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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Jun 08. 2024

Good Bye May

5월을 보내며

To May

1일, 다시 1일이라 이름 짓던 너와의 첫날을 기억해. 왠지 모를 기대감이 더해져 설렘으로 널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2일,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이 기대감으로 바뀌는 마법과 같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다 네 덕분이었어. 


3일, 뭔가 작심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들 말이야. 


4일, 그런데 말이야,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어제까지 콩콩대는 발그레한 마음들이 금세 뒤바뀌어 버리고 말았잖아. 그를 알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우는 모습이 왜 그리 안쓰러웠는지. 어버이날이라는 명목으로 정말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눈빛에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그를 보며 나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나를 기억조차 못하는 할머니는 자신의 옆에 있는 신랑을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은 젊음을 동경하는 것 같기도,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보는 듯도 했어. 할머니도 그의 아들도, 며느리도, 그 아들의 아들도, 아들의 아내도 연신 눈물을 훔치기 바빴던 그날도 기억난다. 우리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각자 다른 사연을 또르르 흘려보냈던 그날이 선명해.


5일, 그때의 여파였을까 24년 들어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멈춰 세운 그런 날을 만났잖아. 


6일,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어. 자신을 탓하는 마음보다 스스로 멈춰 세웠으니 다시 일어날 힘도 나에게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 


7일, 웬걸 어제의 자신감은 유통기한이 임박했는지 몇 시간째 글을 붙잡고 늘어지며 고된 글부림을 하는 날이 너무 빨리 찾아온 거야. 7일이면 작심삼일을 두 번 넘긴 다음날. 너무한 거 아니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맺은 건 정말 대단해! 그 의지를 높이 사 승리의 날이라 불러줄게! 


8일, 가까스로 정신 승리하며 만난 어버이날. 엄마의 거침없어 보이는 요구에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느끼던 그때의 심정을 기억해. 다행히 마음의 부담을 삐뚤게 표현하지 않고 넘긴 것이 어버이날 보낸 현금보다 더 큰일이 아니었을까?


9일, 여행에 임박했지만 그리 흥분도 기대도 별 것 없는 나와는 달리 많은 것을 찾고 체크하며 여행을 차근히 준비해 온 그를 보며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기도 했어. 여행에서 머물 곳을 찾아 이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그의 추억에 함께 살다 오자 마음먹었던 날이었지.


10일, 긴 여행 앞에 목욕재계는 너무 예스러운가? 근 30년 만에 방문하는 시드니인데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비행기에 좀 더 가벼운 몸을 싣고 싶었다면 너무 웃기니? 아! 그리고 무섭지만 치과도 다녀왔어. 여행의 흥을 빼앗길지 몰라 예방차원에서 말이야. 그래서 짐만 빼면 다 준비가 됐다는 말이야


11일, 이게 얼마만의 출국인가? 대한민국 하늘이 내가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건지 비가 철철 내리던 날, 인천에는 인천국제공항 가는 리무진버스가 없다는 어이없는 사실. 무려 지하철을 타고 1시간 40분이나 이동하는 강행군. 하지만 덕분에 23kg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서방이 왠지 낯설게 느껴져, 오랜만에 봉인되었던 상남자를 보았지모야!


12일, 10시간 30분의 장거리 여행은 쉽지 않지.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잤다고 보기 어려운 잠과 깸 중간쯤에 좁다란 이코노미석은 돈 벌어 퍼스트를 타겠다며 돈 벌어야 할 의지를 뿜뿜 해주는 그런 고행의 시간이었지. 이른 아침 시드니의 도착한 그와 나. 그렇게 호주의 땅을 밟고 시드니 첫날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이곳이 호주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세계가 뒤섞여 살고 있다는 뜻일까?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현실감 없는 우리는 그렇게 첫 번째 숙소에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지. 어제저녁부터 이어지는듯한 아주 긴긴 하루의 끝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정말 충격적인 ‘ Mother’s day’가 있었어. 이 일이 이번 여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네


13일, 드디어 이번 여행의 메인테마인 신랑의 추억장소를 찾아가기 시작했잖아. 아담하고 조용한 주택가인 Ashfield를 찾아갔어. 그가 살던 집을 보고, 그가 자주 찾던 공원 벤치에 앉아 그때 들었다는 음악을 들으며 추억을 공유했지. 그런데 타인의 추억을 공유받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이때 좀 느꼈던 것 같아. 생각보다 많은 애정이 필요했고 공감능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야.


