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해리포터의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중학생 때 소설과 영화를 재밌게 보긴 했으나 고질적으로 외국어로 된 고유명사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터라 그 순간의 느낌 위주로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미온느, 말포이, 초 챙 등의 인물과 그들의 기숙사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수도 없이 매스컴을 통해 그 이름을 듣기 때문이다.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래번클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분명히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기숙사는 4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항상 마지막 하나인 '후플푸프'는 생각나지 않았다. 발음이 어렵기도 하고 작품 내에서 두드러지는 등장인물이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후플푸프의 팬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다(결론적으로 나는 후플푸프를 좋아하고 응원한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후플푸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보다 존재감 있게 와닿은 일화가 있다. 얼마 전 공공기관 취업 스터디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만났다. 공공기관에 있다 사기업으로 이직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공공기관에 몸을 담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났던 터라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서로 자신의 직장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기업과 비교하면 보수적인 조직문화와 난감한 회식문화, 그리고 비효율적인 업무체계가 그 골자였다. 개인 성과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충 일하는 사람도 잘리지 않으니 열심히 일하는 보람이 없다고. 그런데 그 푸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분이 본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에 만족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오래 버티려면 후플푸프 같은 사람이 돼야 해."
"해리포터에 나오는 후플푸프?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희 후플푸프에 누가 있는지 기억나는 사람 있어? 바로 안 나오지? 걔네가 아무도 안 알아줘도 소신 있게 열심히 사는 애들이거든. 월급 적게 받고 인정 못 받아도 안정적인 거에 만족하는 그런 후플푸프 같은 사람이 정년까지 가는 거야."
얼마나 기발하고 찰떡같은 비유인지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공공기관 스터디에서 만난 우리가 결국에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또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 후플푸프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대화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취업과 이직을 위해 여러 공공기관에 지원하며 나와 같은 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또한, 전국구 규모의 공공기관에서 2년 이상 근무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을 거름으로 삼아 대한민국에서 소신 있는 후플푸프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현실의 후플푸프는 조앤 K. 롤링이 애정 하는 이상적인 후플푸프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호그와트 전쟁에서 오로지 정의를 위해 참전하면서도 과시하지 않았던 그들과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분명히 다르니까. 그러나 히어로는 아니더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일하며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글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