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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Apr 29. 2021

투정




이태 전 봄, 출근하던 어느 날 나는 죽으려 했다.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이 안간힘을 다해 싸웠다. 다행히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만. 두 해를 보내며 불안이 많이 줄었고, 생각이 단순해졌으며 전에 없던 명랑함이 조금 생겼다. 때로 단호하게 아니라 말할 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겁내지 않는다. 사람을 조금 믿게도 되었고, 기대를 죽이던 버릇도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봄은, 오기만 하면 내 어깨에 걸터앉아 나를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봄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선하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걷고 싶어 진다. 바람을 다 맞고 서서 냄새를 맡고 싶어 진다. 궁에 가고 싶고, 사진을 찍고 싶고, 떠나고 싶고, 도착하고 싶어 진다. 손도 꽉 잡아 보고 싶고 별안간 뛰어가고도 싶고 해 안에서 환하게 웃고 싶어 진다. 봄이 오면 나뭇잎도 돋아나고 꽃도 피어나지만, 새 마음도 생겨난다. 접어버리는 마음이 아니라,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 저무는 마음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마음.


이토록 선한 봄이 나를 어렵게 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봄에도 나는 일을 해야 하고, 떠나간 사람은 봄과 함께 오지 않는다. 적지 않은 나이고,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더 빨리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선한 봄 안에서 내가 더 선해지는 일이 가능한 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잊고 싶지 않은 것을 무사히 잊게 되는 일이 가능한 지도.


잔인한 사월이라는 말처럼 혹독했던 봄이 지나간다.


사랑이 가득한 곳에 착지하여 그 마음을 모두 누리고 싶다.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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