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찾기가 어렵다면 취미부터 시작해.
꿈은 없어도 취미는 있다.
나 이거 좋아해,
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
좋아하는 것들 중에 최고.
책.
내 취미는 책이다. 독서 아니고 책. 무슨 뜻이냐고?
물론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한다. 하지만 독서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책이라는 물성 그 자체가 좋다. 내용을 읽는 용도가 아니더라도 그 생김생김, 인쇄된 글자들의 배열과 형태, 질감, 냄새 등 고유의 개성과 매력을 좋아한다. 이런 책들이 가득 쌓여있는 도서관이나 서점은 당연히 최고의 공간이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 책냄새, 책제목들의 나열, 책마다 담긴 무궁무진한 내용들을 마음껏 꺼내어 볼 수 있다는 자유로움. 굉장한 다양함. 무한한 가능성.
그래서 외롭고 슬플때, 사는게 쓸쓸할 때, 의지하고 싶은데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나는 도서관에 갔다. 마음껏 읽어도 되는 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한 공간이 열려있었다. 한때는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던 적도 있다. ( 초박봉이라는 말에 바로 접어버린 꿈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도서관 사서가 되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다. 요즘은 N잡의 시대인걸. 추가로 더 벌면 되는건데. )
기분이 좋을 때, 의욕이 넘칠 때,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흥미진진한 계획을 세우고 싶을 때는 서점에 갔다. 최신 트렌드나 정보를 얻기에는 도서관보다는 서점이 좋았고, 적당히 소란스러우면서 활기찬 분위기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참고서와 문제집이 가득한, 딱딱한 동네서점이나 창고같은 느낌이 나는 대형서점을 보며 서점을 내가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어느 순간 막연하게나마 서점 주인을 꿈꾸게 된 건 '작고 소중한 공간' 이라는 느낌이 드는 독립서점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작아서 더 서점 같은 공간. 운영하는 사람의 취향과 마음을 담아 10이면 10 각각 다른 색깔을 띠는 매력적인 공간. 넓고 넓어서 주연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한꺼번에 많이 올릴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 한정적이기에 특별한 배역만 고르고 골라 세울 수 있는 무대 같은 느낌. 그래서 공간이 마음에 들면 그 공간에 있는 어떤 책을 골라도 마음에 들 것 같은 그런 서점.
좋다.
마음에 드는 독립서점은 한발짝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속에서 진하게 '좋다'는 느낌이 피어난다. 그 안을 거닐기만 해도 이상한 충만함이 느껴진다. 이런 공간을 운영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 작은 서점은 수익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돈을 위해 흥미와 적성도 팔아버린, 돈이 중요한 사람이니까.
돈이 되면서 내 마음에도 드는 그런 일을 찾아 4년을 헤맸다. 정확하게 말하면 헤매다가 놓아버렸던 것 같다. 근 1년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놀았다. 너무 즐거웠다. 불안도 스트레스도 없었다. 아직 통장이 마르지 않았고(말라가고는 있지만) 인생은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더 없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 주인이 되고 싶은데 돈을 못벌까봐 못하겠다고? 그럼 그냥 노는 건 괜찮고? 어차피 돈을 안벌면서 놀꺼면 서점을 하면서 놀면 되는거 아닌가? 서점은 돈이 안된다니까! 뭐야, 어차피 지금도 돈 안벌잖아!
...그러네?
중요한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4년 반의 한량생활을 공식적으로 정리하고 서점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서점주인이 되었다.
- 일단,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