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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지 Nov 14. 2023

짝짝이 양말을 신는 날, ‘Odd Socks Day’

영국 생활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스핀오프 : 못다한 이야기


  영국에서는 어제(11/13)가 ‘Odd Socks Day’였다.

  'Odd Socks Day'란 ‘서로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는 날로, 영국에서 매년 11월 둘째 주를 학교, 직장, 기타 단체 및 조직 내의 차별과 괴롭힘을 예방하는 주간(Anti-Bullying Week)으로 정하고, 그 캠페인 주간의 첫째 날인 둘째 주 월요일에 상징적인 의미로 짝이 맞지 않는 Odd Socks를 신는다. 양말의 짝이 맞지 않아도 발을 보호하는 것은 동일하듯, 사람 또한 서로 다른 모습과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Odd Socks’를 신고 일상의 공간을 활보하며 서로에게 다시금 환기하는 것이다.   


< 영국의 Odd Socks Day 2023 캠페인 이미지 (출처 : https://www.awarenessdays.com) >



  두 해 전, 영국 바스의 학교를 다닐 때 우리 아이들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갔다. 한국에서는 접해보지 않은 유형의 캠페인인데다가, 특히나 주변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첫째 아이는 옅은 그레이 컬러와 진한 밤색 컬러 양말을 한 짝씩 신고 등교 준비를 다 마친 뒤에도 쉽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다.


  “엄마, 진짜 이렇게 신고 가도 될까?”

  “그렇게 신고 오라고 학교에서 안내문이 왔는데. 그런데 싫으면 안 신어도 되고, 색깔은 같고 무늬만 살짝 다른 양말을 신어도 돼.”


  나는 처음부터 양쪽의 무늬가 다르게 나온 나의 디자인 양말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신고 있던 양말을 벗지도, 내가 내민 양말로 바꿔 신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시킨 것은 지켜야만 하는 고지식한 아이였다. 그리고 ‘차별 금지’라는 메시지가 싫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중요한 가치를 재미난 이벤트로 시행하는 영국이란 나라, 이곳의 학교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기만 그렇게 짝짝이 양말을 신고 가서 이상하게 보일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아이는 2층 방 창문에서 학교 정문을 바라보며(우리 집이 학교 바로 건너 편에 있어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다른 학생들의 발을 유심히 바라봤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짝짝이 양말을 신고 왔다. 몇몇 아이들은 무릎 위까지 오는 요란한 양말을 신고 오기도 했다. 첫째 아이가 안심하듯 웃으며 가방을 메고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 두 해 전, 'Odd Socks'를 신고 영국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 >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길, 나도 (아이에게 내밀었던) 무늬가 다른 양말을 레깅스 위로 끌어올려 신고 집을 나섰다. 원래 그렇게 나온 양말이라고는 해도 늘 바지 아래로 숨겨서 신었었는데, 종아리 위쪽까지 눈에 띄게 당겨 신은 다른 무늬 양말이 쑥스러웠다. 그러나 그날 이 양말이 품은 의미가 넉넉해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다른 무늬로 교차되는 걸음이 뭉클하고 가뿐하게 느껴졌다.


  Odd Socks Day 외에도 영국에는 차별을 예방하는 캠페인으로 ‘Red Day’라는 날이 있다. 이 날은 많은 차별 중에서도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춘 날이다. 인종차별에 레드카드를 날린다는 의미를 담아 이날은 빨간색 옷을 입는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영국이란 나라에 이렇게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는 캠페인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동안 이 사회에 많은 차별이 있어왔다는 반증이고, 여전히 곳곳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캠페인을 따라 짝짝이 양말을 신는다거나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적극적으로 사회 인식 개선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짝짝이 양말을 신는 영국의 'Odd Socks Day'가 깊은 인상으로 남은 것은 적어도 이 사회가 스스로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기발하고 위트 있는 방법으로.

  차별, 괴롭힘, 집단 따돌림 등등 우리 사회에도 크게 이슈가 되는 이 주제들은 뉴스나 소문으로 전해 듣기만 해도 답답하고 무겁다.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라고 해서 진지하게만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는 안내문과 수업도 반드시 필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고 서로의 ‘이상한’ 모습에 웃으며 체득한 ‘괴롭힘 금지’의 메시지는 나비처럼 가볍게 폴폴 날아, 차별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에 적힌 글보다 빠르게 아이들의 마음에 닿을 것 같기도 하다.

  더하여 이 ‘이상한 양말’이 타인을 향한 차별 금지뿐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검열의 벽을 부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쉽게 현관문을 열지 못했던 나의 아이가, 무늬만 살짝 다른 양말 대신 완전히 색이 다른 양말을 신고 등교를 하겠다고 용기낸 것처럼.


‘아, 이런 모습으로도 집 밖을 돌아다닐 수 있구나. 이래도 괜찮구나. 이상해도, 달라도 '나'는 '나'구나. 내 친구들도 그렇구나.’


  변화는 어느 하루에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영국 ‘Odd Socks Day’ 예찬과 달리 여전히 많은 아시아 사람들은 영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에서 차별이라는 부정적인 경험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Odd Socks’를 함께 신기를 권하는 사회는 그 양말을 신고 걷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조금씩 달라져갈 것을 믿는다. 먼 곳의 낯설고 이상하고 재미난 캠페인이 알려준 의미가 우리를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것 또한. 모두가 다르게 어울릴 수 있는, ‘Odd Socks’ 같은 세상을 응원한다.





※ 이 글은 영국의 작은 도시 바스(Bath)에서 보낸 일 년을 담은 영국 생활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의 스핀오프(Spin-off)로, 책에 담지 못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은 글입니다. 더욱 가득차고 정제된 영국의 작은 도시 생활 이야기가 알고 싶다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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