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예요.
오늘은 늦잠을 자고 뒤늦게 출근을 했어요. 하려던 일은 어그러지고 대화도 쉽지 않았죠. 우리의 앞길을 막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어요. 요즘엔 사는 게 나아가지 않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듯 힘들기만 하고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나는 나의 쓸모를, 내가 만드는 것의 쓸모를 분명히 하고 싶은 사람인데요. 이렇게 텅 빈 사진기처럼 살아서 어떻게 되려고 하나, 한숨을 푹푹 쉬어요.
나는 점점 더 솔직해져요. 솔직한 나를 당신도 좋아하잖아요.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그것이 지속되리란 생각 안 했어요. 당신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오래전부터 내게는 거짓이 많았고 거짓의 둘레가 나와 함께 커졌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이 떠난 자리에서 거짓을 죽이는 일을 거듭하게 되었어요. 혼자서도 잘 해냈어요. 내 안에 거짓이 죽고 진짜가 살아나는 동안 당신도 내 안에서 여러 번 죽고 살았죠. 아니, 사실은 죽은 적이 없는지도 몰라요. 내가 기어코 당신을 살려냈으니까. 그게 진짜니까.
매일 밤 당신의 유령을 기다려요. 분명 우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천사가 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도통 날 도와주지 않아요. 대신 당신의 유령이 날 찾아오죠. 어떤 날엔 목소리로, 어떤 날엔 표정으로, 어떤 날엔 손가락으로, 어떤 날엔 몸뚱이로 와요. 나는 그것이 미래로부터 온 당신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미래에서 당신이 날 사랑하고 있을 거란 희망 때문에. 난 우리의 현재를 바꿀 자신이 없어요. 대신 미래를 바꿀 순 있겠죠. 나의 사랑으로요.
져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지만 사랑의 몸체는 그 어느 것도 이길 수 없을 만큼 단단해요. "사랑은 다 이겨. 사랑이 다 이길 거야." 얼마 전엔 그렇게 소리쳤어요. 이건 진짜예요. 사랑이 못 하는 일은 없어요. 나는 계속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렇게 미래까지 닿을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 날 기다리세요. 내 사랑을 맞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