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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둥이긴개 Mar 03. 2024

날씨 풀리기 전에 풀어보는 스키장 썰 (2)

한번 내려와 봐


  친구의 한마디에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는 그렇게 손을 떠났다. 다리를 A자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 다리는 통제가 안되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일자가 되었다. 멈추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어떻게 멈추는 거지?



어 잠깐만요. 이게 아닌데...


친구 녀석들을 지나 스키와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중간에 넘어지면 왠지 사고가 날 거 같아서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군가랑 부딪히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뿐이다. 



야! 멈춰어어어...


  등뒤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친구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쭉 내려갔다. 물론 공포에 휩싸인 채로 말이다. 일자로 눈밭에 미끄러지는 스키는 어떤 저항도 없이 속도가 비트코인처럼 치솟았다. 맨몸으로 빌딩에서 뛰어내리면 이런 느낌일까. 이제 아무도 나를 멈출 수 없다. 

  그렇게 의식이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로 참 무사히 내려왔다. 운 좋게도 내려오면서 마주친 건 없어서 큰 사고는 없었다. 그 속도로 방향 전환하기도 힘드니 말이다. 멍 때리며 한참을 밑에서 쉬고 있으니 그제야 친구들이 내려왔다. 


  내려가는 거 보고 구하려고 추격했는데, 너무 빨라서 놓쳤다고 한다. 하긴 브레이크 없이 다 같이 똑같은 중력으로 가속도가 붙는데 먼저 출발한 자를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핀잔을 주면서 친구가 말하길, 일단 처음 타면 다리에 힘을 빡 줘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래야 A자를 유지할 수 있다고. 아... 내가 생각하는 거보다 스키는 힘이 많이 드는 종목이었다. 


  초보자가 처음 타면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물론 난 처음은 아니지만 어릴 때랑 지금이랑 몸이 달라졌다. 30대가 돼서 한 운동을 새로 파려니 쉽지가 않다. 몸이 뻣뻣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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