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의욕이 넘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급식실이 따로 없어 급식차를 교실로 가져와 각자 책상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학기 초가 되면 급식 당번을 정해야 했다. 급식 당번은 급식차를 가져와 음식을 배분했다. 나는 항상 그 역할이 너무도 하고 싶어 선생님이, "급식 당번할 사람?" 물으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어깨가 빠질 것처럼 손을 들었다. 그게 선생님 눈에도 보였는지 그 학교를 다니던 세 학기 내내 급식 당번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어릴 때부터 책임이 주어지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좋았고 뭐든 나서서 해내는 일이 좋았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비슷했다. 반장이 될 때도 부반장이 될 때도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매번 선거에 나갔다. 존재감이 없어지는 일이 가장 무서웠고 주목받는 것이 좋아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가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이다. 무리를 만들어 그 애들 하고만 친하게 지내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인간관계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무척 가까운 줄만 알았던 친구가 어느새 복도에서 만나도 인사하지 않는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잘 몰랐던 친구와 좋아하는 가수 얘기를 하며 한순간에 친해지기도 했다.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교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반 친구들 중 다수와 두루두루 친해지게 되었는데, 같은 무리의 친구들이 종종 섭섭함을 내비쳤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어 매번 크게 당황했다. 고삼 때는 나를 자기 것처럼 통제하려는 친구에게 무척 실망을 했고, 그것을 표현하자 그는 내게서 떠나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급식실에 혼자 가기 싫어 밥을 먹지 않았고, 모두 날 불쌍히 여기는 것 같아 태연한 척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런 나를 보고 통쾌해하는 것 같았다. 창피했고, 속상하다고 얘기하며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었다. 말수가 급격히 줄었고 늘 혼자 조용히 흐느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마음의 병이 생겼다. 오래도록 불면을 앓았으며 늘 불안이 자글자글 깔려 있었고 사람에게 절대 기대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상태로 대학에 진학했고, 나의 대학 생활은 하나도 건강할 리 없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는데 이미 나는 혼자인 모든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쉽게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내게는 좋은 일이 늘 부족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쁜 기억은 나를 붙잡아 자기 옆에 기어코 앉혀 놓았다. 기쁨이 어색했고 슬픔이 편안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표정도 기쁨도 없는 사람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더디지만 확실하게 회복하고 있다. 가까운 이들에게서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있다 느끼고,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더 이상 소외된다 느끼지 않는다. 가벼운 관계들과 무거운 관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적당한 거리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 있는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혼자 있다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지나친 의욕을 거두고, 무력함에서 벗어나 단단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에게 각자의 모습이 있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고유한 모습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시간에 따라 변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M과 나 사이는 주황이다. 둥그렇고, 모난 데가 없으며 잘 흐르기도 한다. Y와 나 사이는 계단처럼 생겼다. 어떤 곳은 높고, 어떤 곳은 야트막하다. 하하 웃다가도 이내 일그러지는 표정이 있다. J와 나 사이는 바람처럼 정해진 모양이 없다. 대신 따뜻하고, 선선하고, 모든 좋은 날씨를 닮았다. 푸름과 나 사이는 가장 견고하다. 가득 채워져 있고, 잘 걸을 수 있으며 어디서든 눈에 띈다. 환하고 자연스럽다.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부드러운 향내가 있다.
아픈 시간을 지나 당도한 자리에 이런 사이와 사이들이 있어 축복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좋은 일이 내게 와주는 사이에 나도 좋은 일에게로 끝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기특하다. 앞으로도 다리를 쭉쭉 찢어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고, 함께 걸어줄 사람이 있다. 한 번, 멀리멀리 가보고 싶다. 내가 모르는 곳까지.