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어쩌면 나는 좋은 영화보다 좋은 사진을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좋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꼭 움직이는 것 같다. 사진 너머의 것이 궁금해지고, 사진 반대편에 있는 사진가의 마음가짐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 안에 머물고 있는 시간 안으로 잘 들어가 볼 수 있다. 왜곡된 사진을 보는 것도 큰 재미지만, 나는 그보다 피사체를 그대로 담은 정직한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진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옷을 지어 팔면서부터 품기 시작한 마음이니 아주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엔 우리끼리 어여쁜 옷을 만들어, 우리가 직접 사진에 담아 사람들에게 선보일 생각이었다. 사업 초기 예산이 워낙 적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이리저리 노력해봐도,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져다 써봐도, 사진은 실물의 단 0.1퍼센트도 제대로 담지 못했다. 당황스러웠고,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가 만든 옷을 누가, 충분히 우리답게 찍어줄 수 있을까 하는 오랜 고민 끝에 현성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현성을 만났을 때, 깊은 다정과 결코 차갑지 않은 단호함을 느꼈다. 그는 그의 사진처럼 생겨 있었다.
첫 촬영 날, 현성은 연체동물처럼 움직였다. 무용 같기도 했고, 처음 보는 퍼포먼스 같기도 했다. 마치 자기 몸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자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열중할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고 그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열중하는 마음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처럼 서서히 모여들고, 커다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점점 무거워진다. 열중은 보통 침묵 속에 일어나며, 그때의 적막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찰나의 순간을, 그것도 잘, 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얼마나 소중한가? 촬영 날이면 그를 넋 놓고 보고 있다가 그만 내 할 일을 놓치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은 하지만, 고개가 자꾸 그쪽으로 기우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현성과 몇 계절, 촬영 작업을 함께하면서 우리도 현성의 사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현성 또한 우리의 작업물을 어떻게 담을지 다방면에서 고려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환상의 콤비처럼 컨셉을 기획하고, 그것을 실현시킨다. 요일은 이제 사진 작업을 시즌의 마무리로 생각지 않고, 시즌 중간중간 꼭 필요한 길라잡이로 여긴다. 이제는 현성 없이 요일의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다. 현성의 사진은 사람들이 요일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열린 창문이고, 요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얼마 전 현성은 자신의 작업이 우연에 기댄 부산물 같다고 고백한 적 있다. 나는 극구 아니라 손사래를 쳤지만, 그가 느끼고 있을 불안감을 해소할 어떠한 말들도 해주지 못했다.
당신은 지금, 바깥에서 햇빛을 가득 머금고 흔들리는 나무처럼 아름답고, 당신이 담아내는 것은 때때로 그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