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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Dec 28. 2019

시간의 세 갈래




나는 시간이 세 갈래로 흐른다고 믿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변모하거나 뒤섞이는 게 아니라 각자 나름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고. 시제가 없는 꿈속에서 그 셋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많이 한다. 현실에선 현재에 갇혀있기 일쑤지만 그래도 다른 시간 속의 나와 통해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그 통로는 응원이기도 하고 소망이기도 하며 위로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은 무척 어렸을 때부터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아주 가까운 미래를 가늠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학교에 가는 길엔 하굣길에 다시 걸어올 것을 생각하며 얇은 나뭇가지를 보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시간을 뛰어넘은 것 같고 좋았다. 어딘가 멀리 떠날 때는 문을 닫기 전에 방 안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는데, 그러면 돌아와 있을 내 모습을 눈앞에 펼쳐놓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일까 상상하면서. 여기저기 상한  채로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고등학교 때는 자습실의 벽 틈에 나만 알도록 쪽지를 적어 넣어 두었다. 미래의 내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것이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의 내가 무척 힘들고 미래의 네(내)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가 없었음에도, 공부를 하다가 몇 번씩 그 자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학교에 찾아가 쪽지를 살살 꺼내 열어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과거의 내가 살아있을 것만 같았고 미래의 나를 비로소 만난 듯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나를 수시로 느낀다. 과거에 같은 곳을 걷던 내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며 안심시킨다. 미래의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을 나에겐 자주 토닥이고 들여다봐달라고 부탁한다.


역시 가장 앞에서 방향을 선택하고 나를 이끄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현재의 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무거운 나를 부단히 짊어지고 미래로 착지하는 일을 끝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기운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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