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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May 09. 2024

살다 오기

둘만의 여행

이번주 토요일에 떠나는 3주간의 긴 여행을 앞두고 있다. 신랑과 단둘이 떠나는 세 번째 해외여행이자 가장 긴 여행으로 기록되겠지? 앞으로 이 기록을 넘어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은 여행을 시작하게 된 목적과 방식이 달라 의미 있는 숫자로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삶의 무료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듯한 신랑의 모습을 보며 그럴 때마다 어찌하면 좋을까 마음 편치 않았던 시간들을 경험했던 후라 이번 여행을 제안한 그의 작은 의지가 내겐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이미 여행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된 나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일이기에 또 그러다 말겠지 3주간 숙박비만 해도 엄청난데 계속 진행을 할까 차라리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반절이상 차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신랑은 나도 모르는 사이 사부작사부작 여행에 관련된 정보를 모으며 준비하고 있었고 그의 스케줄보드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정리된 체크리스트들을 보자니 이번은 진심이구나. 정말 가고 싶은 여행이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의 진심에 진심으로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오래전부터 신랑은 짧은 기간에 들어찬 빼곡한 일정. 훑어보고 얼음땡 하듯 찍고 오는 여행은 질색이라며 그럴 바엔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짧은 휴가에 맞춰 유럽 땅덩어리를 집어넣으려면 어쩔 수 없이 살아보기를 뒤로하고 구경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지 않겠는가! 그렇게라도 경험하는 것을 원했던 사람이 나였다. 이렇게 코드가 맞지 않았던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스노클링을 좋아하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다녀온 사이판 여행 뒤로 무기한 휴업상태에 머물렀던 둘만의 여행. 

오래전 시드니에서 2년간 유학을 했던 신랑은 예전부터 그 시절 그곳을 너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줄 곳 했었다. 새로운 곳보다는 경험했던 곳을 가고 싶어 하는 신랑의 성향은 강릉인가 속초인가 그 부근에서 군생활을 했던 장소를 찾아 여긴 보초 섰던 곳, 이곳은 가족들과 여행했던 곳이라며 신나게 설명해 주던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은 강릉에 가면 나만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같은 곳에서 다른 추억을 떠올리는 우린 부부다. 너무 웃기다. 시드니에 가면 좀 다를까 싶다가도 우리 남매가 유일하게 함께했던 여행지로 남아있는 나의 스무 살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2년간의 긴 유학생활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건져 올릴 추억이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얼마나 그의 그 시절에 녹아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것이 관건이다.


본인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걸까? 그때에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내가 알았으면 좋은 마음인가? 이런 물음 끝에 숙소를 정하려 열심히 아고다를 보다가 본인이 살던 동네의 숙소를 보며 이어진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여기에서 살았을 때 우울했던 기간이 있었어”

“왜?”

“그냥, 다들 워홀로 낮에는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난 워홀이 아니라서 일을 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몇 시간 수업하고 내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거든”

속으로는 팔자가 좋아 우울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한숨 집어삼키고는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뭐 했는데?”

지도를 펼치며

“숙소에서 이 길을 따라가면 차고가 양쪽으로 두 개 있는 집이 보이는 벤치가 있어. 거기에서 매일 음악을 들었거든. 근데 몇 시간 동안 사람이 한 명도 안지나가 이상하지?”

용케도 그 장소를 찾아내 로드뷰를 보여준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로 우울의 원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론은 완벽했지만 회화가 잘 되지 않아 매번 등급에 누락됐던 좌절감이었음을. 지금도 대화에 서툰 신랑을 보며 다른 나라말은 오죽했을까 싶은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의 이십 대를 추억하며 그때의 자신을 기억하며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의 추억 속에 작은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그를 더 이해할 수 있다면

그가 간직한 추억의 공간으로 들어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난 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여행기를 쓸까? 영상을 찍을까? 미뤄둔 대일밴드 2집의 편집을 완성하고 올까? 하는 결과물과 효율을 생각하는 습성을 접어두고 그의 공간에 깊숙이 들어가 살다 오기로 마음이 기울었다.

5월 9일 너의 이름은 살다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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