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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늑대 May 06. 2020

혼자 광고회사 차려본 썰

#1. 7만 8천원짜리 회사

꼴에 광고니 브랜딩이니 이거저거 주전자라도 날라봤다고 내 회사를 차릴 때 가장 어려웠던 건 자본금도 아니고, 함께 할 사람 찾기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니고, 앞으로 해야할 일도 아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던 건 회사의 '네이밍'과 '지향하는 철학(매니페스토)'였다. 이름이 어떻게 정해졌고, 왜 늑대이고, 내 회사의 철학이 뭔지는 공유해봤자 재미도 없고, 여기 한 줄 더 쓴다고 해서 안 되는 회사가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건 '경험상'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한다. 무튼, 네이밍/철학이 정해지고  후의 모든 들은 일사천리로 생각보다 매우 대충 이루어졌다.


3년차쯤 되었을 때에, 존경하던 분의 오픈멤버로 또 한 번 운좋게 이직을 할 수 있게 되자, 게으르고 나태하고 은혜도 모르는 나라는 인간은  '기획 프리랜서'부터 시작하는 두 주머니 꿈, 그리고 또 한 번의 창업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 또한 이름 만들기가 가장 중요했다. 나는 매우 오만하게도 '혹시 유명해져서 겹치면 어떡하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인거 숨기는 것처럼 또다른 인격을 만들어야해!' 같은 생각으로 셀프-브랜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공개하기도 부끄러운 필명으로 어디에도 올리지 않은 허접한 디자인의 BI도 만들어 프리랜서 교류 플랫폼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뻥튀기해서 쓰곤 했다. 기획서 한 두장 관여해놓고 "XXX PT 전략 담당"이라고 쓰거나, 배너 카피 몇개 썼다고 '크리에이티브 개발 가능'이라고 쓰는 그런 걸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잘도 입에 담았다. 물론,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프리랜서의 꿈이 잊혀져가던 중, 우연한 기회로 '뭘 짓는 일'에 투입되게 되었다. 왜 '뭘' 이라고 표현했냐면, 짓는 사람조차 뭘 지어야할지 잘 몰라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내게 '뭐 할까?'라고 물어본 거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뚝딱뚝딱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겹치고 하다가, 애초에 의뢰인 자체가 문화적으로 매우 앞서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손 안대고 코 푼 격으로 그냥 멋진 포트폴리오를 하나 얻게 되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거기서도 '이름 짓기'나 '메뉴 골라주기', '공간기획 잘 하는 척 해외 레퍼런스나 가져오기' 정도였다. 물론, 실현할 수 없는 매우 거대하고 멋있는 기획(서) 써주기도 있긴 한데, 이 부분은 클라이언트와 나의 유일한 보물 같은 이야기인지라, 인생이 힘들어질 때 혼자 꺼내보기 위해 공개하지 않도록 한다.


아무튼, 그 몇 개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또 영업을 다니다보니, 적당히 몇 건의 일이 들어오게 되었고, 개중에는 나름 회사나 팀 단위가 붙어야 되는 일도 있었다. 내가 무슨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만 골라 받았다기 보다는, 그런 일들이 돈을 더 많이 줬기 때문에, '팀'이 필요한 일만 골라서 받았다. 물론, 나는 혼자였지. 경쟁PT에 승리하고, 투입 인력 보고를 올려야 할 때가 가장 난감했다. 그때 내가 시작한 일이 바로 '인력 뻥튀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명예욕, 지위욕, 권력욕, 금전욕을 매우 탐하는 탐욕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에, 각종 문화 커뮤니티니 무슨무슨 크루니 하는 것들에 가입해서 제대로 문화를 배울 생각이라곤 하지 않고, 후딱 뭐라도 대강 만들어 '리더'가 되려는 큰 중병을 가지고 있다. 그런 중환자 생활을 한 7~8년 하다보니, 리더의 그릇보다도 큰 인재들이 내 그룹들에 종종 모여들었는데, 리더인 본인의 과시욕 때문에 날개를 잘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보였다. 그런 인재들을 '광고, 한 번 해볼래?'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홍대나 한남동으로 부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회식 한 번 5만원, 집에가는 '내' 택시비 2만원으로 나는 뻥튀기할 인력을 샀다. 8천원으로는 다음날 해장용으로 김치돈부리를 사먹었다. 그때 김치돈부리를 먹으며 '여긴 브랜드가 이래서 아쉬워~ 저래서 아쉬워~' 같은 대기업 오너라도 된 양 오만한 소리를 속으로 잘도 지껄였던 기억이 난다.


