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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Feb 25. 2024

라오스 시장의 소녀

코끼리 수제 파우치와 몽족 야시장

하늘하늘한 바람이 부는 선선한 라오스의 밤.


산책하듯 길을 나선다. 말로만 듣던 몽족 야시장. 좁은 길목에 기다랗게 장사용 텐트들이 진을 쳤다.

복닥거리는 시장 뒤편, 그림같이 고요하게 서 있는 왕궁 박물관이 아름다워 자꾸만 사진을 찍는다.


야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빤하다. 손으로 만든 바느질거리,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코끼리 바지, 라오스 원주민들의 컬러풀하고 대담한 그림 작품 등등.


떨어진 탄피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열쇠고리를 한참 쳐다보았다. 언젠가 베를린의 구 동독 박물관 기념품샵 한편에서 부서진 베를린 장벽 조각을 보았던 기억이 스친다. 인간은,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루앙프라방 야시장의 풍경, 2023 © Sunyoung Choi


야시장의 끝무렵, 텐트도 없이 노상에서 돗자리 하나만 깔고 물건들을 파는 이들이 눈에 띈다. 그중 눈길을 끄는 물건 하나. 손바닥 한 뼘보다 약간 큰 파우치다. 심플한 면 바탕에 귀여운 코끼리 한 마리를 수놓았다.


여행지에서 자잘한 기념품을 사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인 나. 기념품은 사진과 추억, 맛있는 음식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째 그 오동통한 아기 코끼리가 계속 아른거렸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장 바닥을 두 번 정도 왕복한 뒤에 그 코끼리 주머니 좌판 앞에 큰맘 먹고 섰다.


“사바이디, (빨간 코끼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건 얼마예요?”


좌판에 앉은 주인은 열 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 동생을 꼭 끌어안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아몬드형 눈매가 곱다. 라오스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현지어로 답하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보고 새초롬하게 눈을 깔며 “식스티 파이브(65,000낍. 라오스에서는 뒷자리 1,000을 자주 생략하곤 한다)”라고 작지만 또렷하게 말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이 좀 안 되는 가격. 여기 물가치고는 조금 비싸단 생각이 들어, 조금 흥정을 해볼까 했지만 눈이 마주친 M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애기잖아.” 먼지 날리는 좌판에서 놀지도 못하고, 저녁 내내 앉아 있었을 아이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 왔다.


지갑에서 65,000낍 지폐를 건네고, 빨간 코끼리 한 마리를 소중하게 가방 안에 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유럽인 여행객 가족이 물건을 팔고 있는 라오스 아이들에게 몇 살이냐며 묻고 있다. 우리 집 아이들도 10살이라며, 키가 비슷하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그들.


어쩌면 어린아이들에게도 부모를 따라 나오는 야시장이 놀잇거리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만 오도카니 좌판을 지키는 모습들이 눈에 띄어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 코끼리 파우치를 팔던 소녀. 얼마 안 되는 작은 돈이지만 그날 저녁 어린 동생과 맛있는 걸 사 먹었기를.




[작가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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