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현지 Jul 18. 2024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라콕 (Feat.해리 포터)

[영국 빼고 런던 여행] 영국, 잉글랜드, 월트셔, 라콕(Lacock)

‘라콕(Lacock)’ 마을은 잉글랜드 남부 월트셔 치펀햄(Chippenham)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거의 마을 전체를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소유하며 관리•보존하고 있는 라콕 마을은, 그래서 과거 영국의 지방 마을의 거리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대극 드라마의 세트장 혹은 테마 파크 속을 거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일부러 빈티지하게 조성한 테마 파크와 달리 과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존한 라콕 마을은 작위적이지 않고 고풍스럽게 운치 있다. 참고로 라콕 마을에 있는 건물과 집들은 대부분 18세기 또는 그 이전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 잉글랜드 남부 '라콕(Lacock)' 위치 >


몇 주 전에 함께 본 '코츠월드(Cotswolds)'의 '캐슬 쿰(Castle Combe)'도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이라고 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어서, 영국의 지방 마을은 다 이렇게 과거를 간직한 모습인 것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런 말로 공격을 해온 것은 아니고, 글을 쓰다가 스스로 ‘제 발 저린’ 자문(自問)이다.


자답(自答)을 해 보자면, 우선 라콕 마을은 캐슬 쿰 보다는 덜 오래된 느낌의 마을이다. 그리고 더 생기 있다. 마을 규모도 크고, 거리도 넓다. 모두 캐슬 쿰 대비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지방 마을이 다 이렇게 아름다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꽤 많은 마을들이 물려 받은 자연과 문화 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영국의 지방 여행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일수록 즐거운 것이다.


< 영국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일은 늘 즐거움이었다. >


이처럼 과거를 낡은 모습이 아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모습, 소중하고 특별한 공간으로 지방의 작은 도시들을 보존하는 데는, 도입부에서 말한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편 '스톤헨지' 여행기에서도 잠시 언급한 내셔널 트러스트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기부, 증여 등을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문화자원을 확보하는 시민 환경 운동이다. 산업 혁명이 처음 발생한 영국에서 산업 발달로 인해 자연의 파괴와 훼손이 심각해지자 과도한 개발로부터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가 현재는 전 세계적인 차원의 시민 환경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시작된 나라답게 영국은 거의 전 지역에 걸쳐 내셔널 트러스트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곳들이 많다.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책자 >


라콕 마을을 포함해 영국 곳곳에서 내셔널 트러스트 멤버십(내셔널 트러스트 연간회비를 내면 발급받을 수 있다)으로 입장할 수 있는 곳, 혹은 주차를 무료로 할 수 있는 곳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물려받은 자연문화유산과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국인들의 마음을 떠올렸다.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전까지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우리의 유산과 전통의 모습을 찾아보리라 다짐했다. 역설적이게도 영국에 있는 동안, 영국의 아름다운 전통과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을 가장 많이 돌아봤다. 낯선 것을 낯설다고 느끼는 것, 다른 문화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내 안에 담긴 익숙한 것들을 꺼내 그것들과 비교를 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 함께 서울의 고궁 및 용산국립박물관,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의 정약용 선생 집인 여유당과 실학 박물관을 비롯해 군산과 경주 등을 방문해 우리의 유산을 탐방하며 영국에서의 다짐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에서의 시간은 영국이라는 나라를 알아가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의미로 ‘나’를 알아가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 ‘또’ 해리 포터를 찾아 떠난, 라콕 마을


라콕 마을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과 자연/문화 유산 보존의 의미 부여하는 근사한 말들을 했지만, 사실 라콕 마을을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숨겨진 보석 같은 ‘라콕 마을’을 알게 된 것은, 하하, 역시나 <해리 포터> 덕분이다. 가족들이 ‘해리 포터’ 팬이라는 말을 들은 남편의 지인이, 그렇다면 바스(Bath) 가까이에 있는 ‘라콕 마을’을 꼭 방문해 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영화 <해리 포터>를 촬영한 아주 사랑스러운 마을이라고.

