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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원본이란

〈미키17〉을 보고

by Haim Jung

*스포 있음

미키는 사채를 썼다가 빚을 갚지 못해 친구와 함께 우주로 도망가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생체실험이나 위험 임무에 투입되어 인류를 위한 기술 개발에 쓰이는 '익스펜더블expandable'에 지원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죽어야 하는 자신의 직업을 알게 되어도 그다지 저항하지 않는다. 직원은 원본 미키의 기억을 백업하고 신체 데이터를 프린트한 후 원본 미키는 직원에 의해 살해당한다. 그리고 프린트된 미키1이 우주로 출발해 여러 실험과 임무들을 거치며 미키는 18번까지 리프린트된다.

미키17과 미키18이 서로 몸싸움하는 상황에서 '원본성'에 대해 의문이 드는 장면이 있었다. 이후 인용한 대사들은 정확하진 않고 내 기억에 의한 것이다. 미키18이 미키17을 죽이려 들며 '어차피 너나 나나 똑같은데 네가 죽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는데, 미키17이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죽었다 살아났던 것이지만 네가 나를 죽이면 이제부터 나(17)는 죽고 네(18)가 존재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미키18은 멈칫 하다가 다른 인물이 등장해 둘은 황급히 숨는다.

그리고 크리퍼와 인간이 맞서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미키18이 마샬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 폭탄을 터뜨려 자신도 함께 희생하려 하는데, 잠시 머뭇거린다. 그 망설임을 본 못돼먹은 마샬은 '두렵냐, 역시 너도 인간인 거다.'라며 미키18을 꼬드기려 한다. 하지만 결국 미키18은 자폭을 선택한다. 그런데 미키18은 자폭하기 전 크리퍼들의 리더인 마마 크리퍼에게 '여기 댓가로 요구한 인간 1명!'이라고 외치는데, 누가 봐도 그 인간이란 마샬이다. 하지만 함께 죽게 되는 미키18 본인은? 별 의미 없었던 대사였던 것일지, 리프린트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도 부정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인간 프린트 기술이 발명된 초창기 사회적으로 윤리 문제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던 시기에, 원본 인간과 리프린트된 복제 인간 2인, 총 3인이 연쇄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들을 1명으로 봐야 하는지 3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명쾌한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결국 위원회는 '익스펜더블은 엄격한 통제 하에 지구 밖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한 행성 당 하나의 익스펜더블만 쓸 수 있으며, 혹여라도 리프린트된 익스펜더블이 둘 이상 존재하는 '멀티플multiple' 상황이 생기면 익스펜더블의 기억 데이터와 신체를 영구 삭제한다.'는 조항을 만든다.

하지만 한명이었던 인간이 둘로 나뉘는 순간 이들은 다른 존재가 된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미키와 미키1로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동시에 존재하는 미키17과 18은 각자 경험하는 것이 다르고 이에 따라 다른 기억을 쌓기 시작한다. 리프린트 미키는 늘 죽고 리프린트되기를 반복하다가 미키17이 된 후, 자기 주장이 강한 돌연변이 같은 미키18을 만나며 미키17만의 자신만의 의지를 만들어간다. 크리퍼와 인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협상을 하고 꿈 속에서 마주친 리프린트된 마샬의 부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복제된 존재일지라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키18의 자폭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미키17은 미키18이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했었는데, 크리퍼와도 인간과 크리퍼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협상했다. 반면 미키18은 악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만 봐도 미키17과 미키18은 다른 존재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원본', 즉 자신의 '존재'라는 것은 '의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몸이 존재하더라도 타인의 의지를 복제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자신이 원본임을,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주체성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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