14일, 시드니에 도착한 지 3일째 찾아간 시드니올림픽파크! 그래 이곳이 내가 기억하고 기대하던 모습이다! 넓디넓은 공원과 자연과 어우러진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들이 보이는 풍경. 그래! 여기가 시드니다! 발길을 돌려 써큘러키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고 창가에 비치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오늘에서야 우린 시드니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


15일, 오늘도 신랑 추억장소 찾기는 이어졌는데, 도대체 이사를 몇 번이나 다닌 거니?? 그때만 해도 할렘가라 집값이 저렴해 찾았다는 레드우드로 향했고, 정리하며 알았는데 그날이 신랑 생일이었더라고.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나. 나였으면 정말 섭섭했을 텐데 왜 말도 하지 않은 거니?


16일, 물이 가깝고 공원이 있는 곳. 세계 어디든 그곳은 명당이구나! 지도를 보며 숙소의 위치와 가격을 살펴봐도 사람들이 원하는 곳이 어디인지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싶다. 우리도 그런 곳을 찾아가 보면 어김없이 도서관이 있다. 조용하면서 자유롭게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치열함이나 조바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면 나의 편견일까?


17일, 첫 번째 숙소에서 방도 한차례 바꾸고 광각카메라의 놀음에 놀아난 숙소를 떠나 두 번째 숙소로 향하는 길. 그래도 꼭대기층이라며 위로 삼았던 그곳에서 슬리퍼를 떨어트린 신랑. 차라리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지. 하필 4층 화단으로 추락. 호스트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아 만 원짜리 슬리퍼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찾느냐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느냐 선택에 놓인 동행인. 이날 결심했지, 되던 안되던 조치가 빠른 호텔을 선택하자!


18일, 신랑이 하숙할 때 주인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당번을 정해 도매시장을 갔었고 그곳에선 망고가 한 박스에 5불이었다는 플레밍턴에 패디스마켓에 갔지. 정말 정신을 쏙 빼는 시장바닥. 가격흥정하는 소리와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이곳저곳 흘려다니다 산 것은 군밤이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한 봉지에 6불은 관광객프리미엄 아니었을까? 


19일, 저번주 일요일에 시드니에 도착했으니 오늘로 딱 일주일. 맥주 한잔하며 여행의 방향을 이야기하다. 분명 한국에선 살다오 자고 했는데, 이건 웬만한 관광일정보다 더 빡빡한 거 아냐?


20일, 어제 박물관과 도서관을 몇 군데 들르며 그냥 돌아 나오는듯한 촉박함이 싫어 하루에 많은 곳을 다니지 않기로 했지. 오늘은 시드니대학 도서관에 콕 박히고 싶었다. 드디어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 며칠간 정리하지 못한 다이어리를 차분히 정리하며 꿀 같은 시간은 보냈지. 젊음도 그립고 혼자만의 시간도 그리운 시간. 다시 찾아온 그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빨랐다.


21일, 하이드파크를 지나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조용한 명당을 찾아갔다. 맥쿼리 주지사가 그 지역을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를 위해 만들었다는 사암으로 만든 의자. 역시 명당이다. 여행이 길어지며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내 모습. 이것도 여행이 주는 가르침이겠지


22일, 블루마운틴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출발 전에 추억에 젖어 이야기했다가 너무 멀다며 우리의 여행은 시드니 시내에서 살다오기라며 강조하던 그였다. 여행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 유연하게 움직이자. 그것 또한 여행의 교훈 아닐까?


23일, 정말 내가 생각했었던 여유롭게 공원에 드러누워 책도 보고 글도 쓰며, 때론 햇빛에 온몸을 내어주고 낮잠 자는 그 모습. 드디어 오늘에서야 싸 짊어지고 간 돗자리를 처음으로 펼쳤다. 그저 드러 눕는 것도 어색한 우리를 보며 눕는 것도 누워본 놈이 잘 눕는다. 어딜 가던 티 나는 동양인은 그저 예쁜 사진 찍기에만 집중. 그게 난데 왜 티 나는 건 싫지?


24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를 정하며 두 번의 숙소를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호텔을 선택하자. 가격이 저렴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좋은 곳도 특가가 있다. 그래서 선택한 마지막 숙소는 NORTH SYDNEY에 메리턴호텔. 아침부터 무거운 짐을 끌고 갔건만 결제를 해야 하는데 신랑 계좌 1일 이체한도 초과로 멘붕에 빠졌다. 크게 당황할 일도 아닌 것을 미리 체크하지 못한 자신 탓을 하는 그를 보며 드는 생각은 내가 잘못했으면 어쩔뻔했는가 아찔하다는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참 문제다 문제.