무튼, 대표기획자 / 콘텐츠 디자이너 / 커뮤니티 플래너 / 선임기획자 등등 한자와 콩글리시가 오가는 화려한 직급을 부여해서 수 개월을 함께 일했다. 당연히 사무실이 없어서, 따로 각자 일했다. 사실 일을 한 건 아니고, 일하는 척에 취해있었다 (나만)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수주는 잘 되지 않았다. 상대도 바보가 아니니까, 그냥 기획이 좋다고 소중한 마케팅 예산을 듣도보도 못한 애들한테 주진 않는다. 당연히 정식 고용할 돈도 없었고, 얼마 안 되던 퇴직금은 버스킹 플랫폼이니 유랑악단이니 하는 거 만들어보겠다고 야금야금 술이나 먹다가 다 날려먹어서 자본금은 바닥난 상태였으므로, 나는 그냥 어쩔 수 없이 기획서 대필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아- 참된 기획자가 이런거 하면 안 되는데! 기획의 가치가 있는데 말야! 같은 가오는 계속 부렸다. 속으론 대필 알바가 하루라도 끊길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매일 일을 주시는 분들께 아침 커피 기프티콘을 올려 바쳤다.  


아는 사람의 회사소개서 만들어 드리기, 건너건너 아는 누구의 영문 기획서 만들어 드리기, 어느어느 플랫폼의 친한 팀장의 내부 보고용 여름상품 기획서 대신 써 드리기, 옛날에 무서워한 어떤 힘 센 친구의 치킨집 전단 만들어주기 등등 어도비 결제할 돈도 없고, 거지 꼴 주제에 크랙버젼은 쓰지 않는다! 같은 올곧은 정신이 있었기에 그냥 정말 다 PPT로만 할 수 있는 일들만 골라 모든 걸 다 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대부분 좋았다. 내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누구도 신경 안쓰고 대충 할만한 문서이고, PPT 만들기 귀찮아서 그냥 돈 몇만원 쥐어주고 써달라고 했던 게 나에게는 '유일무이한 사업아이템'이라 집중도가 달랐으니 말이다 ㅎㅎㅎㅎ 정신을 차려보니 통장에 매달 월급만큼의 돈이 추가로 벌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월급을 초월하는 달이 군데군데 끼어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50장 정도 되는 기획서는 그냥 하루면 납품, 회사소개서는 이미 보유한 포맷이나 플로우에서 슥슥 교정해가며 일주일에 두 세개 버젼도 납품, 마우스도 안 쓰고 트랙패드로만 완성짓는 게 가능해진다거나, PPT로 포토샵을 한 효과를 낸다거나 하는 게 가능해졌다. 7만 8천원으로 가짜 회사를 만들려다가 폭망해서 오히려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파이브울브즈의 가장 주요한 역량이자 돈벌이 수단이 '기획서' 인 걸 보면, 그때 우리를 칼같이 잘라낸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또 사과드리고도 싶다. (근데 피티는 1등 시켜주셨잖아요, 리젝션피도 없이 시키셨으니 쌤쌤입니다 ㅎ)


오히려 다니던 회사 일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회사가 고마운 존재라는 걸 그때 많이 깨달았다. 불평은 적어지고, 업의 퀄리티나 회사의 경영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도 되었다. 기획서 대필(사실, 대학생도 하는 PPT 대필 알바 ㅎ ) 수준의 사업이었지만, 한 번이라도 깔짝 실수를 한다거나, 일정을 몇 시간이라도 지키지 못한다거나 하면 다음 기회는 얄짤 없었다. 백만원을 주건, 오백만원을 주건, 혹은 공짜로 일을 시키는 경우에도 똑같았다. 이 방향이 옳은지 누군가와 '토론'을 해본다거나, '논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을 도출'한다거나 하는 매우 일반적인 광고회사의 프로세스가 매우 사치스럽고 꿈 같은 걸로 여겨졌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 시간이 너무도 즐겁고 소중해져서, 아주 작은 회의를 해도 아이디어 문서를 몇 개씩이나 만들어갔다. 두 주머니를 차는 게 자랑은 아니므로, 기쁨의 수위는 적절히 조절하곤 했다. 이 때, 처음으로 회사의 고위직급에 대한 꿈을 가져보게 되었다. 열심히 해서 임원이 되어볼까- 같은 꿈을 꾸며, 사업이란걸 굳이 해야하나- 에 대한 고민을 오히려 가장 많이 했던 시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딱 이렇게 '사업에 재미를 붙였을 때'이다.


'전단지 만들기' 정도를 하는데도 이게 옳은지 아닌지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처음엔 일정을 맞추는데에도 허덕여서 '그냥 처음 낸 생각이 옳다'고 믿어버리고 문서를 다 만들고, 후진 부분은 PPT 디자인이나 현학적인 워딩이나 영어를 섞어가며 눈가림을 하는 매우 저급한 짓을 잘도 골라서 했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부끄러운 줄도 몰랐지. 지적해줄 사람이 더이상 없다는 게 혼자 하는 광고회사에서의 가장 큰 득이자 독이 여기라고 생각한다. 회사 다닐 때랑은 다르게 더 큰 일을 더 재밌게, 내 쪼대로, 내 식대로, 내 가오대로 밀어붙일 수는 있는데,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혼자 다 져야한다.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회사를 다닐 때 처럼 '수정사항'을 받거나 심하게는 '광고주에게 불려가 책망을 듣는' 정도로 절대 끝나지 않는다. 나 같은 구멍가게의 경우에는, 바로 폐업을 하고 새로운 이름을 달고 또 광고회사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들만큼의 일이었다.


