이에서 탐색해 보고 싶었다. 나의 동반자인 신랑과 함께 말이다. 나의 모든 처음을 신랑과 함께 하고 싶었다. 물론 우린 모든 걸 함께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곁에는 항상 가이드로서 직장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의 짜인 코스로 움직였다. 무엇이든 편하고 근사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내가 꿈꾸던 해외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현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마저도 내가 직접 찾아서 가보고 싶었다. 직접 찾아보는 설렘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잔뜩 설레어하고 기다리다 만나는 장소는 감회가 다르다. 나는 이곳의 대중교통도 이용해 보고 걷고 또 무한히 걸어보고 싶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신랑과 마주 잡는 두 손에 온기와 사랑을 담아 오래도록 걷고 싶다.
아마도 신랑은 나를 보호하기 이전에 자신을 보호해야 했을 것이다. 자신이 보호받아야 나를 지킬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신랑은 자주 무모하지만 도전을 좋아하고 장난도 많은 괴짜였다. 그런 그가 현지인과의 동행을 고집하는 것은 무언가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라 생각했다. 나는 신랑에게 "여보는 생각보다 겁쟁이고 의존적이다"라며 자극했고 우리만의 자의에 의한 외출을 요구했다. 역시나 신랑은 자신이 의존적인 게 아니라, 이곳을 본인도 잘 모르고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발끈했다. 당시엔 '아 그렇구나' 하고 긍정했지만 사실 내게는 그럴싸한 핑계로 들렸다. 우리는 영어를 못해도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곳이 궁금하면 본능적으로 찾아본다. 손짓 발짓의 대화도 나름의 타국에서 느끼는 즐거운 묘미다. 그런데 어떡하나.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온 신랑과 하루 종일 집에 머무르는 나와는 마음의 무게가 다른 것을... 어쩌면 신랑은 나와의 모험이 두려운 게 아니라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함께 가고 싶은 곳은 내가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부딪히고 헤맬지라도 둘이 함께 떠나는 것이다. 단, 바자르(전통시장)와 같은 사람이 많은 곳이나 외곽지역을 갈 때는 친구들과 함께 동행하는 조건을 달고서 말이다.
이란에 온 지 열흘이 지났다. 짧은 기간 동안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신랑과 둘이 거닐었던 곳이다. 근사하고 멋진 레스토랑보다 우리가 처음 동네 골목을 가로질러 갔던 이란의 패스트푸드점이 기억에 남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이란의 귀여운 고양이들과 네모난 전봇대들로부터 생긴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보름달이 차오르기 전에 방문했던 Tabiat bridge는 우리가 처음으로 알아보고 방문한 관광지로 그곳에서 먹은 핫도그는 썩 맛있진 않았지만 팔뚝만 한 크기에 놀라며 너 한입 나한 입 나눠먹는 사이좋음이 좋았다. 작고 귀여운 이란의 핸드메이드 보석함을 구매해서 결혼반지를 간직할 수 있어서 좋았고, Tabiat bridge의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다리 위에서 걷고 머무르면서 이란 사람들의 화목한 풍경을 바라보던 게 좋았다. 남들이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순간들이 좋았을까.
다리를 마주하고 있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신랑이 갑자기 물었다.
"우리 어제 뭐했지?"
"음.. 뭐했더라? 어디 갔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사진첩 보면 기억해낼 수 있는데 볼까 말까?"
"아니야 생각해보자 으"
"... 와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안나지?"
"아! 생각났다! 어제 바자르랑 그 옆에 있던 모스크 갔다 왔잖아!"
"맞다! 맞아! 깔깔깔 우리 큰일이다. 어쩜 둘 다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냐 "
"아니야 이제 기억해 냈으니깐 괜찮아!"
기억과 추억, 우리가 경험한 모든 순간은 기억 속에 있다. 그러나 우린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잊어버린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꺼내어 나눌 수 있는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내가 느꼈던 가장 소중하고 값진 감정의 깊이에 따라 추억은 자주 대화의 주제로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신랑과 아주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 꼭 굵직한 관광코스를 돌지 않아도 소소하게 우리가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래서 걷고 싶다.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는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한다'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나는 그 특별한 대화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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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초부터 산책을 즐기는 부부였다. 밥 먹고 배가 부르면 동네를 걷는다. 생각이 막히고 답답해도 함께 걸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공기의 온도를 느끼기 위해서도 산책을 떠났다. 그때마다 항상 손을 마주 잡았다. 땀 흘리지 않아도 되고 돈이 들지도 않는 산책은 우리에게 특별한 취미였다. 가끔은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걷는 에너지에 속이 풀리면 할 말도 하던 그 대화의 거리가 나는 좋았다. 이란을 오기 위해 준비하던 나날과 정착하는 동안 우리는 그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이토록 걷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