25일, 뒤로 갈수록 짜증포인트가 늘어나는 것은 둘 다 참고 있거나 체력이 떨어진 이유이겠지? 다시 마음을 다독여보지만 빈도가 점점 잦아진다. 그나마 이곳에서 마지막 토요일이라며 유학시절 종종 놀았다는 샤크호텔에서 맥주 한잔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수행하러 나선 곳. 웬일인지 주말엔 그저 맥주 한잔 하는 곳이 아닌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곳. 예전 발바닥 좀 비볐던 나는 흥이 났지만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스스로 드시고 나와 길바닥에서 흥을 풀어냈던 그런 날이이였지


26일, 오늘이 세 번째 주일인데 한 번도 현지에서 예배를 참석해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례 여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가능성마저 닫아버린 내게 그는 말했다. “한 번을 교회 가자는 말을 안 하네? 현지 교회 가자고 하면 함께 했을 텐데”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믿음 있는 척, 신실한 척은 다해놓고 떳떳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더 부끄러웠다.


27일, 본다이해변보다 더 좋다는 쿠지해변을 보기도 했다. 본다이 해변은 넓은 모래사장에 파도가 끝까지 밀려오는 풍경이 멋졌다. 내가 본 해변 중에서 모래사장이 가장 길고 넓은 것 같다. 쿠지해변은 모래사장옆에 있는 언덕이 일품이었다. 본다이에 비해 화려하지 않지만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는 맛과 담백한 곳이라고 할까? 비록 이곳에서도 어긋난 마음의 쓴 맛을 경험했지만. 바다처럼 넓은 마음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28일, 보고 싶은 공연, 정확히 공연을 경험하고 싶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보고 싶었지만 강박이다 싶을 만큼 현지인처럼 살다 오자는 그의 말에 무엇을 체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머물수록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고 그즈음이 우리가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던 것 같다. 그가 계획하고 리드하는 여행에 내 목소리를 내는 포인트들에서 말이다. 내 목소리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름에서 오는 의견불일치가 주범이지. 그래도 일관된 공연보기는 그의 계획에 포함되었고 결과는 나보다 그가 더 만족스럽다. 20대에 좋아했던 브릿트니 노래들이 줄줄이 나왔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29일, 긴 여행의 정말 마지막 날. 시드니 한 복판에서 언성을 높이며 크게 싸웠다. 정말 긴 여행에 클라이맥스. 덕분에 마지막 비비드축제거리를 홀로 거닐며 하버브리지에게 오페라하우스와 맞은편 락스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했다. 시티를 걷고 싶어 그 길을 걸으며 눈에 닿는 모슨 풍경에게 인사를 했다.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작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왜 말하지 못했을까? 긴 시간 시드니에 머무른 나는 생각보다 나약한 인간이란 걸 알게 된다. 그렇게 멀리 가서 말이다.


30일, 시드니에서 제일 일찍 일어난 날. 아침 비행기에 늦지 않게 출발한 우리.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숙소에게 인사를 하며 공항으로 가는 길 곳곳을 다시 눈에 담았다. 떠날 때 드는 아쉬움은 언제나 없으려나. 언제쯤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함으로 충만함으로 떠날 수 있으려나 그런 여행의 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 비행기 옆좌석에 할머니는 순간순간 무엇이 떠오르는지? 노란 종이로 된 손익은 수첩을 꺼내 수시로 무엇을 적는다. 작가인가? 이것저것 묻기엔 비루한 영어실력도 그렇거니 비행기소음에 좋지도 않은 발음이 여기저기 티가 날까 할머니를 향한 내 생각도 그냥 그렇게 접고 말았다. 후에 나도 같은 기록자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일주일도 넘게 꺼내지도 않았던 다이어리를 꺼내 들고 사진첩을 펼쳐 시간을 기록한다. 여행을 기록하고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옮겨오고 싶었지만 결국 새로 산 노트에도 다이어리에도 적어오지 못한 그것들은 내 머릿속에 남아 어떤 것은 이미 잊히고 어떤 것은 선명하게 남아 그곳을 추억할 수 있다.


31일, 조금이라도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무엇이 적고 싶은 마음과 쌓여 있는 빨래와 정리되지 않은 짐들을 보며 쓰기보다 정리를 택한 나. 빨래에서 나는 그곳의 냄새가 있다. 그곳의 세제냄새를 맡으며 짐을 정리하며 금세 옛일이 되고 말 여행을 떠올려 본다. 기록만큼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쓰기를 선택하지 못하는 나는 이것이 여독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호주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빨래통에 빨래를 넣는다. 


먼 기억 속에 있는 하루를 꺼내 너를 다시 느껴봐. Good Bye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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