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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May 23. 2023

정상가족이란 굴레를 벗어나자

[신중년 생존전략 1장-현실을 읽자]

‘정상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근대 이후에 구성된 개념으로 이른바 이성애로 결합한 부부인 부모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4인 가족의 형태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정상가족’이 아닐 경우 ‘비정상가족’이라는 오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족 형태가 있다. 부모가 없이 조부모가 아이들과 살아가는 ‘조손가족’, 부모의 한쪽이나 양쪽이 사망했거나 이혼 혹은 재혼한 ‘결손가정’, 이성이 아닌 이들이 꾸리는 ‘동성가족’도 있다. 이밖에도 동거부부, 계약결혼, 공동체가족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런데 ‘정상가족’이라는 말은 다른 가족 형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졸혼(卒婚)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 말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쓴 책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다.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삶을 뜻한다. 이런 형태에서 가장 민감한 것은 상대방이 다른 이성을 사귀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가 등이 있을텐데, 졸혼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것을 용인하는 것을 전제한다. 

     

졸혼은 퇴직 후 이혼하는 황혼이혼(결혼 20년이후 이혼하는 사례)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1990년대 전체 이혼에서 5%에 지나지 않던 황혼이혼의 비율은 2022년 37%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고령화 준비가 안된 나라에서 황혼이혼을 리스크를 배가 시키는 문제가 있다. 우선 한 집에서 살던 부부가 이혼을 하면, 집을 분할해야 한다. 또 연금 등도 분할하면서 가용할 수 있는 자원도 줄어든다. 이혼으로 인한 사회적 시선은 당사자들을 주눅 들게 만들고, 사회적 활동과도 단절하게 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어릴적부터 참 많이 들은 말이다.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게 삶의 가장 중요한 지혜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따라서 ‘정상가족’이라는 표현으로 다른 가족 형태를 낮게 보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다. 즉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다. 이 공동체는 정상가족이 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 삶은 고향에서 형제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아직 7남매가 모두 건강한데, 이들도 차례대로 죽음을 맞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나는 자형 두분을 지난해 잃었다. 남편을 잃은 누나들은 여전히 도시에서 이런저런 삶을 보내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10년쯤 지나고, 70살이 되면 누가 돌봐줄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럴 때 생각하는 게 고향마을이다.      


고향 마을에 형제자매들이 같이 살면, 서로의 손발이 되어줄 수 있고, 맛있는 거 같이 나눠먹을 수 있고, 혹시 죽음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사실 돌아가신 둘째 자형도 내 고향 마을에서 보내고 싶어했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도시로 돌아와야 했다.      

형제가 할 수 있는 삶은 초등학교 등 동창끼리도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이들이 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인테리어를 하는 친구도 있고, 나처럼 책읽고 책쓰는 일을 같이 나눌 수도 있다. 여행을 만들어서 해외로 안내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특히 고향 마을은 어지간한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돈 쓸이 없다. 최저 생계비를 쓸 일도 없고, 농사일 지원 나가면 하루 일당이 적어도 10만원은 된다.      

정상가족이라는 굴레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그리워하는 시대는 지났다. 신중년 세대의 다른 호칭 가운데 하나가 ‘마처세대’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처음으로 자식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자식에게 돌봄이 아니라, 늙어서까지 자식을 뒷바라지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탄식도 나온다.      

물론 나는 7남매를 낳아서 기른 어머니의 발 끝에 때 만큼도 좋은 부모는 못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래도 부모님을 모시고,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진 세대다. 하지만 아래 세대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는 쉬워보이지 않다.      

결국 정상가족이라는 죽은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살다가는 거짓꼴을 못 면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이제 가족의 범위는 공동체로 전이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되고,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룰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상가족에서 벗어나자라는 주제로 그려준 그림/릐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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