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아침 바람에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산책 나선 김에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젯밤에 대출목록 수첩을 보며 검색해 보니 원하는 책이 오늘 대출 가능한 도서관이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로 멀지도 않아서 아침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 따라 발길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 충전하느라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와서 어젯밤 검색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나오니 안내 팻말이 있어 반가웠다. 화살표가 동네 안쪽을 가리킨다.
근처에 등에 '노인봉사요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형광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계셨다. 화살표 따라 동네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동네 안쪽으로 한참 가야 하니 자꾸 물어서 물어서 가란다. 지극히 당연한 대답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맞아. 가면서 모르면 그때그때 물어보며 가야겠지…….'
간판을 보며 낯선 동네 구경도 하면서 걷는데 마침 앞에서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오고 있었다.
학생이니까 도서관을 잘 알 것도 같았다. 기대를 가지고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00 고등학교에서 가다 보면 00 슈퍼가 있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00 핸드폰 가게가 나오고…….
학생이 말하는 학교도 슈퍼마켓도 핸드폰 가게도 나는 모르는 곳이어서 예 예 대답은 했지만 뜬구름 잡듯 그냥 대충 듣고 말았다. 그래도 바쁜 아침시간에 발길을 멈추고 시간을 내어준 마음이 기특했다.
열심히 알려주었는데 정작 나는 통 알 수가 없어서
' 그러니까 아는 만큼 보이겠지……. 학생도 자기가 잘 알고 주로 가는 곳 위주로 말해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야.'라며 걸으면서 혼자 웃었다.
갈림길이 나왔다. 어느 쪽을 택해 갈까 쭈뼛쭈뼛했다.
분명 이 동네 속에 있겠지만 빨리 가야 책 대출이 가능하니 혹시 돌아서 갈까 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옆을 지나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양쪽 길 중에 한 길을 택한 다음은 여기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면서 5m 정도 앞에 있는 00 마트를 가리키며 거기서 한 번 더 물어보란다. 일단 갈림길이 해결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걸었다.
'그래서 처음에 만난 할머니가 가면서 자꾸 물어보라고 했구나. 한꺼번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씩 걸어가라는 뜻이었구나.'라고 생각하니 역시 인생선배다운 가르침이었다.
느낌으로는 거의 가까이 온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지나가는 젊은 총각에게 물어보았다. 도서관 이름을 듣더니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이 동네 거주자가 아니어서 모르는가 보다 짐작하며 괜찮다고 말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총각이 금방 핸드폰을 열었다. 검색창에 도서관 이름을 치고 지도 화면을 열어 보이면서 현재 위치에서 가는 길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허리를 숙이며 몇 번이고 고맙다 말했지만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 한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이의 배려가 가을바람처럼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그래, 이래서 처음 가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길을 나서면 걸어갈만해지나 보다.'생각하니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가을이 묻어나는 날씨를 즐기며 무사히 도서관에 도착했다. 원하던 책 다섯 권도 대출했다. 대형도서관에서는 대출이 밀리는 책들인데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해서 의외였다.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곳곳마다 길을 가르쳐준 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의 말소리 표정이 행복감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때그때 길잡이가 되어 준 덕분에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책 다섯 권이 든 가방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동네 초입에서 할머니가 가르쳐준 말대로 정말 물어서 물어서 걸어온 길이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삶의 고비마다 모두 처음 가는 길이다. 각자도생처럼 보여도 알게 모르게 서로 연결되어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어주며 살아가는가 보다. 물어서 물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낯설고 물설어도 여기까지 살아왔음이 감사할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