나중에 일정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 오늘의 나를 삼자대면 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내 자신이 게으르고 나태한 수준 이하의 기획자이기 때문에 보통 '그래 수정하지 말자!'라고 어제/내일/오늘의 나가 합의하는 결론이 주로 도출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 이건 좀;;' 같은 피드백을 오늘의 나에게 받으면 싹다 고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기획서를 여러 버젼으로 만들어, 중간 협의 없이 '통째로' 플로우와 전략, 결과물(컨셉 내지는 매우 단순한 수준의 크리에이티브)를 한데 묶어 여러 개를 비교하니 뭐가 옳고 그른지가 아주 조금은 판별이 되었다 (물론, 절대적인 거 말고 상대적인 수준에서) 이런 업무 프로세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절대 광고주 등 청자가 어디 조금, 저기 조금 고쳐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획서가 하나로 딱 귀결되어 세트화 되어 있으니, 카피 좀 고쳐주세요~ 디자인 컬러좀 바꿔주세요~ 같은 말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접근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내게 기대하는 게 엄청난 깐느급 전략이나 크리에이티브도 아니기도 했고, 그냥 싼마이 대필 알바 친구가 뭘 열심히 만들어왔는데 '앞뒤 말이 잘 맞네' 라거나 '의도가 잘 들어있네' 정도면 웬만하면 잘 사주셨던 것 같다. 좋건 나쁘건, 이런 경험을 많이 가져가는 것이, 매우 소개하기도 부끄러울만큼 허접해보이지만 초창기의 굉장히 큰 목표였다.


이 당시의 회사를 '기획 전문 회사'라고 부르거나 소개하는 게 솔직히 몇년간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기획을 가르쳐주신 선배들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복합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아무튼 7만 8천원으로 거짓말 했던 것보다는 조금 나았던 거 아냐? 하고 자위하며 매일 새벽 서너시쯤 일하다 잠들곤 했다. 기획을 해서 기쁜 게 아니라 기획으로 손에 만져지는 돈을 벌어서 기뻤다. 그게 내가 내 일을 진정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싫은 점도, 좋은 점도, 예쁘게 생긴 부분이나 못생긴 부분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해볼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팀장님에게 혼나서, 제작팀에 들고갈 때 쪽팔릴까봐 퀄리티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한 장 잘못 만들었다고 백만원 받을 거 10만원 덜 받고, 피티 연습 안해서 두번째 일할 수 있는 기회 없어지고- 하는 게 무서워서 퀄리티 걱정을 하는 경험도 나름 재미있다. 나처럼 못하는 사람도 했는데 뭐... 원한다면 누구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7만 8천원짜리 회사가 지금은 뭐 78억짜리 회사가 된 것도 아닌데, 니 주제에 이런 썰을 푸는 게 말이 되나- 같은 생각은 독자 여러분도 하셨을 테고, 나 또한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 시점에서 드는 생각이긴 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는, '사업할 때 거짓말하지말자' 혹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자' 같은 어디 좋은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실만한 교훈이 아니고, 그냥 뭐 광고회사라는 게 엄청 대단한 아이템이나 자본이나 그런 거 없이, 컴퓨터 한대에 파워포인트 깔려 있고, 윤고딕 몇 개, 꼬딕씨 폰트 몇개 깔려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결과가 숭고하고 업의 가치가 숭고하다고 그에 이르는 과정과 시작까지 숭고할 필요는 없다. 주먹구구 내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꼭 어딘가 무슨무슨팀을 따로 꼭 만들어서, 그렇게 사람을 계속 충원해야해? 원래 그렇게 많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야?? 회의를 꼭 모여서만 해야해? 단계를 나눠야해? 앱으로 하고, 톡으로 하고, 슬랙으로 일하면 안돼? 기획/제작 나눠서 해야해? 기획이 제작하면 왜 안돼? 애초에 광고라는 게 뭔데? 전략의 정수는 뭔데? 같은 온갖 도전적인 생각들이 많이 들었던 게 나중에 제대로 회사를 차리는 시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성과에는 하나도 도움을 주진 않았고, 서두에 밝힌 그놈의 네이밍이니 철학이니 하는 새날라가는 소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던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일을 이딴 식으로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들게 된다. 이 업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당신 스스로에게 '이 업을 할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나처럼 회사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결심의 지름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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