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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Apr 10. 2024

배웅하러 가는 길

당연하지 않은 것들

엄마가 꿈을 좇아 필리핀으로 출국하신 지 수년이 흘렀다. 우리 가족의 연대기에 있어 꽤나 의미 있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짜가 기억나지 않아 가족 톡방을 뒤적여보았지만 소소한 대화를 즐겨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특성상 추정할만한 단서를 찾기 쉽지 않았다. 98년 IMF로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세상이 이기 덕분에 온라인에서나마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초대라는 명목으로 불러 모은 다섯 식구 중 초대받고 싶지 않았던 이도 있었을 테지. 그렇게 생겨난 친정식구방은 18년 11월 18일에 만들어졌다. 다섯 명으로 시작된 친정식구방에는 이제 넷이 남아있다. 함께 있다는 표현은 우리 가족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것이 토크 없는 톡방에 그저 있기 때문이다. 고요함보다 적막함이 공존보다는 존재가 적확하다. 대화 없는 그곳의 쓰임새는 공유이다. 톡방을 훑어보면 말씀카드만 연속적으로 줄지어 보인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엄마의 댓글이 잠시 다른 패턴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연속성은 없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반응 없는 곳에 말씀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기대가 없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이를 통해서라도 말씀이 스미길 바라는 큰 기대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가족이 흩어지고 난 뒤 우리에겐 소식이란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각자 버티고 있는 생활에 자신의 버팀목을 떼어줘야 하는 상황들이 꽤나 큰 어려움이었을 테니까. 그것은 돈으로 시작되지만 마음의 부담과 부채로 연결되고, 내어주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집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무소식을 바랐고 무소식을 조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 같은 마음으로 소식을 전하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이 있었다. 



 해가 지나 삶에 여유가 찾아와도 유독 가족의 소식은 참 벅찰 때가 있다. 엄마의 입국소식도 그중 하나, 오늘 저녁 비행기로 들어오는 엄마를 맞이하러 갈 생각에, 머무르는 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헤아리고 조율하는 것이 벌써부터 지쳤기 때문이다. 스케줄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것이 이 정도 지났으면 내 일이려니 마음을 정할 때도 되었건만 불쑥불쑥 기약 없고 의지도 없고 부담만 있는 다른 형제들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는 것과 섭섭함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자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엄마의 마음까지 살피기가 벅찰 때가 있다. 이런 벅참이 가끔 단속이 안될 때가 있다. 



“아이씨!!! 쫌!! 제발!!!”

참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4월 4일 오후 약속시간을 앞두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외출 전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이 조급했다. 그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눈은 화면에 고정한 채 통화를 한다.

“뭐 해?”

“글 써요”

“그럼 집중해야 할 텐데 방해했네 ”

글을 마무리하고 게시 중이라 괜찮다고 말했다.


“비행예약 메일이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어. 어디로 갔는지 다 지워버렸나 봐”

글쓰기를 하던 중에 받은 전화라 하니 맥을 끊어서 미안하다며 일 끝나면 다시 공유해 달라는 말에 알겠다고 짧게 통화를 마쳤다. 하지만 갑자기 해야 할 일로 급부상한 엄마의 부탁을 빨리 해지워버리고 싶었다. 마음이 조급하니 기억이 더디다. 필리핀항공으로 예약을 했는데 예약내용이 없단다. 갑자기 예약이 안 된 건가 싶은 마음에 당황스러워 머릿속이 더 엉켜버렸다. 분명 예약하고 제때 공유를 해줬을 텐데 성의 없이 메일을 지워버렸다니 그런 부주의로 내 시간과 감정을 쓸데없이 쏟고 있는 상황에 짜증이 솟구쳤다. 다녀와서 하자라는 마음과 빨리 찾아야 되는 두 마음이 대치하다 폭발해 버린 것이다. 결국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비록 듣는 이는 없었지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기분이 싫었는데 말이다. 결국 찾고 보니 필리핀항공이 아닌 세부퍼시픽 항공사… 예약이 안된 것은 아니니 다행이다 싶지만 바로 찾지 못한 내 정신을 어쩔까 싶었다. 이렇게 엄마와 연관된 일은 대부분 순조롭지 않다. 일상에 불쑥 들어와 헤집어 놓고 감사는 없다. 그런 일의 반복이 엄마의 귀국소식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나 보다.


 앞으로 몇 차례 엄마의 귀국소식을 접할 수 있을까? 엄마는 몇 차례나 여행을 함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독여본다.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 남아있을 나를 위해서 말이다. 오늘부터 19일까지 열흘정도의 시간 동안 나의 일상에 들어올 엄마를 허락하고 준비하며 모든 과정과 감정을 잘 남겨보려 한다. 

오늘의 배웅길. 엄마의 귀국소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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