라콕 마을은 바스에서 차로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옥스포드(Oxford)'처럼 방문객이 많지도 않아서 사전 예약 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이, 어느 한가한 날에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라콕 마을로 함께 떠나보자.




라콕 마을로 가는 길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차가 달려갈 도로도, 차창 밖의 먼 풍경도. 그럴 만도 했다. 벌써 11월의 중순. 유한한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 라콕 마을로 향하는 가을길 >
< 가을로 물든 창밖 풍경 >




마을 외곽의 내셔널 트러스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라콕 수도원(Lacock Abbey)’.

<해리 포터> 영화 속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호그와트의 내부 장면이 된 촬영지가 영국 곳곳에 있다. 앞으로도 몇 군데 더 소개할 예정이다. 찡긋~)


< 라콕 수도원(Lacock Abbey) 전경 >



라콕 수도원으로 향하는 설레는 길에, 길가에 짙게 깔린 낙엽 카펫이 잠시 발길을 잡았다. 자연을 잘 보존하고, 공기가 깨끗한 영국에서는 이렇게 근사한 자연을 마주하면 미세먼지 같은 공해에 대한 걱정 따위 없이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어지곤 했다. 이날도 낙엽 카펫을 향해 달려가 내 손으로 가을 낙엽비를 날리며 CF 한 편을 뚝딱 찍었다.




라콕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 건물 앞 큰 나무가 ‘후려치는 버드나무’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가 해리 포터 덕후인 탓일 것이다.


< 후려치는 버드나무가 연상되는 라콕 수도원과 나무 >



수도원 주변에는 잔디가 촘촘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반대 반향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그 푸른 들판 위에 흰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곧 만나게 될 <해리 포터>의 장면들이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라콕’의 전원 풍경이었다.


< 라콕 수도원 앞 마당 >
< 라콕 수도원 뒤편 들판과 풀을 뜯는 양떼 >



우리를 마법 세계의 한 장면으로 이끌어 줄 수도원 건물 입구 또한 은밀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곳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시작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 라콕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


정말 수도원 내부 모습이 호그와트의 복도를 연상시켰다.


< 영화처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라콕 수도원 내부 >



우리처럼 ‘해리 포터’를 찾아서 오는 이들이 많은지, 친절하게도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 장면을 인화해서 안내판으로 제작해 두었다.

호그와트 안에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 삼총사(해리, 헤르미온느, 론)가 심각하게 토론하며 학교 복도를 걷는 장면, 해리 포터가 소망의 거울 앞에 하염없이 앉아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장면, 터번을 쓴 퀴렐 교수가 수업을 하는 장면 등이 이 라콕 수도원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 <해리 포터>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




해리 포터 삼총사처럼 수도원의 복도를 걸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소망의 거울’이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 가운데 서서 텅 빈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적막한 분위기가 소망의 거울을 바라보던 해리의 쓸쓸함과 닮았을까?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영화의 장면을 빼곡하게 채워주는 다양한 요소들, 조명, CG, 음악 등을 걷어내 극적인 긴장감이 빠진 방은 무대 뒤에서 분장을 지운 연극배우의 맨 얼굴처럼 소박하고 밋밋했다.


< '소망의 거울' 장면을 촬영한 방 >


그럼에도 좋아하는 영화가 촬영된 공간에, 한국도 아닌 영국의 아주 작은 마을 어딘가에 내가 실제로 서 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좋아하는 영화의 촬영지를 따라 가 보는 것은, 그곳이 엄청나게 멋진 뷰를 가져 촬영지로 선택된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 영화를 보면서 몹시도 행복했던 그 순간의 나를 위한 선물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와 다른 분위기의 공간에서도 ‘덕후들’은 눈 앞에서 영화를 재생할 수 있다.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 장면 >
< 영화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해덕' 소녀 >





라콕 수도원 밖의 마을에도 해리 포터 촬영지가 있었다.

