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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노트서영 Aug 12. 2024

오무닥닥한 함평댁

여름날 국수 이야기

너무 더운 하루였네요. 저녁이 되어도 더위는 가실 줄을 모릅니다. 실내에 있으면서도 반팔을 입었다가 민소매로 갈아입기를 수차례 반복합니다.

덥기도 하고 밥도 없어서 함평댁은 말씀하십니다.


"국수 삶으끄나?!"


"네에, 엄마~." ^^


김용임 여사는 저의 엄마입니다. 그녀는 함평에서 나고 자라셨다고 합니다. 결혼 때문에 19살 때 함평에서 떠나오실 때까지 말이에요. 그래서 그녀는 함평댁입니다. 그녀는 1940년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83년 정도 지구별 여행 중이십니다.


타고난 고장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고 그녀는 함평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십니다. 그러다가 "고칠라그런디 잘 안된다야." 말씀하시지만 어느새 '울타리'는 '후타리'가 되고 어릴 적 할머니, 엄마, 아버지, 동네 어르신들에게 들으셨던 사투리가 우수수 쏟아져 나옵니다.^^


국수를 삶습니다. 우리밀 국수는 삶는 시간이 오래 걸려 별로라고 하시면서도 이제는 익숙해지셨는지 능숙하게 삶아 냅니다.


"거기 오묵닥닥한 그릇 좀 줘바라이."


찬물에 씻겨진 국수 사리는 커다란 그릇에 담깁니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딱! 이만큼만 할라고 했는디 아주 쪼~끔 더 했는갑다야. 좀 양이 많다."하시면서 다른 그릇에 덜어놓았던 남은 국수까지 다 드십니다. ^^


그녀는 천상 이야기꾼이어서 짦은 식사 시간 동안 그녀의 말을 녹음해 두었다가 다시 펼치면 되돌리면서 들어도 말이 빨라서 되감기를 여러 번 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았는데도 엄마의 사투리는 여전히 낯설고 재밌습니다.


"오늘은 여그다가 콩가루를 넣어서 먹자이."


그녀는 콩가루를 아주아주 조금만 넣습니다. 나는 몇 스푼을 더 넣습니다. 콩가루 맛이 얼마나 고소한데요. 콩물국수란 모름지기 콩맛 아니겠어요? ^^

그리고 선물 받은 알라스카 아니, 히말라야 핑크소금을 갈아서 조금 넣습니다. 고소한 맛이 훨씬 진해졌습니다. 신기한 맛의 조화. ^^


"거기다 치우지 말고 놔둬라이. 봉지가 두 반디가 있으니 보태놀랑게. 저번 날 못찾아서 하나 더 사왔는디 이걸 꽉 짬매갖고 저어기다 넣어놨으니 찾을 수가 없재."


그녀는 늘 입맛이 좋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6시 전후에 눈을 뜨면 씻고 바로 일어나 정원으로, 텃밭으로 나가시거든요. 말리지 않으면 아침 식사 없이 10시 정도까지도 호미를 들고 일하시다가 다음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적도 있을 만큼 그녀는 부지런합니다.


국수를 후루룩 드시는 엄마의 어깨가 조금 구부정해졌습니다. 요가를 20년 넘게 하셨는데도 어느새부터인가 조금씩 반듯한 허리가 아닌 조금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편한 듯보입니다.


"새벽부터 일 많이 했시야. 뽕나무도 다 비어주고, 여그 단풍나무 가중크려주고 저기는 씰거나 말거나 힘들어서 못하겄응께 우리 꺼나 이쁘게 해야지야."


도로에 면해 있어 도로변까지 청소를 하시는 함평댁은 일이 너무 많아 도저히 도로변까지는 청소를 못하신 모양입니다. 그쪽은 커다란 밤나무가 있어 요즘 장마에 센 바람에 못 이기고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밤송이들이로 그녀의 눈에는 지저분해 보일 텐데도 쓸지 않고 말았다 하십니다.


"국수를 먹으니깐 생각나는디 어려서 일인디 어느 날 집에서 쑤시밥을 했느니라. 임신한 옆집 젊은 각시가 하도 먹고 싶어해서 한 그릇을 줬니라. 그란디 머시매가 보더니 좀 먹어본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쑤시밥을 주고 가만히 있었더니 아, 이 머시매가 "맛있다 맛있다"하고 먹으면서 한 술 뜨라는 말도 안 하더란다. 가만 두고 봤더니 큰 그릇에 줘서 양이 많다 보니 다 못먹고 남기더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거 맛있는데 배불러서 못 먹겄네. 쩌기다 놔뒀다가 좀 있다 먹을라네"하더란다. 에이 써글롬!"


그녀는 국수를 후루룩 입에 넣으면서 말씀하시다가 자신이 그 젊은 색시인 양 "써글룸!"을 반복하십니다.


"그렇게 알가리가 없쓰까..."


그녀는 혀를 찹니다.


"아들이 하나였더란다. 애지중지 키워져서 그럴 수도 있다만은 사람이 하차잖은 것에 기분이 나쁜 것인디 말이다. '하차잖은 외껍닥에 속상한다'는 말도 있는디.

장가 가면 각시한테 돈도 막 벌어다 주고 싶고 좋은 것, 맛난 것도 막 주고 싶고 그럴 것인디, 어찌고 먹을 것을 갖고 그런다냐..."


어느 새 콩물국수는 바닥이 나고 한 끼 식사가 이렇게 끝납니다. 함평댁과 함께 있으면 늘 이렇게 즐겁습니다. 이런 이야기꾼 엄마를 둔 탓일까요. 저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일요일이면 함평댁 이야기를 전해 드릴까 합니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 그녀와 함께 사는 이야기, 이사온 지 4년 동안 텃밭 가꾸며 일어난 이야기, 저와 함께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낯선 나라 이야기 등을 나눠볼게요. ^^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보물상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폄훼하는 안티에에징의 시대가 되었지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세월을 내 몸과 마음에 이고지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70억이 넘는 우리 지구별 여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온 내력이 모두 애틋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고 늘 속삭입니다. 80년 지구별 여행자의 살아온 이야기, 함께 귀기울이는 시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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