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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둥이긴개 Apr 07. 2024

낙곱새에 빠져봐요

  낙곱새를 처음 접한 건 20대 후반이었던가. 누구랑 갔었던 거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때는 쌈채소랑 곁들여서 먹었던 것으로 희미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오동통한 낙지와 쫄깃한 곱창, 그리고 감칠맛의 새우들이 매운맛으로 합쳐진 모임이라니. 세명의 조합은 도원결의에 비유할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내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찾아서 즐겨 먹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회사 점심시간에 옛날농장 같은 품목이 많은 식당에 가면 1인분으로 뚝배기로 시켜 먹는 편이다. 가스불 올리고 조리하면서 먹는 건 아닌지라 많이 아쉽지만, 1인분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로 다가온다. 

  뚝배기에 가득한 송송 썰린 대파들. 메인 재료인 곱창과 새우, 그리고 낙지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들은 대파의 숲에서 사냥꾼을 피해 풀숲으로 숨어든 사슴과 같다. 허나 새우를 제외하면 단가가 꽤나 높은 재료들 아닌가. 점심식사에 만원 남짓한 가격으로 이들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매콤한 맛을 타고 낙지와 새우, 그리고 곱창을 번갈아 먹다 보면 밥 한 공기는 금방 비워지기 마련이다. 낙지다리를 이빨로 튕길 때 엇박으로 들어와 감칠맛을 찔러주는 새우, 여기에 지방의 고소함을 가득 메운 곱창이 들어와 터뜨리면 맛의 불꽃놀이 축제이다. "낙곱새"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료 이름을 줄여서 뭉쳐놓은 단어 같고, 인기 있는 식재료를 억지로 모아놓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면 누가 발명한 건지 싶다.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30대가 되면서 생긴 변화는 매운 걸 점점 먹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엽떡은 아예 블랙리스트에 오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뚝배기에 담긴 낙곱새도 이제는 못 시켜 먹을 거 같다. 하루종일 배앓이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에 이 식당에 온다면 아마 다른 메뉴를 시키지 않을까 싶다. 하루 하루 리미트를 새기며 지나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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