우선 ‘해리 포터 엄마의 집’.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해리의 이마 상처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 설명을 한다. 해리의 이마 상처는 해리가 아기였을 때,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에게 맞서 싸우던 해리의 엄마 ‘릴리’가 볼드모트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으며 해리를 지킨 순간에 생긴 것이다. 바로 그 장면을 촬영한 집이 라콕에 있다.


< 해리 포터 엄마가 볼드모트에게 공격을 받았던 집 >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이 워낙 빠르게 스쳐간 장면이기도 하고(영화 초반부에 해그리드가 해리 포터에게 이마의 상처와 볼드모트에 대해 얘기해 줄 때 잠깐 나오는 장면이다), 또 집의 외관을 일부분만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에 이 집을 본다고 해서 ‘와~ 영화에 나온 집이다!!’ 하는 생각이 바로 나지는 않는다. 영화 속 긴박하고 처절한 장면과 달리,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집의 모습에(물론 울타리의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정말 이곳에서 촬영을? 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찬찬히 장면을 살펴보면 같은 곳이다. 우리처럼 이 집 앞에 서서 ‘조용히’ 기념 촬영을 하고 가는 사람들을 보아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 촬영 후 사진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하하.


< 영화 장면. 분위기가 다르지만 잘 찾아보면 같은 집이다. >


기념 촬영을 조용히 했던 이유는, 라콕은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 대부분의 집들이 거주자가 있는 상태다. 이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문 밖에서 보기만 해야 한다. 나도 집 앞까지 찾아가 사진을 찍긴 했지만 그 집에 사는 분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아무리 문 밖이라도 집 앞에 낯선 사람들이 와서 나의 집을 촬영한다고 생각하니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러자 집 앞에서 얼쩡거리는 것도 미안해 서둘러 그 곳을 떴다.

이날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에서 소파로 변신하는 ‘슬러그혼 교수’의 집 또한 여기 라콕 마을에 있었다. 해리 포터 엄마의 집 앞에서 나의 팬심이 누군가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슬러그혼의 교수님 집까지 찾아가는 것은 그만 두었다. (찾기도 어렵고, 힘도 들었다.) 앞으로 너무 사적인 촬영지까지는 침투하지 않는 ‘개념 있는’ 팬이 되리라.





마지막으로 본 촬영지는 라콕의 거리였다.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초반부에 덤블도어 교수님은 해리 포터를 데리고 순간 이동을 하여 슬러그혼 교수님을 만나러 간다. 그때 덤블도어 교수님과 해리 포터가 순간 이동해서 ‘짠~’ 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거리가 바로 라콕의 거리다.


<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영화 장면 >
< 실제 마을 모습. 가운데 십자가탑은 CG 작업을 한 것인듯 하다. >


영화 속 장면과 실제 거리의 구도를 확인하며 같은 곳임을 확인하는 즐거움으로 ‘해리 포터 촬영지 따라잡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해리 포터를 따라 라콕의 중심 거리로 나왔으니, 이제 해리 포터는 잠시 접고 라콕 마을을 돌아볼 차례다.   





// 라콕만의 영화 같이 아름다운 장면들


라콕은 <해리 포터>로 더 유명해졌겠지만, <해리 포터>가 아니라도 충분히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을이었다. 몇 세기 전의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 풍경을 산책하는 즐거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간대가 맞으면 스톤헨지 인근에서 보았던 것처럼 라콕에서도 말을 탄 순찰대들을 만날 수 있다. (와우!)

그러나 오래된 분위기를 간직했다고 해서 과거에 멈추어 있는 마을은 아니었다. 거리의 집마다 그 앞에 주차된 차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주차된 차들이 없다면 거리 풍경이 조금 더 운치 있어 보이기는 하겠지만, 풍경을 위해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인위적인 테마 파크와 다를 것이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예쁜 상점과 카페들도 오래된 마을에 생동감을 더했다.


< 아름다운 라콕 마을의 이곳저곳 >



그중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있다.

