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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Apr 05. 2019

창의력을 위한 방법 01.
두 번 보기

제7장 디자인창의력_05

우리는 디자인을 할 때, 이제까지 없던 것,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합니다. 그러나 항상 만족할 만한 새로운 디자인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가들은 항상 새로운 디자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새로운 디자인에 영향받아 그들의 디자인을 표방하고 흉내 내기도 합니다.     

 

80년 중반 종합가전회사의 디자인실에 근무하던 직장생활 초기의 일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가전메이커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던 때였고, 따라서 디자인을 하는 데는 일본 등의 세계적인 가전회사의 카탈로그가 중요한 디자인의 리소스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게도 디자인을 잘한다고 하는 선임자의 책상 서랍 속에는 일본 메이커들의 카탈로그가 잔뜩 있었습니다. 선임자들은 자신들만이 가진 그 카탈로그를 참고하여 디자인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해외출장의 기회라도 오면 제품의 디자인을 분석하는 것은 뒷전으로 카탈로그 챙기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마는 디자인의 독창성이다 뭐다 따질 겨를도 없이 생산하기 바쁜 시절에는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본 회사 제품들을 보고 디자인하는데 이 일본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뭘 보고 디자인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보고하는 것을 우리도 알 수만 있다면 우리의 디자인도 훨씬 앞서 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일본에서 유학을 하는 기회가 주어져 생활하던 중, 학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회 참가자들의 저녁 친목 모임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일본 기업의 디자이너가 앉아 드디어 그간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몇 마디 인사성 대화를 건넨 후에 그 일본 디자이너에게 ‘솔직히 우리는 당신들의 디자인을 보고 디자인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디자인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일본 디자이너는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오호 핵심을 찔렀나? 답해주기 어렵겠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일본 디자이너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디자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것들이 아닌 전혀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디자인합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디자인하는 것이 없다니 아니 그보다 무언가를 보고 흉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니.... 그 당시에는 참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새로운 디자인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다시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몇 년 후에 미국의 디자인 에이전시와 일을 할 때에 얻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재직하던 회사에서 영상팀을 담당하던 우리 팀은 미국의 디자인 에이전시에 디자인 용역을 부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수출용 다자인은 현지의 디자인 에이전시를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꽤 규모가 큰 디자인 회사였는데 현지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며 그들과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그들을 감독한다는 의미보다 선진 디자인의 수행과정을 배우는 목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이 대략 5~6명이었는데 디렉터가 엄청나게 큰 벽의 한가운데 우리가 수출하고자 하는 기존의 기준 모델을 턱 붙이더니 일주일간 이미지 모드를 완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지 보드를 만드는 것을 보니 우리가 준 TV 주변에 우리 TV와 비슷하게 생긴 타사의 TV들을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TV의 사진을 다붙이고 나니 이제는 그 옆에 그 TV와 비슷하게 생긴 오디오나 기타 전자제품들을 붙여나갔습니다. 

이렇게 한가운데 붙인 우리 회사의 TV를 중심으로 점점 동심원을 그리듯 이미지 보드가 커져갔습니다. 가전제품을 다 붙인 다음에는 그 가전제품과 이미지가 비슷한 다른 이미지들을 붙여나갔습니다. 

결국 대략 가로 4m 세로 2m 정도의 큰 벽에 이미지들이 꽉 들어차고 그 이미지들의 가장자리에는 세포, 비행기, 건축물, 인체, 동물의 사진 등 애초의 우리 회사 TV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진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미지 보드(벽)가 완성된 후에 디자인 디렉터가 오더니 마카로 커다란 원을 스윽 그리고는 이 안의 이미지는 참고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헉’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TV를 디자인하는데 TV를 보는 것도 아니고 오디오를 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제품을 보는 것도 아니고, 건축, 공예품, 교량, 미생물을 보고 디자인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언젠가 일본 디자이너가 이야기했던 자신들은 다른 제품을 참고하지 않는다는 말 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신이 세계의 자동차 트렌드를 이끌어가기에 참고할 자동차가 없을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조명 디자이너도 새로운 조명을 디자인할 때 다른 사람의 조명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워지기 위한 답이 있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아무리 보아야 절대로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조명을 디자인하라 하면 정말로 멋진 조명들을 열심히 조사해옵니다. 그리고는 그 조명들의 디자인 요소들을 참고하여 디자인하려 합니다. 

학생들에게 자동차를 디자인하라 하면 멋진 자동차들의 이미지를 열심히 조사해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참고하여 새로운 자동차를 디자인하려 합니다. 


물론 처음으로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기존의 좋은 디자인을 참고하여 모방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자동차나 조명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을 할 때, 새로워지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 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디자인하고자 하는 대상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알기 위하여 보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하여 현재의 자동차들은 어떤지를 보고, 새로운 조명을 디자인하기 위하여 현재는 어떠한 조명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을 참고하여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피하기 위하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새로워지기 위한 것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에이전시에서 TV를 디자인하기 위하여 세포를 보고, 건축을 보고, 비행기를 보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새로워지기 위하여 어떤 것을 보아야 하는지를 잘 판단하고 현재 사용되지 않는 새로운 이미지나 조형요소 등을 새로운 영역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디자인은 이 두 번째 보기에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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