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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써니 Oct 24. 2024

유치하지만 기분은 좋아

김도원 승


"네가 포기해!"

"내가 먼저 좋아했거든?! 네가 포기해"


은숙이가 빨리 와보라며 반에 남자애들이 싸운다고 했다.

"근데 왜 나를 불러?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야지." 나는 은숙이를 따라 교실로 들어섰다. 

 빼곡한 책상 사이로, 반 아이들이 모두 빙 둘러서있다. 


"내가 유리 더 좋아해, 나는 3학년 때부터 좋아했어."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나도 유리 좋아하는데…"


들어보니 나라와 도원이 나를 두고 다투고 있다. 그러니까 둘 다 나를 좋아한다고, 서로 포기하라고 싸운다고?!!!  


이유리! 12살, 국민학교 5학년.

딸 부잣집 둘째. 이쁘고 착한 아이. 

그렇지만 모든 게 어중간하기만 한 나다. 키도, 성적도 중간, 앉은자리도 중간인 아이. 

그래서 두루두루 이쪽저쪽 모나지 않게 친하게 지내는, 그게 나 이유리다.


그 시절에는 교실마다 풍금이 있었다. 아라가 늘 음악 시간에 풍금을 치면 나는 페달을 밟아주는 아이였다. 피아노 학원도 안 가본 나에게 페달을 밟게 시킨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된다. 페달 밟는 일이 정말 싫었다. 도원이가 같은 반이 된 지금은 더 그렇다. 도원이 앞에서 페달만 멀뚱히 밟는 것은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꼭 아라 시녀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의 촌지가 너무 작았을까? 아니면 우리 엄마는 아예 돈 봉투 같은 거 가지고 학교에 오질 않아서, 나한테 이런 페달 밟는 거나 시키는 건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이 무서워서 달리 싫다고 말해본 적도 없다. 


우리 선생님은 나이가 50이 넘은 할머니였다. 그 시절 내 눈엔 할머니 같았다. 그 당시는 촌지도 받고, 엄마가 선생님 김치도 담아주고, 강남에 1학년을 맡으면 집을 한 채 산다는 말도 있을 만큼 선생님의 위상이 아주 높을 때였다. 감히 선생님의 말씀에 누가... 딴지를 걸 수 있나. 


'아,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애들이 싸움을 그쳐야 하는데.'

"얘들아, 선생님 오셔, 뭐 해 너희... 싸우는 거야? 얼른 제자리 앉아."

나는 짐짓 싸움의 내용을 모른 척, 아이들을 말리고 교실 분위기를 정리했다. 


도원이와 나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그때는 말도 걸지 못했다. 도원이는 학교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 아파트에 사는 친구였고 나는 빌라와 다세대주택, 상가가 섞여있는 곳에 살았다.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다 아파트에 살았다. 그중 도원이는 공부도 잘했고, 늘 반장이었다. 매너도 좋아서 도원이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파트 사는 애들은 빌라 쪽 사는 애들이랑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다. 누가 뭐랄 것 없이 자연스레 그렇게 나뉘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두 남자아이가 다 나를 좋아한다니, 기분이 좋았다.

나라는 잘난 척을 해서 별로지만, 도원이는 내가 3학년 때부터 좋아하고 있어서, 도원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윤나라. 네가 나를 좋아한다니, 왜? 잘난 척하는 네가 나를 왜? 그래도 너 때문에 도원이 마음을 알게 됐으니... 고마워. 그런데 나 좋아하지 말아 줄래! 나는 이미 김도원 좋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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