<해리 포터> 영화가 촬영된 수도원 건물 뒤편 구역에 작은 상점이 하나 있었다. 벽면에 난 작은 문이 열려 있고, 입간판에 ‘Second hand Bookshop(중고책 서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점이 보이면 자석처럼 끌려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여행 루틴 중 하나였는데, 심지어 이곳은 오래된 마을 안의 오래된 책들의 공간! 아니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 짙은 구름을 뚫고 오후의 햇살이 서점 문을 향해 내리쬐었다. 햇살의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는 나뭇잎과 입간판이 우리를 부르는 듯했다. 여닫을 때마다 삐걱삐걱 시간의 소리가 날 것 같은 문을 통과할 때는 더욱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 호기심을 자극하는 중고 서점 >



무인으로 운영되는 중고서점에는 책장의 칸마다 요리책, 소설책, 아동책 등 라벨이 정성스럽게 붙어 있었다. 가운데 공간에는 특별히 선별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때는 11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책을 고르는 동안 나도 책 두 권을 골랐다. 나는 해리 포터 덕후인 동시에 크리스마스 덕후이기도 하여, 곧 다가올 영국에서의 귀한 크리스마스를 대비한 크리스마스 책을 두 권 샀다. 책 가격은 권당 1~2파운드. 이렇게 운치 있는 마을, 낭만적인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에 관한 책을 아주 저렴하게 샀는데(심지어 빈티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편의 문제일 것이다.  


<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념해 구입한 크리스마스 책 >




또 다른 곳은 마을의 상점가에서 만난 소품샵이었다. 쌀쌀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손으로 만든 제품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어 무엇을 기념품으로 가져와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수많은 예쁨들 중에 나무를 깎아 만든 집 모양의 벽 고리와 호두껍질 안에 포근하게 짚을 깔고 있는 생쥐 커플 장식품을 샀다. 모두 한국까지 안전하게 잘 가져와 식탁 옆 선반에 올려 두었다.


< 가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예뻤던 수제 소품샵 >




라콕 마을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꽤 넓은 놀이터가 있었다. 자연 그대로를 중시하는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보존하는 마을의 놀이터답게 놀이기구들이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진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의 놀이터였다.

아무래도 ‘과거의 풍경’은 아이들이 즐기기엔 아직 ‘고차원의 풍경’이었는지, 놀이터를 발견한 아이들은 마을 구경을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텐션’으로 놀이터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아주 긴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냈다(거의 마을 구경에 쓴 시간에 버금갈 정도. 하하).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처럼 창의적이고 기발한 놀이기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울퉁불퉁한 나무를 표면만 매끈하게 다듬어 뚝딱뚝딱 이어 붙인 것 같은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들도, 영국 아이들과 또 다른 국적의 아이들도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내며 즐겁게도 놀았다.  


< 고요한 마을 구경 후 남은 에너지를 불 태우는 아이들 >


아이들의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기다리며 놀이터 옆 잔디밭 벤치에서 바라보는 먼 풍경이 근사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영국에서의 소중한 하루를 영화처럼 멋지게 채워준 라콕에서의 하루는 저물어 가지만, 앞으로 이렇게 멋진 곳들을 볼 날이 아직 몇 달이나 남았다는 것이 기뻤다.




라콕 마을은 정말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앞서 해리 포터 촬영지로 방문한 옥스포드 같은 웅장한 역사가 담긴 장소를 생각하고 찾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라콕 마을에는 소박해서 정겨운 작은 영국이 있다. 나와 내 가족은 가을에 갔지만, 봄에는 라콕에 보라색 등꽃이 어여쁘게 피어 또한 아름답다고 하니, 시간과 마음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한번쯤 들러, 영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내셔널 트러스트’의 정신이 담긴, 있는 그대로의 작은 영국 마을을 경험하길 바란다.  





[영국 빼고 런던 여행] 잉글랜드, 월트셔, 라콕(Lacock)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라콕 마을 (Feat. 해리 포터) _ 마침

매거진의 이전글 드넓은 평원 위에 우뚝 솟은 영국의 불가사의, 스톤헨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