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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May 10. 2024

짐만 빼면 다 됐다고

출발 1일 전

화요일엔 치과를 다녀왔다. 인생에 손꼽을 치과방문은 항상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이유는 참을 만한 통증이 더 심해질까 혹시 마음먹고 간 여행이 참지 못할 통증으로 얼룩지진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16년쯤 잇몸이 자주 붓고 피가 나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통증이 있지 않아 계속 차순위로 밀려가지 않은 치과 때문에 경주여행에서 앞니 전체가 왕왕거려 울던 기억. 갑각류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몰라 생랍스터 살을 엄청나게 먹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입과 목구멍에 호흡이 힘들어 죽다 살아난 동생의 모습도 떠오른다. 더욱이 그 여행지가 시드니였으니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여행객이 병원 가는 일이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난다.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굉장히 현명해진 것 같은 나의 모습이 낯설지만 좋다.

어쨌거나 가기로 했으니 웬만하면 과잉진료하지 않는 곳, 아프지 않게 잘 봐주는 곳이 없을까 근처 치과의 후기를 뒤적이며 적당한 곳을 추리고는 최종 나의 선택을 받은 시카고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마쳤다. 두 시간 조금 안되게 남은 시간 동안 난 치과를 갈 계획이 없는 것 마냥 주의를 돌리려 열심히 강의를 듣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을 챙겨 입고 그곳을 향한다.

말짱한 정신으로 들어가 벌렁이는 가슴으로 나왔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잇몸이 부어 있으니 잇몸치료와 스케일링을 받고 가시라는 권유에 그러겠노라 동의를 하고 마취주사를 맞았다. 두근대는 심장, 후들거리는 팔, 원인이 마취약인지 두려움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혼선된 상태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기절하듯 잠들었다. 어른도 치과는 두렵다. 체크리스트에 치과공포증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공포는 아니지라며 기타란에 무섭긴 합니다라고 적었는데 말이지. 다음번엔 이실직고하고 공포증이 있다 말해야겠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목욕탕에 갔다. 목욕재계를 한 단정한 몸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코로나 후로 첫 방문이니 아마도 세신사님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이런 상태가 더 수월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나만의 결론을 맺고 오래간만에 베드에 누웠다.


여행을 위해 치과도 가고 몸도 정갈히 씻었는데 너무 내 몸뚱이 하나만 신경 쓰고 있는지 텅 비어있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바라보자니 언제나 그랬듯 여행짐은 항상 임박해야 싸지는구나. 사람 참 변하지 않구나 싶었다. 이어 다른 사람 뭐랄 것 없이 너나 잘하자 싶은 자기반성이 불쑥 밀려온다. 

5월 10일 짐만 빼면 준비완료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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